하루 첫 생각 - 잠든 나를 흔들어 깨우는
정우식 지음 / 다음생각 / 2010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은 과연 수천 년 전보다 나아진 것일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과학의 눈부신(사실 개인적으로 눈부셔 본 적은 없다만) 발전으로 우리는 과거와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한 생활을 하고 있다지만, 과연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암튼 그런 생각이 요즘 자주 드는 게 사실이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다 조금 서글펐던 기억이 있다. 돌이나 결혼을 알리는 초대 문자를 가장한 스팸이 극성을 부린다는 뉴스였다.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한다고 쓴웃음 지으며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냥 난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참 재미없고, 염치없는 것은 아닌지 싶었다.

 

휴대폰이라는 것이 없고,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당연히 스팸문자를 통한 사기행각도 없을 것. 과거 공중전화나 집 전화를 사용하던 때에도 상상치 못한 일들이다. 그냥 ‘아, 정말 각박하고, 재미없고, 짜증나는 세상에서 나는 꾸역꾸역 살고 있구나.’ 사실 조금 화도 나려 했다.

 

참으로 싸우길 좋아하고, 남을 헐뜯기 좋아하고, 자신만을 위해 아귀다툼에 몰두하는 세상이다. 물론 ‘아직도 이 사회는 따뜻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운운하며, 간혹 나오는 미담이나 훈훈한 이야기들이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미담으로 조명된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지금 이 세상이 얼마나 살기 팍팍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듣기 좋은 말만 하고 또 듣고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하지만 가능하면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해주는 따뜻한 말을 나누며 살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러면 이 팍팍한 세상에서 그나마 숨 쉴 틈이 생기지 않을까.

 

난 너무 게을러서 거의 포기하다시피 한 녀석이다. 그래서일까. 제일 존경스럽고 부러운 이들이 바로 ‘아침형 인간’이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온갖 찬사에는 100%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나보다 먼저 시작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존경을 표한다. 내가 그렇게 살지 못하니 말이다.

 

저자는 매일 새벽 눈을 떠 명상의 시간을 가지며, 느끼고 결심하고 반성하고 되돌아본 시간들을 글로 담아두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나온 성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생명평화운동가인 저자는 자연과 생명, 인간과 또 다른 인간이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바람을 글에 담았다. 지극히 소소한 이야기부터, 가슴에 뜨끔 와 닿는 글귀까지 다양하다.

 

그는 이런 ‘하루의 첫 생각’을 지인들에게 메일로 보냈다. 그만의 아침인사인 셈이다. 어떤 이에겐 상쾌할 수도, 어떤 이에겐 지난밤의 숙취로 인해 힘겨울 수도 있는 아침에, 그는 짧은 글귀로 하루를 보다 활기차게 시작할 수 있도록 그만의 방식으로 ‘인사’했다.

 

나쁜 말, 저주가 가득 담긴 흉기와 같은 말보다는 편안하고 아름다운 말들이 듣기 좋은 법이다. 글 역시 마찬가지. 때론 매섭게 상대를 비판하고 때론 치밀하게 무언가를 분석해야 하는 글도 있지만, 저자처럼 짧지만 부드러운 여운을 남기는 글도 삶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좋은 말과 글을 지금보다 더 많이 보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이 혼탁하고 ‘어이’가 사라진 시대를 견디려면 말이다.

 

정치인들을 보면 가끔 이건 아니다 싶게 말을 내뱉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언론인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 그들을 언론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욕정을 분출해 결국 조용히 사라진 윤창중 같은 이가 대표적이다. 그는 문재인 전 후보를 지지한 정운찬 전 총리, 윤여준 전 장관 등을 싸잡아 ‘정치적 창녀’, 야권 전체는 ‘쓰레기 인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인파는 ‘황위병이 벌인 환각파티’로 매도한 바 있다.

 

게다가 박원순 서울 시장의 당선 직후에는 ‘종북세력들이 점령군 완장 차고 몰려가 서울시청 요직은 물론 17개 산하 단체 모두 꿰찰 것’이라는 근거 없는 막말을 쏟아 부었다. 도무지 정신의 문제가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인물을 청와대 수석대변인으로 선정했다는 그 사실이 이 정부의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인간들의 말은 단순히 말이 아니다. 무서운 흉기와도 같다. 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때론 죽음으로 몰고 간다. 어설픈 언론들의 저주의 펜 놀림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절망으로 몰아갔는지, 그들은 분명 깨달아야 한다.

 

저자의 글들을 읽으며, 어떤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한 번 그 ‘당연한’ 글귀에 눈을 모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우리는 점점 시간이 갈수록, 정의와 상식과 ‘지극이 당연함’을 잃어가며, 혹은 잊어가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른 아침 한 페이지씩, 찬찬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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