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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고민 - 평화 공존이냐, 고립이냐
안문석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11월
평점 :
97학번이다. 남들은 지금까지도 그 존재 여부를 신기한 듯 되묻곤 하는 북한학과 출신이다. 헉, 또 다시 이 글을 보고 “그런 과가 있었어?”하시는 분들 계시겠다. 존재한다. 엄연히.
한때 전국적으로 5개 정도의 대학에서 북한학과를 만들어 학생들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전멸. 그나마 온전히 남은 학교가 나의 모교이다. MB정권 때 상당히 부끄러워,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았다는 것만 살짝 밝힌다. 젠장, 다 알겠구먼 그래도.
북한학과에선 뭘 배우는지 궁금한 분들 또한 여전히 계시겠다. 당연히 북한을 연구한다. 통일을 준비하고, 남북의 평화와 화해협력을 배운다. 그래야 했다. 다시 한 번 젠장. 하지만 뭐 다들 아시다시피 대부분 보수적인 시각이 지배하는 학계에서 북한학과라고 용가리 통뼈는 아니다. 보수적인 성향의 교수들이 가끔 반공교육을 그야말로 펼치시기도 하여 학생들의 가슴에 맹렬한 멸공의식을 심어주시곤 하신다. 통재라.
난 그 이후 남북관계 관련 언론사에서 쭉 일했고, 그 사이 대학원을 다녔다. 역시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대학원이었다. 나름 따져보면 이 바닥에서 꽤 있었던 셈이다. 지금도? 물론 통일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 나름 한 우물을 파온 셈. 근데 물은 당최 언제 나오나. 헐.
그렇게 적지 않은 시간동안 북을 공부했지만, 지극히 당연하게도 난 여전히 북을 모르겠다. 북한학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한 국가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미국학과, 일본학과, 중국학과와 마찬가지로 한 나라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말씀. 이런 학문을 달랑 4년 대학에서 공부한다고 통달할 수 있겠는가. 대학원을 다녀도 조금 더 깊어질 뿐이지, 여전히 조족지혈이다.
한때는 조금 주워들은 풍문으로 아는 척 좀 했다.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무모하고 대책 없는 행동인지 나중에야 느꼈다.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북핵문제다, NLL이다, 평화협정이다 하며 남북관계, 대북정책 등등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참 많다.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언론이나 방송에 나와 분석 전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들 오래 공부하신 분들이고, 그 중에는 내 스승들도 있다.
하지만 명심할 것 하나. 그들이 온전히 북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은 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그들도 역시 북을 100% 모른다. 그렇다면 살다가 온 탈북자들은 북을 100%알까? 내가 보기엔 그것도 아니다. 그들도 모르는 북이 있다.
정전 60주년을 무슨 자랑인 것처럼 떠드는 개념 없는 우리 정부처럼, 북 문제 역시 확실한 근거나 증거 없이 떠들어대는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나름 전문가라 자처한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말인 것처럼 믿다간 정작 북을 바라보는 주체적인 시각을 잃기 십상이다.
우리는 분단된 국가다. 세계 유일이다. 참 자랑이다! 아무튼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하나가 되어 함께 살아가야 할 북을, 북의 인민들을 알아야 할 절박한 필요성이 있다. 통일이 우리 이해타산에 안 맞아서 불리하니 하지 말자는 의견들도 있지만, 우리가 정말 발전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바로 통일이 필요하다. 그게 아니면 솔직히 답이 없다. 창조경제? 남북관계가 이 모양인데, 절대 불가능하다.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턱도 없다.
그렇다. 민족의 화합, 다시 하나 됨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잠시 접어두고 당장 먹고 살아야 한다는 현실적 요구로만 봐도 통일은 지상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북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우리의 미래와 직결된 중대한 문제다.
그런데? 지금은? 여전히 이념을 잣대로 싸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정말 이념적 잣대로 싸운다기보다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북 문제를 앞에 내세우며, 이용한다. 철저하게.
미친 짓이다. 일제 시기 친일과도 맞먹는 매우 악질적인 행동이다. 우리의 미래를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꼴과 다르지 않다. 진보나 보수나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남남갈등? 따지고 보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추잡한 싸움일 뿐이다. 일반 국민들은 개성공단이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금강산에 올라 눈물을 흘렸으며, 이산가족 상봉을 티브이 중계로 보며 함께 서럽게 울었다. 배고픈 북 동포들을 위해 모금함에 동전을 넣었고, 핵과 같은 위험한 무기를 만드는 대신 서로 도와 서로 잘 살았으면 하고 바란다.
북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정치 시스템, 경제 시스템, 사회, 문화 등등의 길을 걸어왔다. 60년이다. 우리가 기형적인 수출의존 경제 시스템을 가지게 된 것처럼, 그들은 주체적으로 자립경제를 추구하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있다. 물론 여기엔 미국의 경제제재가 큰 몫을 했음을 인정해야 하지만.
때문에 먼저 상대방이 나와 틀리지 않고(!) 오직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같음을 찾아내야 하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 모든 것을 풀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나라가 선뜻 대화와 타협과 협상에 나서겠는가? 북이 바보인가?
지금까지 개성공단 정상화와 관련된 회담 과정 속에서 우리 정부의 철저한 아집과 북 당국의 고집이 불꽃을 튀기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비틀어 보도하는 보수 언론들의 작태도 지겹게 봤다.
북이 왜 개성공단 가동중단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제대로 소개한 언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정부가 북을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한미훈련 등을 통해 얼마나 압박을 가해왔는지 그 배경을 안다면 북이 왜 개성공단을 중단시켰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는 지금까지 북에게 ‘반성문’을 제대로 크게 써서 바치지 않으면 재가동을 안 한다고 버텨왔다. 오직 명분이다. 그 명분에 개성공단 60,000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있다.
북과 전쟁을 할 텐가? 자신 있나? 미국이 든든하게 우리 뒤를 봐주고 있으니 걱정이 없나? 그래서 전시작전통제권을 다시 미국의 품에 안기려 하나? 전 세계 국민들의 조롱을 받으며?
난 결국 하나라고 본다. 답은 말이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우리’를 외면해왔다. 나 아니면 너, 우리 아니면 적으로만 나누었다. 버릇이 됐다. 하지만 적어도 다른 곳도 아니고 북은 더 이상 나와 너로 나누면 안 된다. 그들도 우리고, 우리가 그들임을 이제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 아닌 관계. 그들이 아프면 우리도 아플 수밖에 없는 관계. 그게 남과 북이요, 한반도요, 통일인 것이다. 북이 잘못하고 고쳐야 할 것이 있으면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고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하지만 윽박지르고 군사적으로 위협하고 경제적으로 압박한다면, 답은 없다. 그들도 바보가 아니고, 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나눌 것은 나누고 도울 것은 돕는 가운데, 천천히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북이 중국의 입김보다는 우리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도록, 우리도 미국의 말만 받들지 말고, 동포의 처지를 고려해가며 정책을 결정짓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 이상 친북좌파니 좌빨이니 하는 한심한 소리 지껄이지 말고, 친미도 하고 친중도 하고 친북도 하는 균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오랫동안 북을 연구하고 현장에서 직접 북을 겪어본 기자 출신의 저자가 풀어내는 오늘과 미래의 북 이야기다. 그의 글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일단 지금의 북 현황과 새로운 지도자 김정은에 대한 소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또한 우리가 진정 대북정책, 남북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우리 민족이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다시 금강산이 열리고 개성이 열리고, 끝내 백두산이 열리는 그 날을 기다린다. 오늘도.
우씨. 암튼 남북관계 이야기만 나오면 흥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