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선수 - 뿌리를 잊지 않는 재일 축구선수들의 역경과 희망의 역사
신무광 지음 / 왓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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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아니, 거센 분노를 참을 수 없다.

 

한국은 우리 모두가 보다시피 표현할 단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고, 일본 역시 사정이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다시금 과거 군국주의 국가의 모습으로 회귀하려는 일본을 보고 있으면, 도대체 저 나라 국민들은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제국?

 

아베 신조 수상이 다시 집권한 이후 일본은 단순한 우경화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모습이다. 이웃 국가들과의 평화로운 공존보다는 군사력 강화나 평화헌법 수정 등을 통해 과거 잃어버린 제국의 위엄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게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굴종, 그리고 세계 패권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지속적인 견제, 또 과거사, 영토문제 등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까지. 어차피 동북아, 동아시아 국가로 분류되는 것 자체를 거부해온 일본이지만, 사실상 아시아를 넘어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리더십은 상상 외로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전대미문의 자연재해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재앙과도 같은 자연재해를 겪은 뒤, 경제 회복과 국제적 리더십 확대 면에서 자신감을 상당히 잃어버리고 위축되어 왔다.

 

때문에 아베 정권을 비롯한 일본 정치계가 지금과 같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여기에 국민들의 지지 또한 높은 것은, 단순히 이들이 역사의식이 전무하다거나 개념이 없어서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이들의 현 상황을 살펴봐야 그림이 보일 것이다.

 

어쩌면 현재 일본 지도부는 일본이란 국가가 모을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을 끌어 모아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자국의 위상 회복과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동북아에서 일본과 중국의 위상이 바뀐 지는 오래 되었다.

 

과연 한·일 양국은 스스로 안에서부터 무너질 것인가. 정의와 상식이 무너진 두 나라의 모습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동북아 정세에 더욱 깊은 안개를 드리우게 한다.

 

, 그럼 책 이야기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당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북의 대표팀으로 출전한 정대세의 눈물이다. 그는 남아공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북의 국가를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은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일본에서 태어나 받아야 했던 차별과 무시, 이는 모든 재일조선인들이 겪어야만 했던 아픔이었다. 그는 두 개로 쪼개진 조국에서 반쪽의 이름으로 그라운드에 서야만 하는 자신의 모습과 또한 세계적인 무대에 섰다는 기쁨 등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렇게 서러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나 역시 가슴 뻐근함을 느껴야만 했다.

 

현재 그는 수원 삼성에서 뛰고 있다. 얼마 전, 개념은 달나라에 이미 갖다 준 한 보수 논객이 정대세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떠든바 있다. 그가 자신의 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 말했다는 것이 국보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거기에 검찰은 맞장구를 쳤다.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다들 정신병자가 아닌가 싶었다. 북 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했던 그가 자신의 조국이 북이라고 말한 것이 위법인가? 그는 언제나 남과 북 모두 자신의 조국(어머니 나라)이라고 말해왔다. 하긴 지금 이 사회가 온전히 제정신으로 살아가기엔 조금 벅차기도 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보수 논객의 북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과 증오는 돈이 오고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최전방인 프로 스포츠에서조차 이념을 잣대로 판단해버리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한심하다.

 

책은 재일조선인축구단의 역사와 그 역사 속에서 빛을 발했던 이들의 이야기다. 이는 온전히 우리네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일본에서 프로축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3년 이전까지 일본 열도를 제패했던 재일조선인축구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정대세, 안영학, 이충성 등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재일조선인 출신 프로축구 선수들의 뿌리. 일본에 살고 있는 모든 재일동포들의 자존심이자 희망이었던 재일조선인축구단. ‘조고참배라는 신화와 같은 단어를 만들어냈던 그들은 진정 남북 모두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재일 3세 출신의 언론인인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도 많이 알려진 정대세를 시작으로 재일출신 J-리거, 혹은 재일조선인 축구선수와 축구인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겪어야 했던 방황과 상처, 아픔을 그들의 입을 통해 소개한다.

 

조선인이란 이유로 차별받고, 재능마저 마음껏 발휘할 수 없었던 그들. 하지만 그들은 절대 지지 않고, 무릎 꿇지 않는다는 각오로 그라운드를 누볐고, 결국 일본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인 J-리그에 입성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아울러 때로는 인공기를 달고, 때로는 태극기를 달고 세계무대에 나섰다.

 

가슴 벅찬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가슴이 더욱 뻐근했다. 축구로 민족 분단의 설움, 일본의 탄압을 버틸 수 있었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정작 이들의 조국인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한다.

 

지난 721일 동아시안컵 축구대회에 참가한 북의 여자대표팀과 우리 한국 여자대표팀의 경기를 관람했다. 남북의 여걸들은 저마다 맘껏 기량을 뽐냈고, 서로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 세워주며, 스포츠정신과 민족애를 함께 보여줬다. 어찌 맘이 울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연신 사진을 찍어대면서도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인 것으로도 아름답다!’는 생각뿐이었다.

 

붉은 악마에게 살짝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북 여자팀이 볼을 잡고 골문으로 쇄도할 때마다 야유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울러 경기장에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하지 못하게 막은 것, 통일과 화해를 염원하는 현수막을 내걸지 말 것 등 참 속 좁아 보이는 모습이 많았다. 게다가 경기장 앞에는 탈북지원단체가 와서 북을 비방하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도 했다. 국제적인 행사의 일원으로 참가한 손님한테, 정말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스포츠는 많은 것을 보여주는 행위다. 그리고 메시지이다. 특히 남북 간의 스포츠 교류는 정치가 하지 못하는 많은 부분을 이뤄낼 수 있다. 경색 국면을 넘어 파탄의 지경으로 가고 있는 남북 관계의 현 주소를 볼 때, 스포츠 교류를 통해서 부드럽게 풀어나가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고 참배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자. 조선학교, 민족학교 즉 재일조선인들이 만든 학교는 일본의 전국대회에 참가할 수 없었다.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팀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조선학교에는 어김없이 축구부가 존재했고, 그들의 실력은 어느 일본 팀과도 겨루어도 뒤지지 않았다. 공식적으로 대회에 나가 경기할 수 없었던 조선학교 축구팀은 친선경기라는 이름으로 일본 학교 팀들과 대결했다. 그리고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민족학교만을 위한 전국체전인 재일 조선학생 중앙체육대회에서 30번이나 우승을 차지한 조선고급학교 축구팀. 이들의 막강한 실력은 곧 일본 열도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조고 참배이다.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 일본의 축구 명문 고등학교들에게는 필수 코스였던 조고 참배는 자기들의 실력을 가늠하기 위해 도쿄 조선고급학교 축구부와 시합하는 것을 뜻했다. 도쿄 조선고급학교를 상대로 이기면 전국대회에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전설이 생겨난 것도 그 즈음이다. 이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일례로 아키타쇼교 고등학교가 먼 길을 달려 도쿄까지 찾아왔고, 1964년의 연습시합 때 50으로 패했던 나라시노 고등학교는 1965년도 고교선수권대회에서 오사카 메이세이 고등학교와 동시 우승을 차지하자마자 조선고급학교로 몰려왔다. 이유는 단 하나, 진정한 승자를 가리자는 것이었다. 우승기까지 들고 기세등등하게 입장 행진을 하며 등장한 나라시노 고등학교. 하지만 결국 그들은 조선고급학교에 참패하고 돌아가야만 했다.

 

단지 공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수많은 설움과 그리움, 아픔과 상처는 오기와 끈기로 무장한 조선인들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들은 공을 차며, 땅을 구르며, 머리를 부딪치며 우리는 조선인이야. 절대 지지 않아!’ 라고 외쳤다. 그들의 이야기는 절로 머리를 숙이게 하고, 또 다른 뭉클함으로 다가온다. 우린 조선인이라는 사실.

 

일본에서 오늘도 극우정권 하에서 갖은 차별과 탄압을 받으며, 그럼에도 웃으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조선학교, 민족학교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응원과 사랑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이 끝내 승리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민족의 미래를 담보로 어처구니없는 게임을 하고 있는 남북의 권력자, 당국자들에게 말한다. 제발, 민족적 양심을 저버리지 말고, 대화와 타협으로 다시 서로의 문을 열라. 그리고 그 와중에 다시 남과 북의 뜨거운 젊은이들이, 거기에 더해 타향에 살고 있는 우리 모든 조선인들이 하나가 되어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도록 해 달라.

 

우리는 하나다. 절대 지지 않는다.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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