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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책갈피 -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들의 초대
김옥림 지음 / 미래북 / 2011년 10월
평점 :
으악, 책 표지에 내가 그다지 맘에 들어 하지 않는 단어가 무려 두 개나 포진해 있다. ‘청춘’과 ‘멘토’. 왜 그러냐고? 어느 교수님이 ‘아파야 청춘’이란 위로 아닌 위로를 하신 이후로,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위로 아닌 위로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돈과 명예를 교수님을 비롯한 출판사에게 안겨 준 이후로, 왠지 청춘과 멘토라는 단어는 수상쩍은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까지 청춘들에 거의 관심이 없었거나, 혹은 단순한 피착취자, 소비자로 여겼던 사회 풍토에서 단숨에 이들을 사회의 중심 혹은 매우 중요한 세대로 부각시킨 것에는 일정 정도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청춘 바람, 멘토 바람이 분 이후에도 우리 청춘들의 팍팍한 삶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억지 춘향이 식의 위로를 날린 몇몇 자칭 멘토들만 부와 명예를 얻었다는 점은 나의 의심이 아주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겐 물론 따스한 위로와 격려와 필요하다. 최고의 학력과 두뇌를 자랑하는 이들이 오히려 가장 힘든 삶을 버텨야만 하는 현실.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꽉 움켜쥐고선 좀처럼 이들에게 넘길 생각을 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어린 친구들이 자신들의 길을 답습하며 살아 보겠다고 치고 올라오는 상황. 오호라, 이런 상황에서 위로와 격려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하지만 그게 전부가 되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청년실업, 무지막지한 대학 등록금 등의 문제는 슈퍼 울트라 멘토가 어벤져스처럼 떼로 몰려와도 해결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이는 제도적, 법적 개선과 함께 사회 전체적인 의식의 변화와 수반되어야 하는 아주 심각하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문제를, 대충 위로 좀 하고 대충 격려 좀 하면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생각은, 분명 매우 불순하고 비겁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안 되지. 양심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출판사와 저자만 실컷 배부르게 하는 힐링 도서나 멘토 어쩌구 하는 도서들, 또한 청춘을 들먹이며 폼 잡는 책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지금도 않는다. 나까지 그들에게 돈을 쥐어줄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대련 등 대학생 단체들이 반값등록금 집회를 하거나 실업문제 해결을 위해 나설 때, 조용히 다가가 피자 몇 판이나 통닭 몇 마리 슬쩍 안기고 오는 게 더욱 그들을 살찌게(!) 하는 것 아닌가. 많은 기성세대들이여, 나와 함께 피자 가게로!
아무튼 책을 이야기해보자.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만든 책인 듯하다. 물론 대학생이 읽어도 무난하고, 성인들이 한 번쯤 들여다봐도 손해는 아닐 것 같다. 책 표지의 선전 문구처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위인의 초대’이니, 그들이 ‘젊은 날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무대에 중심에 선’이야기들을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일단 저자는 무수히 많은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그 중 지금의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례나 일화 혹은 일생을 담았다. 정상회담이란 말을 처음 만들어낸 윈스턴 처칠 경부터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하나인 빌 게이츠까지. 분명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을 스캐닝 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 것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교훈적인 이야기들이 많다. 꿈을 위해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극복하고 결국 불굴의 의지로 성공한 이들의 일화는 분명 젊은이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관통하고 있는 ‘누구에게나 삶이란 참으로 귀한 것’이라는 메시지는 자칫 자신의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 청춘들에게 그야말로 따스한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나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풍기는 자기계발서의 냄새 때문이다. 어떻게 했기에 성공했다. 어떻게 했기에 돈을 많이 벌었다. 이는 결국 성공이라는 매우 주관적이고 다양한 견해가 가능한 이야기를 부와 명예라는 단 두 가지로 단순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부와 명예가 성공의 대표적인 상징이기는 하다. 하지만 과연 청소년들에게 이 두 가지만을 중심적으로, 그리고 매우 중요한 것처럼 강조한다면, 가뜩이나 돈과 권력 앞에 정의가 사라진 지금, 아이들이 무얼 느끼게 될까. 조금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위인전을 꽤 읽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는 책이 많았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승만이나 맥아더, 나폴레옹 등이다. 맥아더도 한심했고 이승만도 왜곡이 심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으리라 믿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상야릇한 위인전들이 많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최 무엇을 하였기에 위대한 인물이라 칭송받아야 하는지, 난 여전히 모르겠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잡스 형님도 그렇고. 요즘은 그냥 성공한 사람과 위인의 구별이 애매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그리고 청춘들에게는 다양한 성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꼭 권력자이거나 갑부, 연예인 등등이 성공의 유일한 사례가 아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수많은 청춘 중 정작 그런 성공의 사례에 들어갈 이들은 티끌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청춘들의 허탈감은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일이지만, 보잘 것 없게 보일 수도 있는 직업이지만, 이를 통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이웃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역시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난 그런 위인전, 그런 멘토, 그런 청춘 도서를 만나고 싶다.
저자는 책 날개에 자신의 화려한 이력을 빽빽하게 적어 넣었다. 출판사에서 준비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분명 확인했을 것이다. 조금 낮 간지럽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 스스로 ‘나 이렇게 잘났다!’고 외치는 이들 중 정말 알맹이가 꽉 찬 이들을 거의 목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한 번쯤 쭉 읽어 내려가며, ‘아, 이 사람은 이런 삶을 살았군’ ‘아, 이 양반은 이렇게 성공했군’ 정도로 읽는다면, 괜찮을 법한 책이다. 심오한 철학이나 위로나 격려는 접어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