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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웃음이 참으로 소중한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많은 나이를 섭취하진 못했지만, 정말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배가 당기도록 웃어젖힌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깜빡거린다. 결국 따지고 보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인데, 매일 출근길에 만나는 수많은 이웃들의 얼굴을 보자면 웃음기라고는 당최 찾기 힘들다. 하긴 모두들 얼굴을 스마트폰에 처박고 있으니 잘 보이지도 않지만.
예전부터 사람들을 곧잘 웃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온 편이다. 실없는 말장난이나 허무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피식거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다 지난 얘기고, 내 스스로가 웃음을 잃으니 남을 웃게 한다는 것은 더욱 더 힘든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람은 웃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게. 어처구니없어 짓는 쓰디 쓴 웃음이나, 허탈함에서 나오는 조소, 아니면 너무도 슬퍼 역설적으로 나오기도 하는 웃음과는 차원이 다른 웃음. 그런 웃음을 찾아야 한다. 그게 없다면 그야말로 재미 따위는 없는, 한심한 세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이 사회는 웃기가 너무도 힘들게 되어버렸다. 고작 웃어도 티브이에 나오는 버라이어티 덕분일 때가 많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스스로 웃음을 찾는다는 것은 이미 힘들게 된 것일까. 우리는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웃을 수조차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뭐 그럼에도 유재석이나 이수근에게 훈장 정도는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책의 저자인 엔도 슈사쿠는 《침묵》을 비롯한 기독교 계통 저술가로 유명한 일본 작가라고 한다. 아울러 20세기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이란다. 역시 무지무지하게 무지한 나로서는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고, 이 책이 첫 만남이었다. 뭐 살짝 창피하긴 하지만, 요새 워낙 바빠서….
작품 활동 내내 일본의 주요한 문학상은 거의 섭렵했을 정도로 대단한 문인이었다고 옮긴이는 설명하고 있다. 대표작이라는 《하얀 사람》《침묵》《깊은 강》중 내가 들어본 것이라고는 《침묵》정도이다. 정말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조용히 침묵해야겠다는 생각이….
그런데 정작 작가 자신은 자신이 심각한 주제의 글만 쓰는 ‘재미없는’ 작가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그렇게 싫었단다. 그래서 자신 스스로도 “나는 이런저런 형태로 나 자신이 경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애독자들에게 알리고자 했다”는 목적으로, 다양한 유머 에세이와 작품들을 썼다고 한다. 이 책 역시 그러한 시도 중 하나이다.
책에는 열두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첫 이야기인 〈마이크로 결사대〉는 사랑하는 여인의 병을 고쳐주기 위해 여인의 몸속으로 직접 들어간 한 남자의 애절한(!) 인체 탈출기가 그려진다. 딱딱한 똥을 뚫고 이어지는 사랑의 대탐험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아, 사랑의 위대함이여!
아울러 나머지 작품들도 모두 즐거운 미소를 짓게 만든다. 대부분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혹은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인데, 저급하다거나 요즘 식으로 말하면 ‘빵’ 터지는 스타일은 아니다. 은근히 우습고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러니까 책을 덮고 그날 밤 자면서 떠올리며 웃게 되는 종류의 유머다. 유쾌한 경험이다.
하루 24시간을 내내 심각한 얼굴을 하며, 조국과 민족의 미래만을 생각할 수는 없다. 혹은 내가 지금 이렇게 일하고 있는 것은 시간당 얼마를 버는 것일까를 계산하며 조급해 할 필요도 없다. 아마 그렇게만 산다면 급속한 노화와, 화병으로 갑자기 세상과 작별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우리는 웃으며 싸우고, 웃으며 인생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생활 속 사소한 웃음은 분명 우리의 삶과 투쟁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라는 전대미문의 자연재해를 겪고 난 이후, 급속한 침체와 자신감 상실에 빠져 있다. 그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원래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국가라 해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을 정도로 극우 성향인 아베 정권이 들어서 더욱 더 일본을 세계 속 ‘왕따’로 만들고 있다. 부디 일본인들이 다시 웃음을 찾고 개념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뭐 우리도 남 얘기할 상황은 아니지만.
일본이 자랑하는 작가 엔도 슈사쿠는 책을 통해 평범하면서도 품격 있는 유머를 선사하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하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새 우리의 마음도 예전보다는 덜 각박해지지 않을까 싶다. 출퇴근길에, 혹은 있는 힘껏 힘을 주는 화장실에서도 짬짬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자세를 바로 잡고 경건한 자세로 읽으면 안 된다는 소리는 아니니 오해 마시길.
제발, 일본이나 우리나 앞으로 웃는 일이 많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