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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김대중 완간 세트 - 전5권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무려 올 초에 읽었던 책을 이제야 이야기한다는 것이 매우 어색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읽은 책은 언제가 되었든 서평을 남겨야 한다는 매우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이렇게 늦었지만….
사실, 그런 이유도 있었지만, 이 책을 끝내 이야기해야하는 것은 정작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어쩜 스스로 무언가 절박하게 믿고, 기대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아직 이 땅에, 이 시대에 상식이라는 것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차마 버리지 못하는 미련과도 같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시절 연평도를 방문해서 한껏 폼을 잡고 온 적이 있다. 당시 역겨운 언론들은 청와대가 불러주는 대로, ‘현직 대통령 사상 최전방 방문’이라고 떠벌리기 시작했다.
요새 언론들이야 하는 짓이 그런 것밖에 없으니, 이해하자 싶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좀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네들이 주장하는 대로 MB가 최전방을 방문한 최초의 대통령이라면, 그만큼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 최전방까지 방문하는 용기를 가진 위대한 인물이라면, 보수를 위장한 양아치 집단들이 소위 말하는 ‘적진’인 북한의 한복판에 들어가 ‘적장’과 담판을 짓고 내려온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일까? 그들은 위대함을 넘어 초월적인 존재라도 된단 말인가?
역설적으로 청와대와 MB의 유치한 허세가 멍청한 언론을 타고,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더 높게 평가하게 만든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은 셈이다. 멍청하면 이래서 이래저래 골치 아프기도 하지만, 가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주기도 한다.
예전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경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었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남북관계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차라리 박근혜 보다는 이명박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는 생각. 이는 이명박이 대북정책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전이나 철학이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남북문제, 민족문제, 통일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더 두려운 것은 박근혜였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하지만, 난 애초부터 박근혜가 북한을 싫어하는 차원을 넘어 증오한다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개인적인 가족사와도 연결이 되겠지만, 애초부터 박근혜는 강력한 반공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뭐, 부친 박정희의 경력을 따지고 들자면 친일과 종북(남로당)의 피도 흐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난 박근혜가 더 두려웠다.
그리고 지금이다. 상황을 보자. 이명박조차 건들지 않았던 최후의 마지노선 개성공단은 이제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이 먼저 부당한 조처를 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의지만 있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개성공단은 재가동될 수 있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아울러 박근혜는 자신이 후보 시절 이야기한 것들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당최 내용을 알 수 없는 구호만 외치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라는 더더욱 달성하기 힘든 이야기까지 떠든다. 사실 그것은 미국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구상이다. 외교부는 아직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구상조차 만들고 있지 못하다. 한심할 따름이다. 일단 말로만 떠들고 본 것이다.
이명박은 다시 말하지만 국가를 경영할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당장 자신에게 주어질 이해관계, 쉽게 말해 돈에 따라 모든 것이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돈에 관한 한 그의 꼼꼼함은, 전두환에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남북관계가 다 뒤집어져도, 남북 서로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져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북과 잘 지내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봤자, 자신의 지지층만 불만을 가질 뿐, 어느 하나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북관계는커녕 외교의 기본적인 ABC조차 모르는 것들이 남북관계를 한답시고 설레발을 쳤고, 결과는 보시는 대로다. 북은 그 사이 핵 개발 능력을 더욱 키웠고, 이젠 비공식적인 핵 보유 국가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은 북한의 핵 개발 능력을 키워준 ‘반역 행위’를 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담, 박근혜는? 2002년인가, 북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한 경험까지 있는 그는 전향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인가? 과연 그는 남북관계 복원이라는 역사의 책임을 이행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봐서는 그것도 희박해 보인다. 현재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지지도가 60~70%를 넘어서고 있다. 개념 상실에다가 남북관계에 전혀 무관심인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정부 역시 기고만장이다. 즉,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말씀. 남북관계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계획? 지금으로썬 이명박 정부와 다른 것이 단 하나도 없다.
명색이 한 국가의 정보기관이라는 국정원은 동네 양아치 집단의 수준을 못 벗어나고 있다. 게다가 대선 개입이라는 사상 초유의 불법 행위를 저질러놓고도 오히려 그걸 무마하고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두 정상의 대화록까지 공개하는 반국가적 행위를 서슴없이 저질렀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저지르면서도 반성이나 쇄신의 노력은 없어 보인다. 아니, 스스로 자신들이 잘못했다는 사실조자 인지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분명 사라져야 할 집단이다. 반국가 행위로 모두 다 잡아넣거나.
지금의 국제정세로 볼 때 앞으로 한반도 및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우리의 주도권이나 자율성, 독자성은 더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어느 유명 대학의 국제학부 교수라는 이는 이명박 정권의 외교정책 중 잘 한 것으로 한미동맹 공고화를 통한 한반도 문제, 남북문제에서의 자율성 확보 및 강화라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과의 관계를 10년 전으로 되돌려놓고 미국에 더더욱 종속되면서 경제적, 정치적 자산을 탕진한 것이 성과라고 주장하는 것에도 우습지만, 지금 전시작전권이라는 핵심적 주권을 다시 한 번 엎드려, 미국에 빌며 더 갖고 계셔 주십사 비는 꼴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올지 궁금하다. 어느 나라의 교수인지, 일단 자신의 독자성과 자율성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미국과 중국, 즉 G2는 자국의 핵심적인 이익을 위해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그 이익의 핵심적 충돌지점인 한반도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즉 이 두 나라의 이익에 맞게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갈 것이라는 소리다. 거기에서 과연 박근혜 정부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없이 자율성과 독자성을 지켜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지금 하는 짓으로 봐서는 그럴 생각조차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국민들은 5년에 한 번씩 투표를 통해 바쁜 국민 대신 직업적으로 국정을 운영할 대표 종을 뽑는다. 그게 대통령이다. 대통령은 위대한 왕이 아닌, 국민의 대리인, 국민의 종이다. 그런데 그 종을 한 번 잘못 뽑으면 사달이 나고야 만다. 주변에서 호심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는 강대국들과 수많은 국제적 이익집단에게 우리의 피와 땀을 고스란히 넘겨주게 된다는 소리다. 조선시대 말 우리가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어리바리하고 있을 동안 일본은 국력을 키워 일사불란하게 동아시아를 집어 삼켰다. 우리가 첫 희생물이었고. 그런 꼴이 또 다시 반복되어선 안 되는 것 아닌가.
일단 박근혜 정권은 국가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불법 개입으로 만들어진 정권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상실했다. 게다가 대통령이란 작자는 나 몰라라 하면서 자기는 몰랐다는 한 마디만 지껄였다. 국민을 자신의 주인이 아닌 하찮은 종으로 보고 있다는 소리다.
매일 매일 많은 이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다. 공정해야 할 대선에 부정적인 행위가 개입되었다면, 그렇게 해서 정권을 얻었다면 이는 시정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며 살아간다.
촛불을 들고 외치는 이들은 처자식이 없을까? 전부 백수일까? 혹은 간첩인가? 생계를 핑계로 불의 앞에 침묵하는 것은 조․중․동 찌라시 언론이나 종편 방송에서 떠드는 거짓말쟁이들과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더 치사하고 비겁한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그 따위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드는 인간들은 자신의 수준이 그 정도 뿐이라는 것은 인정하는 셈이니까.
김대중 대통령은 마지막 날까지 우리들에게, 불의 앞에 절대 침묵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하다못해 담벼락에 대고 욕이라고 하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제 알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무감각해지고, 세상 모든 비정상적 상황에 덤덤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엔 나 자신까지 불의와 타협하게 되기 때문이다.
연초 다시 한 번 거인의 삶을 되돌아보며, 지금 정치를 한다고, 국민들을 위해 봉사한다고, 거국적인 일을 한다고 떠드는 것들의 하찮음을 느낀다. 온갖 그럴 듯한 언사로 국민들을 속이고, 이용하고, 버리는 인간들. 그들의 모습에서 과연 정의가 무엇이고, 진정 정치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이 땅의 한 사람으로써 내가 가야 할 길도 돌아보게 되고.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김대중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더 겸손해지려 노력했다. 그는 무엇보다 분단 이후 최초로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북한을 방문하고, 남북 간의 합의를 이루어낸 인물이다. 여기에 어떤 하찮은 것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는가. 이명박이 연평도 방문? 소가 웃는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겪으며, 이 두 정권 내에서 장관이 되어 관료가 되어 정치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을 돌아보게 된다. 이미 돌아가신 고인들에게 저주와 증오를 퍼붓는 인간들도 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주제도 모르고 ‘국격’을 떠들었다. 박근혜 정부는 ‘격’이 안 맞는다고 남북 당국 간 회담을 거부했다. 진정한 국격, 진정한 격을 아는 이들이 전무한 지금의 모습이다.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여전히 아직까지는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를 우리는 얻지 못했다. 우리는 하루라도 빨리 김대중을 극복해야 한다. 넘어서야 한다.
한심한 것들이, 화장실에서 똥을 싸는 순간에라도 이 책을 읽어봤으면 한다. 허접한 극우 사이트나 야동이나 보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