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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문재인 - 운명을 바꾼 남자 ㅣ 백무현의 만화 현대사 인물열전 1
문재인.백무현 지음 / My Dpot(마이디팟)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지난 해 대선 직후 외신이 뽑은 한 기사의 제목이 새삼 떠오른다.
‘독재자의 딸이 인권변호사 출신 후보를 누르다!’
글을 쓴 기자의 머릿속에 어떤 감정이 소용돌이 쳤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기사의 제목이 너무나 부끄러워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물론 상당히 화끈거린다. 나를 비롯한 이 시대를,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두고두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선거의 결과가 명백해졌을 때, 과연 문재인의 머릿속엔 무슨 생각이 떠올랐을까 상상해봤다. 당연히 친구를 떠올렸을 것이라 생각했다. 대통령 노무현이 아닌 일생의 벗 노무현. 그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 그가 꿈꾸었던 세상. 친구는 자신의 영원한 동지이자 친구의 못다한 꿈을 이루지 못한 미안함에 많이 떨었으리라.
문재인은 MB보다 많은 득표를 하고도 낙선했다. 역대 대선후보 중 가장 깨끗했으며, 여당조차 아니 MB 시대의 수많은 권력의 ‘개’들조차 흠을 찾지 못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화가 없다. 그는 꽤 괜찮은 정치인이자, 남자다.
하지만 그는 부친의 잘못에 대해 그 어떤 죄의식이나 역사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이에게 패배했다. 독선과 아집이라면 MB 못지않은 이에게 패배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패장이다.
5년이란 시간을 흡사 50년처럼 느끼게 한 MB정권을 단죄하지 못하고, 다시 ‘그 나물에 그 밥’들에게 5년을 빼앗긴 책임에서 그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언제나 역사가 그래왔듯, 그 역시 시대의 소명을 다한 정치인이었다. 그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의 묘역을 찾아 헌화한 화환의 말은 “배운 대로 하겠습니다”였다. 그 말처럼 그는 일생동안 그가 배운 대로 행동했다. 부당한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고, 일생의 벗이 힘들어할 때 손을 잡아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때로 노무현보다 더 크게 보이는 이유이다.
책은 인간 문재인의 이야기다. 한 권이라는 짧은 분량 속에 한 인간의 삶을 녹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백무현 작가는 최대한 인간 문재인의 ‘운명’같은 삶을 담아내려 애썼다. 문재인을 반대하고 노무현을 거부하는 이들이 보기에는 다소 과장이나 왜곡처럼 느껴질 수 있는 부분도 간혹 보이지만 거짓을 담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민주당 덕분에(!) 문재인 역시 비난의 화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울러 그는 조금은 얄미워 보이는 안철수처럼 재빠르지도(!) 못하다. 천성이 그런 사람이다.
책은 문재인이 비겁한 삶, 굴복하는 삶을 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독재정권에 끝까지 저항했다. 역사에 대한 인식도 좌고우면하지 않았다. 현 대통령과 그가 분명히 다른 점이다.
저자는 그의 삶을 ‘암울하기 짝이 없는 현대사의 샅바를 잡고 씨름해온 역사’라고 표현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음을 느끼게 된다.
앞으로 어느 시점까지 문재인이 패장이란 오명을 안고 살아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의 패배는 우리 모두의 패배라는 것이다. 바른 역사와 정의를 애써 외면한 우리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절망의 책임을 계속 그에게만 떠넘기는 찌질한 짓은 그만했으면 한다. 여전히 대소변을 못 가리는 유아틱 민주당도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치가 떨리게 억울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은 끝이 났다. 하지만 문재인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더러운 욕망들이 칼춤을 추는 우리 정치풍토에서 정치인 문재인은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리고 훗날 그가 현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 보여줄 것들은 적지 않다. 최소한 본받고,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정치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그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 그가 써내려갈 운명의 역사도 함께 지켜봐야 할 것이다. 많이 속상하고 억울했지만, 그를 선택한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 난 여전히 그를 믿고 지지한다. 꿋꿋하게 역사를 믿고 계속 그렇게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의 친구, 우리들의 대통령이 꾸었던 꿈은 아직도 이뤄야 할 ‘꿈’으로 남아있다. 오래도록 그와 함께 그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힘내시라! 그리고 나 역시 힘 내자! 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