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정부 시민의 경제 -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
우석훈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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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기억력이 지금의 수준보다 더 높았다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불과 넉 달 전 많은 이들은 ‘멘붕’에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물론 그 사이 많은 이들이 멘붕을 넘어 좌절의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아픈 일들이 있기도 했지만, 대부분 더 많은 이들은 또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맞으며 이렇게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인간의 짧은 기억력은 때론 축복이다.

 

정말 절묘하게 이번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신상에 여러 가지 변화가 겹쳐 서평이 상당히 늦어졌다. 결혼한 지 5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는 이유마저 “MB정권의 암흑기에서는 내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정치적 이유(!)’를 들먹이며 변명했던 내게도 결국(?) 축복이 내려와, 귀엽고 벌써 한 성질 하시는 딸을 얻었다. 덕분에 게으른 내 성질에 더더욱 서평이 늦어졌고, 이렇게 지난 해 읽은 책들을 새삼 반성하듯(!) 돌이켜본다.

 

자신을 늘 ‘C급 경제학자’라 표현하는 우석훈 선생이 자신의 독특한 이력, 즉 정부에서도 일해 봤고, 기업에서도 밥을 벌어먹고 살았으며,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경험을 돌이켜 써내려간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 이후 연이어 《모피아》와 같은 소설도 펴냈으니, 우리나라에서 비록 C급이라도 경제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상하네. A급을 자처하는 이들은 상당히 여유로워 보이던데….

 

아무튼 이 책은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경험 속에서 아쉬웠던, 또는 즐겁고 보람 있었던 이야기들을 담아 흥미롭다. 또한 시민운동 속에 ‘시민’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MB정부 이후의 대한민국 정부가 ‘시민의 정부’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시민의 경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증오의 정치’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뭐, 대다수 사람들이 인정하지만 좀처럼 발설하지 않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치를 잊어서도 안 된다. 왜냐? 우리가 증오하는 바로 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망각이기에. 저자의 조금은 밋밋한 제목은 여기에서 만들어졌다. 이젠 시민이 사회의 주체이면서, 동시에 경제적 주체로 등장하는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그나마 바람직한 대한민국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이제 그럴 때가 되었다는 확신과 바람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저자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결과는 다르게 나와 버렸다. 그리고 어느새 시간이 조금 지났다. 최소한 5년은 더, 시민은 시민대접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뭐,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 보인다.

 

신기한 일들이 반복적으로 벌어진다. 자신이 지지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다음부터는 이상하게 그 사람에 대한 칭찬보다는 비판이 더 잦다. 이럴 때에는 지하철에서 만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히려 더 순수하고 정상으로 보인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정비한 복지제도를 통해 수혜를 받으면서, 그것을 가지고 박근혜를 칭찬하더라도 말이다. 뭐, 아무튼 의리는 있잖아.

 

지난 대선을 앞두고 정말 많은 이들이 이번엔 제대로 국민의 힘을 보여주자고 했다. 그리고 5년 마다 한 번만 주인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고, 5년 내내 국가의 주인다운 모습을 갖자고 외쳤다. 구구절절 아름다웠으며, MB의 크나큰 은혜 덕분이었다. 우리가 왜 시민이어야 하는지 절실하게 가르쳐 주셨기 때문이다.

 

정치는 치열한 권력 투쟁과정이다. 때문에 증오가 판을 친다. 얼마 전 정치에서 물러난 유시민은 자신이 그러한 투쟁을 즐기지 못했기에 정치인으로서 성공하지 못한 게 아닐까 라고 빠르게 회고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마다 정치를 하는 방식도 다르니 뭐라 할 순 없겠다.

 

아무튼 증오는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지독한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내가 경험해 봐서 안다. 아니 지금도 상당 부분 그렇게 피곤하게 살고 있다. 아니, 세상에 즐겨보는 신문, 방송 등을 기준으로 어떻게 훌륭한 사람, 나쁜 사람을 나눌 수 있겠는가! 난 그렇게 거칠게 편 나누는 인간 중 하나였고, 여전히 거기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피곤하다. 상당히.

 

그래서 이제 조금 덜 피곤하고 더 즐겁게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석훈 선생의 글을 즐겨 읽는 이유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의 글은 꽤 발랄하면서도, 동시에 증오를 완전히 태워버리지는 않는다. 여지를 남겨둔다는 말씀. 상당히 괜찮다. 그리고 소모적인 증오보다는 이유 있는 반전을 준비하도록 선동(!)한다. 영리한 C급 같으니라고!

 

5년 동안 MB를 욕하느라 입이 아팠다. 그렇다고 박근혜가 그에 못지않게 개판을 치는데, 입을 다물 생각은 없다. 내 키보드는 여전히 빠른 타수를 자랑하는 독수리로 난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 소모적인 정신적 학대는 하지 않으려 한다. 그보다는 더 즐겁게, 더 유쾌하게 반대하며 비판하며 증오할 생각이다. 아울러 우리가 진 이유를, 그들이 이긴 이유를 찬찬히 되씹으며 다음 기회를 노릴 것이다.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 시민의 경제적 주체가 되는 사회는 분명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시민이 되어야 한다. 시민은 무엇일까? 유시민에게 물어보라는 농담은 마시고. 결국 참여자이면서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나라에서 돌아가는 모든 일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완전히 손 놓고 멍청이로 그저 숨만 쉬고 살아가는 것에는 격하게 거부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시민이라고 믿는다.

 

서평이랍시고 내 얘기만 또 주절거린다. 암튼 이 책, 읽어볼 만하다. 우석훈 선생은 대선에서 다른 결과를 예상하고, 그 다른 정부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예상이 틀렸다고 내용까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일단 재미있고, 심히 유익하다. 한국정치사와 더불어 시민운동사도 살짝 엿볼 수 있다. 지극히 편파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없는 말 지어내는 양반은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우 선생은 대선 직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뭐,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여전히 필요한 말이다. 이번 5년은 이것부터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뭐, 싫음 마시고.

 

“우리는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부르고, 그렇게 정체성을 느끼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민의 정부가 온다. 그리고 그게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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