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여행
신은미 지음 / 네잎클로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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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같은 비정상적이고,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어쩌면 꽤 어색한 글, 서평이 될 수 있겠다. 굳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남북 관련 뉴스를 TV나 라디오를 통해서는 접하지 않고 있다. 무참하기도 하고, 또한 억장이 무너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다시 후손들에게 전쟁을 선동한다. 덩달아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도 전쟁을 외친다.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이들도 너무나 쉽게 전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론과 방송이라는 껍데기를 뒤집어 쓴 종편 채널 장사치들은 또 다시 자신들의 장기인 안보 장사에 혈안이다. 24시간 온통 전쟁이야기, 북에 대한 비난과 갈등 조장이다. 누가 봐도 지극히 필사적인 모습이다. 암담하고 무참한 세월이 다시 이어지고 있다.

 

왜 이러고들 있을까. 정작 일반 국민들은 당장 먹고 살기 바빠, 그야말로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피난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사는데, 왜 끊임없이 전쟁판을 벌이지 못해 안달일까. 지난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해서 범하는 것.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라 하지만, 지금처럼 참담하고 기가 막힌 적이 또 있었던가.

 

지난 해 재미동포 신은미 선생의 방북기가 인터넷 언론에 연재되고, 잔잔한 반응을 얻을 때에는 아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선을 치르기 전이었고, 남북관계 복원과 개선을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를 비롯해 박근혜 후보조차도 남북관계 복원과 대화를 약속한 상황이었다. 막혔던 금강산, 개성을 다시 열고 남북의 당국자들이, 더 나아가 정상들이 만나 MB정권 5년의 어리석음을 되돌릴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과 같다. 대통령 선거에 비정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열광하며 많은 표를 던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던 이들은 이제 침묵하고 있다. 그들이 바랐을지도 모르는 경제 활성화는 여전히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남북의 긴장과 위기상황은 점점 글로벌화되고 있다. 무엇을 기대했는가? 무엇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는가?

 

물론 우리만의 잘못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북의 지도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역시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북 경제발전을 위해 너무 많은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

 

조심스레 대화를 주장하던 미 행정부 관료들은 물론, 한국과 중국의 입지 또한 비좁게 만들었다. 도발이라는 카드를 기만전술 사이에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것도 수위와 시기가 어느 정도 조절되어야 한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자신의 위협 발언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 큰 위협과 도발을 반복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했다. 북의 인민들은 물론 한반도 구성원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인 행동이다.

 

먼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처한 상황을 냉철히 인식했어야 한다. 믿지는 말되 대화의 끈, 테이블은 계속 남겨두어야 했다. 이젠 대화에 다시 진지하게 나서야 한다. 미국 역시 당연하다. 북의 핵 수준을 이 정도로 규모 있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미국 자신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한민국 국민들이 강심장이어서 그런 것인가? 전 세계가 한반도 내에서의 긴장상황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정작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만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일까? 보수 언론을 자처하는 안보 장사치들의 주장처럼 안보 불감증 탓일까? 정작 우리는 아무런 생각 없이, 개념 없이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만약 자신의 안보관이 의심스럽다면 이 책을 찬찬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을 덮고 아련함과 그리움 그리고 눈물이 맺힌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인 한반도의 구성원이자 한민족이라고 생각해도 별 무리 없을 것이다.

 

자신을 매우 정상적인 보수주의자라 믿으며 평생을 살아온 저자. 언제나 공화당을 지지하며, 북을 ‘악의 축’ 국가,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불량국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저자는 난생 처음 밟은 북, 처음 찾아간 평양 여행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된다.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그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 이들일까’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여행은 결국 저자에게 ‘어쩌면 우리와 이렇게 같을까’라는 동질감만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낸 결코 쉽지 않았을 세월. 분단이란 괴물이 남과 북 젊은이들에게 남긴 질긴 상처에 절망하고 오열하고 말았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형제들에게 총을 겨누며, 젊음을 증오와 적대로 소모하고 있는 남북의 젊은이들. 저자는 이들이 총을 던지고, 대신 서로의 손을 굳게 잡길 희망한다. 증오와 적대보다는 동포라는, 가족이라는 연대를 다시 회복하기를 바란다.

 

과연 그것이 보수 언론이나 이데올로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북이자, 빨갱이로 낙인찍어야 할 이유가 될까? 저자의 간절한 희망이 국가보안법에 저촉되는 불순한 생각일까? 반역일까? 과연 누구에 대한 반역일까?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몇 번이나 울컥함을 참아야 했다. 왜 지극히 당연한 생각, 느낌에 나는 가슴 아프고 눈물지어야만 했을까. 외눈박이들만 살고 있는 이 곳에 비로소 두 눈을 가진 이를 만났기 때문일까?

 

지금은 너무도 어둡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 깜깜하다. 누구도 불을 밝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어둠이 이어지면 결국 우리 모두가 다시는 빛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짐짓 모른 척 눈을 감고 있다. MB정권에 이어 다시금 종북, 친북좌파라는 증오의 칼날이 춤추고, 10년 전만 해도 평화와 상생을 이야기했던 곳곳에는 침묵과 광기가 번뜩인다.

 

적대와 증오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상생과 평화만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하지만 동시에 모두 인간의 존엄성을 자키며, 품격을 지키며 죽을 자유가 있다. 권리가 있다.

 

더 이상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은 이들에게 전쟁을, 무의미한 죽음을 강요하지 말라. 평화를 이야기하고, 공존을 호소하라.

 

지극히 평범한 아줌마의 여행기가 눈물겨운 평화의 메시지가 되어버린 지금은 너무도 무참한 세월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고마운 책이다. 평화에 목마른 이들, 그리움이 그리운 이들에게 너무도 소중한 고마운 책, 그리고 이야기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를 다녀온 저자의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슬픈 여행’. 평화를 간절히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픈 이야기다.

 

“슬픔의 눈으로 대상을 바라볼 때,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솟아남을 느꼈다. 사랑으로 바라보니 그 어떤 것도 굴절되거나 삐뚤어짐이 없고 어그러짐 없이 제 모습대로 보였다. … 우리의 편견과 오만함이 훗날 사랑하는 후손들에게 굴욕의 역사로 남아 갚지 못할 부채가 되지는 않을까. ‘희망이 없다’고 외치는 아이들에게 최소한 우리가 저질러 놓은 조국 분단이 빚만이라도 해결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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