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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인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대통령 선거를 통해 강렬한 의문이 하나 들었다.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이들의 정신 상태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미 이명박과 같은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우리지만, 이건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상대 후보가 문재인이 아니라 어떤 후보라 하더라도, 설사 아무리 형편없는 후보라 하더라도, 최소한 기권을 하는 한이 있어도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은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군홧발로 짓밟고, 18년이란 세월을 ‘대통령’이 아닌 ‘왕’으로 군림했던 사람, 그리고 수많은 이들을 억압하고 끝내 생명까지 빼앗았던 사람. 죽기 직전 부마항쟁에 나선 수많은 국민들을 탱크로 밀어버리는 한이 있어도, 권력을 놓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 마치 봉건시대 군주와 같이 수많은 여성들을 성의 노리개로 삼았던 사람.
일본식 이름을 두 개나 갖고,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 동료를 팔아 생명을 부지하고, 오직 권력을 잡겠다는 생각만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 바로 그 사람의 딸에게 다시 ‘대통령’이란 직책을 맡길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그러던 중, 이 책이 떠올랐다. 사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또한 왜곡된 사실을 사실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자신의 하찮은 이익을 위해 때로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러한 자신의 선택을 얼마나 확고하게 믿고 있는지. 책은 그 이유와 현상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프레임은 ‘나’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다. 마음의 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건물 어느 곳에 창을 내더라도 그 창만큼의 세상을 보게 되듯이’우리는 프레임이라는 자신만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현상을 이해하고, 행동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이유는 비단 그의 아버지 때문만은 아니었다. 정치인으로써 박근혜가 보여준 것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국회의원이란 자리에 있으면서 그가 한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국민을 위해, 남북의 평화를 위해, 이 땅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일까? 무지한 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잘못된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채색되고 왜곡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착각과 오류, 오만과 편견, 실수와 오해로 가득 찬 인간은 결국 그 허점들로 인해 자신에게 전혀 유리하지 않은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저자는 “어떤 프레임으로 세상을 접근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삶으로부터 얻어내는 결과물들은 결정적으로 달라진다”고 말한다. 똑같이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보잘 것 없는 일이라 생각하면 불행해지고, ‘나는 지금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고 있다네!’라고 느끼면 돈벌이를 넘어 자기만족과 자존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때문에 저자는 보다 높은 상위의 프레임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직업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하위 수준의 프레임이 아닌 상위 수준의 프레임을 가질 것을 권한다. 그만큼 자신이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저작을 통해서였다. 어떤 프레임을 만들어 제시하느냐에 따라 선거 등의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었는데, 예를 들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점령’으로 보느냐 ‘전쟁’으로 보느냐에 따라 미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인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박근혜 후보는 프레임을 적절히 선점하여 매우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복지 분야를 선점했고, 경제민주화 등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 역시 야당보다 먼저 치고 나오는 과감함을 보였다. 아마 이것도 선거 승리의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책은 여러 가지 심리학의 법칙과, 실험을 통해 증명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한다. 동시에 인간의 선택은 생각보다 합리적이지 않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에는 보다 신중히, 그리고 먼 미래를 생각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매우 불완전하다. 미완의 존재로 엉겁결에 지구상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때문에 너무나 많은 오류를 저질렀고, 지금도 그렇다. 과연 지구라는 행성이, 자연이 인간의 어리석음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인지 솔직히 불안한 상황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인간에게 희망을 걸 수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의 불완전성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인간은 보다 신중해 질 수 있고, 본능과 이성의 조화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해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국민의 절반이 넘는 수의 선택. 부디 그 선택이 또 다시 후회로 돌아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잘못된 프레임에 갇혀 잘못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새로운 반전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한다. 비록 그 기대가 그리 크진 않지만.
책을 덮으며 어쩌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최상의 프레임은 용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남들이 정해놓은 틀이 아닌, 남들이 가라고 하는 길이 아닌, 내가 바라보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는 것. 거기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를 사사로운 이익에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
일단은 그런 용기를 잃지 않는 것을 올 해 목표로 삼았다. 아마도 적지 않은 시련이 닥칠 올 해. 그 용기만은 간직하고 싶다.
아, 책을 통해 가장 인상 깊게 배운 것 하나. 후견지명 효과를 경계하자는 것이다. 과거는 오직 현재에 와서만 질서정연하게 보이는 법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두고 ‘내가 이럴 줄 알았지!’하며 지혜를 뽐내는 것은 볼품없는 짓이다. 지금 많은 이들이 후견지명 효과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민주당의 패배 원인에 대해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평가들. 이미 떠나간 버스에 대고 소리 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추해 보인다. 그만들 하셨음 좋겠다.
진심으로 박근혜 정부가 잘 하시길 바란다. 진심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를 반대했던 이들은 물론 지지한 이들까지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각자의 프레임으로 선택한 결과. 그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유난히 이 문구가 자주 떠오르는 지금이다.
“실수한 적이 없는 사람은 결코 새로운 일을 시도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 앨버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