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가? - 4월에서 8월까지 모든 진보에게 묻는다
손석춘 지음 / 철수와영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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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태생 자체가 거대담론을 좋아해. 아주 많이. 때문에 내 월급 통장에 5만 원이 더 들어오는 것보다, 우리나라가 G20정상회의를 개최하고, 듣도 보도 못했던 핵안보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에 더 자부심을 가지라고 윽박질러. 뭐 사실 그렇게 좋아한 국민들도 별로 없었는데 말야.

 

그럼에도 권력은 말야. 우리가 그딴 건방진 모임이나 회의를 개최하거나 주최국이 된 것을 마치 국가가 꽤 성장한 것인양, 우리가 선진국으로 훌쩍 발돋움한 것인양 떠벌리곤 해. 그리고 그 따위 행사를 치르기 위해 국민들의 불편이나 뭐 이런 것은 신경에 쓰지도 않고.

 

손석춘 선생은 내가 정말 존경하는 분이야. 이상하게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 상당 수가 보수 진영에서는 친북좌파라고 하더군. 글쎄, 그 말이 사실인 것인지는 보수 진영이 그리도 좋아하는 ‘역사가 평가’해 주겠지만, 적어도 내가 존경하는 분들은 가식적이지 않고, 썩지도 않았으며, 남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도 않는 분들이야.

 

선생의 글을 읽다보면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돼. 그리고 진정 좋은 글은 온갖 미사여구에다가 외국 유명인사의 글 따위를 인용하는 게 아닌, 삶에서 우러나온 곰탕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 정말이지 고맙고도 고마운 분이야.

 

하지만 이번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는 감탄보다는 울컥거리는 마음을 계속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소위 진보 진영이 처해있는 아찔한 상황과 그렇게 된 배경,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생의 절실함이 담겨 있었거든.

 

통합진보당은 통합도 진보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너졌어. 진보 진영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같이 감방가고 같이 투쟁하고 같이 진보의 세상을 꿈꿨던 이들이, 하루아침에 죽일 듯한 원수 사이가 되었지. 누구의 잘못이냐도 물론 중요해. 억울하게 보수 진영이나 쓰레기 언론들에 의해 희생된 분들도 물론 계시지. 하지만 국민들은, 대다수 국민들은 말이야. 누구 잘못이냐를 따지지 않아. 그냥 ‘저것들도 별 수 없는 것들’이라는 생각으로 끝나. 국민들이 멍청한 탓도 있겠지. 하지만 진보 진영에서 보여준 자중지란은 분명 큰 잘못과 책임이 있어.

 

선생은 책에서 이 땅에 모든 진보들에게 호소하고 있어. 진보는 단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고. 그리고 모든 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진보의 새로운 시작을 다시 꿈꾸자고. 1960년 4·19혁명 세대에서 1996년 8월 연세대 통일집회의 한총련 세대까지. 이 땅의 모든 진보가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뜨겁게 일어서자고 말하고 있어.

 

우씨, 이런데 울컥하지 않겠어? 선생의 말처럼 지금 진보는 ‘신자유주의 체제와 분단체제를 넘어서는 운동’으로 거듭나야 할 시점이야. 말이 어렵다고? 돈이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전쟁과 증오를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말자는 말이야!

 

일부러 외면하면 세상은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다고 누가 말했어. 그런데 우린 이제 그 수준을 넘어선 듯해. 아무리 눈을 감고 귀를 막아도 무너지는 이웃들, 썩어가는 이 땅, 이 강, 이 바다, 더욱 더 착취를 일상화하려는 권력들의 광기가 느껴져. 하다못해 이 땅의 1%도 더 이상 편하게 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오고 있는 거야.

 

우리나라가 잘 사는 나라야? 도대체 뭐가 잘사는 나라야? 혹시 알아? 아이 낳기가 두렵고 노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률이 세계 최고인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야. 근데 잘 사는 나라야? 수치나 통계 좋아하시는 보수 분들 많이 있지? 한국갤럽에서 1992년과 2010년 사이의 소득변화와 행복지수 사이에 관계를 조사했거든? 이 시기에 국민소득은 3배나 커졌지만, 행복감을 느끼는 이들은 오히려 10%나 줄었어. 그리고 같은 시기에 하루 평균 자살자는 9.9명에서 42.6명으로 4배나 늘었고.

 

정말 생각해보자. 우리가 행복해? 그런데 아버지에 이어 권력을 잡겠다는 어떤 분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또 설레발을 치고 있다. 공부 좀 하신 분이 왜 그럴까? 우리나라는 더 이상 ‘내 꿈’으로는 안돼. ‘네 꿈’‘우리 꿈’을 함께 이뤄나가야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할 수 있다고. 우리가 없는 나는 이미 행복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까지 우린 남을 밟고 나만 잘 사는 것을 가르쳐 왔어. 우리 사회는 ‘우리의 꿈’을 말하면 포퓰리즘이고 좌파라고 낙인찍어. 오직 나만 잘 살면 된다고 말해. 이게 정상이야?

 

어떤 사람들은 또 그래. 이명박 정부 5년이 너무 괴로웠다고, 이번 선거에서 두고 보자고 이를 박박 갈아. 하지만 강인규 교수도 말했듯, 착각하지 마. 지금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이고, 최악의 야만 사회가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 잘못이 아니야. 지도자 하나 갈아치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우리의 비인간적인 탐욕이 비인간적이고 탐욕스러운 지도자를 고른 것 뿐’이야.

 

우린 모두 공감의 본능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더라. 한 아기가 울면 옆에 있던 아기들도 따라 울잖아. 연대의식을 발휘해 주는 거야. 혼자 울지 말라고. 우리도 옆에서 누가 하품하면 따라하지? 왜 그럴까?

 

미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가 바뀌지 전에, 바로 내가 바뀌어야 해. 내가 변한 딱 그만큼 세상이 변하는 거야. 자, 그럼 손 선생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뭐겠니?

 

진보도 역시 권력을 차지해야 하고, 그 권력을 온전히 국민들을 위해 정의롭게 사용해야 해. 맞는 말이야. 하지만 그 과정이 보수와 마찬가지로 더럽고 추잡스럽다면? 권력을 잡지 말아야해. 많은 사람들이 민주통합당을 진보라 말하더라? 미쳤어? 민주통합당은 단 한 번도 진보인 적이 없었어. 여전히 맘에 안 들겠지만, 이 땅의 진보는 정치세력으로 말하자면 여전히 통합진보당이고, 진보신당이고, 진보정의당이야.

 

정치가 중요해. 당연하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백 배는 중요해. 바로 당신이야. 당신이 투표를 하는 것도 아름답지만, 당신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더 중요해. 이웃을 존중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상식을 지키려 노력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우리는 거수기가 아니야. 5년마다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시민이 아니라고. 그때만 민주시민인 척 하지 말자고. 그냥 하루하루 더럽지 않게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니까 나는 완전 성인군자같이 보이네. 물론 나도 아니지. 나도 더럽고 겁 많고 찌질해. 하지만 적어도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어. 노력하고 있다고.

 

손 선생이 말한 것처럼 진보 진영의 대통합은 이번 대선 전까지 힘들 것 같아. 아무리 호소하면 뭘 하나. 인간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는데. 하지만 손 선생과 같은 분들은 반드시 이 땅에 존재해야해. 물론이지.

 

이 땅의 진보만 뭉치지 말자. 보수 진영들이 박정희를 반인반신의 경지에까지 올려 두었다고 한탄하지만 말고, 일상의 행동으로 쿨하게 상식을 지키며, 무엇이 정의인지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살자고. 그러면 반드시 희망은 생겨. 그리고 바뀔 수 있어. 손 선생의 간곡한 호소를 잊지 말자고. 기억하자고. 그리고 실천에 옮겨보자고.

 

아, 그러기 위해서 선생은 부단히 공부하고 토론하라 하셨는데, 이놈의 게으름이 영 발목을 잡네. 하지만, 지난 5년을 견뎠는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어? 함 해보자고! 아, 생각해보니 지난 5년은 정말 군대를 다시 갔다 온 것 같았어. 너무 박터졌어.

 

우리는 올 해 12월만을 위해 살진 않아. 내년도 오잖아? 책의 제목은 ‘세계 7대 강국의 찬가를 부르대던 2012년 6월 바로 그 시점에 수도권에서 어느 60대 부부가 남긴 유서의 첫 문장’에서 따온 거야.

 

‘그동안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월세방에서 15만 900원의 노인수당으로 살아온 노부부였어. 야, 이러면서 우리 선진국이니 복지병이니 경쟁력 강화니 떠들지 말자. 정말 양심 좀 갖고 살자고. 우리 인간이잖아.

 

바로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왜 무엇을 위해 억척같이 살고 있는지, 이제 우리 고민 좀 하고 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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