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3반
오토다케 히로타다 지음, 전경빈 옮김 / 창해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롤 모델이라는 단어가 이젠 꽤 친숙하게 들릴 정도로 많이 사용되는 것 같다. 닮고 싶은 사람, 훌륭한 사람 그리고 성공한 사람. 거칠게 의미를 설명하자면 이 정도이지 않을까. 암튼 언론이나 방송에서는 심심찮게 롤 모델들을 생산해내는 것 같다.

 

아울러 아주 오랜 관행(!)이랄까.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것이 있었다. 바로 장애인 롤 모델에 대한 것이다. 장애인 중 특출한 재능을 지녔거나 매우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 성공한 이들을 이슈화 시켜 본인이 원하든 원치 않던 특별한 롤 모델로 만드는 것. 물론 그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을 폄하할 생각은 없지만 아주 소수인 그들을 빌어 다수의 장애인 혹은 일반인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것은 매우 마음을 불편케 하는 요인이었다.

 

때문에 예전 《오체불만족》과 주인공인 오토다케 히로타다를 알게 되었을 때도 감탄과 감동은 물론 있었지만, 동시에 다소 우려를 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삶은 배울 점이 많고 매우 훌륭하지만, 이로 인해 평범한 장애인들이 받아야 할 따가운 시선 혹은 ‘너희들은 사지 멀쩡한 것들이 어째 그리 나약한가!’하며 압박할 사회의 무지막지한 폭력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사지절단증이라는 매우 희귀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오토다케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의 원천으로 만든 사람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학창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졸업한 후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었다.

 

특별한 경험이라 말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였다면 그처럼 장애를 가진 이가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을까를 생각해본 것이다. 가능할까. 회의적이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장애인들은 행복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아주 기본적인 삶의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의식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사고가 여전히 존재하는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때문에 오토다케의 경험은 매우 특별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 그에게 수업을 받은 아이들 또한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는 점. 평범하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는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하며 웃고 떠들며 학창시절을 보낸다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장애인은 물론이고, 우리는 사회는 아직도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다르면 틀린 것이라는 사고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깨뜨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드시 깨부수어야 할 매우 옳지 못한 사고이다.

 

피부색, 장애의 유무, 이념, 언어, 종교, 출신지, 출신 학교, 성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나누는 사람들. 그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의미한 것인지는 둘째 치더라도, 기필코 편을 나누고 내편 상대편을 나눠야만 속이 풀리는 심리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책은 장애를 가진 선생님이 평범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 마음속의 장애를 함께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아마도 오토다케의 실재 경험이 많이 담겨 있을 것이다. 크나큰 갈등도 반전도 없지만 가슴 따뜻한 이야기 자체로 많은 즐거움과 감동을 주는 책이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 외에 다른 것들까지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가 그처럼 부러워하면서도 무시하는 일본이라는 국가에서조차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데, 과연 우리는 지금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지,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다르니까 모두 좋은 것’이란 말이 전해주는 의미는 결코 어렵지 않다.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인다면 더 큰 이해와 연대를 가능케 한다는 것일 테다. 그동안 편 가르기에 익숙했던 우리도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편 가르기보다는 차이를 인정하는 미덕을 배울 시기가 아닐까.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상투적인 표현은 하기 싫다. 그것은 장애인들에게도 실례가 되는 말일 것이다. 다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아, 이것도 상투적 표현일까. 마음의 장애를 안고 있는 이들이 훨씬 더 많은 세상. 그들의 마음을 고치는 것이 어쩌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