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는 어디에?
디팩 맬호트라 지음, 김영철 옮김, 호연 그림 / 이콘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이들은 내가 이른바 자기계발서라 불리는 책들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터이다. 난 그것이 슬픈 자기 위안이며 또 다른 비겁한 착취이자, 결국은 저자만 신나게 금전적으로 ‘자기계발’하는 것일 뿐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모조리 다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음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물론 여타 고전이나 정말 가슴을 울리는 글, 책들을 만났을 때의 감동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아주 가끔은 자기계발서를 읽고도 약간의 감흥을 느끼기 때문이다.

 

《치즈는 어디에?》는 15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의 시즌2 성격을 가지고 있다. 미리 말하자. 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은 적이 없다. 아, 들어는 봤다. 무지하게 잘 팔린 책이라는 것 정도는 기억한다.

 

그 책은 그랬다고 한다. IMF가 터져 우왕좌왕하고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진 우리들에게 일종의 구원처럼, 새로운 희망을 줬다~고 한다. 어떤 희망? 뭐, 말하자면 이젠 너희들에게 안정적으로 주어지던 치즈는 없으니, 알아서 새로운 치즈를 찾기 위한 변화를 시도하라는 것 정도? 였단다. 음. 우리가 참 정신이 없었긴 했나보다. 이 따위 말을 지껄인 책을 베스트셀러라고 읽었으니.

 

암튼. 이제 저자는 단순히 변화에만 몰두하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한다. 이젠 단순히 열심히만 뛰어서는 안 된다는 것. 왜? 다들 죽어라 열심히 뛰니까! 헐, 잔인하다.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예 마하의 속도로 뛰다 죽어버릴까?

 

저자는 세 마리의 쥐를 등장시킨다. 다른 모든 쥐들이 미로 속에서 오직 치즈만을 찾기 위해 뛰어다닐 때 이 세 마리의 불온한 쥐들은 또 다른 생각에 빠지기 시작한다. 미로를 연구하고 탐험하고 결국 그것을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자, 그렇담 저자의 의도는 대충 나온다. 어쩜 우리 스스로가 만든 것인지도 모르는 미로에 구속되지 말고, 미로의 실체를 파악해 조종당하지 말라! 내가 미로 속에 머무는 것인지 나의 마음속에 미로가 존재하는지 항상 되물어라! 나의 필요에 의해 머무르고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말라! 뭐, 세 마리 쥐의 생각을 대충 결합하면 이쯤 되겠다.

 

“직시하고, 변화하고, 행동하라!”

 

흠…. 어찌 보면 좌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의 냄새도 슬쩍 묻어난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룰 속에서 안주하거나 구속당하지 말고, 스스로 그 룰을 깨라, 그리고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 이는 아무리 봐도 일반 뻔뻔한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이다.

 

행복을 좇아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행복을 찾는 것. 무슨 소리지? 같은 말 아닌가? 책은 말한다. “행복을 좇는 그 자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행복을 찾는 게 과연 가능할까?”

 

여타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결론을 이미 정하고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 아울러 정답이 따로 있지 않고 스스로 정답을 고민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책은 미덕을 가지고 있다. 적어도 세 마리 쥐의 성격이 다르듯, 세 가지의 유형을 제시하는 친절을 베풀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왜 난 여전히 의심스러울까. 변화를 먼저 재빠르게 눈치 채고, 허점을 찾거나, 남들보다 먼저 움직이는 것. 결국 그것은 같은 의미이지 않을까. 단순히 치즈를 찾기 위해 열심히 살아서는 더 이상 답이 없는 세상이기에, 이젠 한 차원 높은 더 힘든 그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말과 과연 다를까.

 

또, 달리 생각해보자. 미로가 정말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미로’인지도 모른 채 오늘도 자식새끼와 마누라를 먹여 살리겠다고 열심히 미로 속을 누비며 치즈를 찾아 돌아다니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빠 쥐들은, 적어도 이 책에 의하면 개념 없는, 뒤떨어진 ‘바보’들인 셈. 정말 그런가.

 

‘원래 자기계발서가 그런 거잖아. 뭘 그리 따져?’라고 말하면 할 말 없다. 그럼에도 슬프다. 책은 말한다. “변화에 쫓겨 미친 듯이 꿈만 찾아다니는 당신, 행복합니까?”냐고. 행복하겠냐? 장난하냐? 그럼 대안은 뭐냐? 지금 우리가 머물거나 얽매여 있는 곳을 “직시하고, 변화하고, 행동하”면 아름다운 답이 나오냐? 정말이냐?

 

‘자기’계발서이기 때문에, 이 책 역시 모든 것은 ‘자기’에 달렸다고 결론짓는다. ‘내’가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 크게 다시 한 번 깨우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치즈를 찾겠다고 열심히 뛰어 다니는 것으론 살아갈 수 없다는 냉정한 훈계. 어흑. 또 다시 슬프다. 도대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뭐가 크게 다른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는 IMF로 삶의 근원이 흔들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다행이다. 그나마 희망이라도 줬다면. 하지만 생각해보자. IMF를 가져온 원인은 무엇인가. 열심히 살아온 수많은 아빠 쥐들인가. 그리고 빌어먹을 치즈는 과연 누가 옮겼는가! 누구의 잘못이냔 말이다!

 

미로를 만들어 놓은 그 장본인들, 그 세력들에 대한 냉철한 인식. 그것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말이다. 내 말은! 빌어먹을 모든 것을 항상 힘없는 쥐들에게 강요하거나 훈계하지 말고!

 

정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보다 진화된, 이 시대에 맞는 시즌2를 쓰려 했다면 쥐들이 함께 힘을 모아 미로 자체를 붕괴시켜버렸어야 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왜냐? 이 책대로만 하면 결국 이른 바 깨달은 세 마리의 쥐들만 진실을 알고 행복을 찾아낼 수 있을 테니까. 비겁하게도 말이다.

 

아, 자기계발서가 원래 그렇다니까! 왜 그리 성질을 내. 라고 말하는 분들. 그럼 그 따위 ‘원래 그런’자기계발서 읽지 마시라. 원래 그런 거 아는 데 왜 읽어? 원래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게 독서 아닌가?

 

암튼 이 책은 노력하는 멋진 개그맨 김영철이 빛나긴 하지만, 역시나 그저 그런 자기계발서에서 멀리 벗어나진 못했다. 물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보단 낫다고 평가해 주겠다. 아주 무식하진 않으니.

 

혼자 도를 닦고 깨우쳐 혼자만 잘 살겠다는 심보. 그걸 버려야 한다. 다 같이, 힘들더라도, 함께 가자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질 떨어지는 자기계발서를 써서, 혹은 그걸 번역해 들여와서 잘 먹고 잘 사는 인간들이 사라진다. 외국의 작가, 기업인, 경영인, 컨설턴트를 잘 살게 해주는 자기계발서는 이젠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따위의 무식한 제목의 책들도 이젠 제발 그만. 요즘 다시 그 책을 대형서점 한복판에 깔아둔 것을 보고 얼마나 식겁했던지. 양심이 없으면 무식이 배가된다.

 

뭐, 어쨌든 하지만, 이 책은 그나마 자기계발서 중 나은 편이었다고, 평가해본다. 김영철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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