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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생각 - 우리가 원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지도
안철수 지음, 제정임 엮음 / 김영사 / 2012년 7월
평점 :
지난 8월 5일 《안철수의 생각》 판매량이 52만 부를 넘어섰다. 7월 19일 첫 발간이었으니 하루에 2쇄씩 찍은 셈이다. 게다가 올림픽 시즌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다. 정치권을 비롯해 대다수 주류 언론이 책에 대해 그리 곱지 않은 시각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은, 여전히 많은 국민들이 안철수 원장의 생각을 궁금해 하고, 또한 그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한겨레21》은 ‘새누리당의 오만과 민주당의 무능’이 합작해 만든, “좌충우돌 중도가 사랑한 남자, 안철수”란 제목으로 메인을 꾸몄다. 박근혜가 이미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무혈입성하고, 곧 민주당의 경선이 끝나는, 그야말로 대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이 시점에서 왜 안철수 원장은 여전히 폭풍의 핵으로 남아있는 것일까.
최근 《안철수 신드롬》이란 책에선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있다. “왜 한국인은 안철수에게 열광하는가?”책은 말한다. 그 답은 바로 그의 행동, 삶, 가치관에 있다고. 겸양과 상생을 말하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그에게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사여구만 무성한 기존 정치권과 달리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기존 정치 공학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 그러나 가공할 파워를 가진 그 무엇이 분명 안철수에게 있다는 것이다.
《안철수의 생각》은 바로 이런 국민적 관심의 중심에 있는 안 원장이 자신의 생각을 처음으로 비교적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미래,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밝힌 책이다. 때문에 국민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음은 물론이다.
책을 통해 안 원장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핵심으로 복지·정의·평화를 강조했다. 정의로운 복지국가, 공정한 복지국가를 만들어야 하며, 이는 평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달성할 수 없으니, 남북의 통일을 추구하면서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과제가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총 275페이지의 책 중에서 그가 평화, 즉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해 다룬 것은 단 9페이지, 4800여자에 불과해 그의 강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용이 부실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물론 통일, 남북관계 분야에 상대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하는 내 입장에서 유독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가 말한 복지, 정의, 평화 중 스스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평화에 대한 이야기가 빈약하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안 원장이 스스로 밝힌 바대로 아직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고, 여전히 자신이 진정 대통령이란 역할을 맡아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상태다. 때문에 그가 책에서 밝힌 내용은 아직까지는 포괄적이고 총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가 만약 진정 결단을 내리고 대권에 도전하게 된다면 물론 더 다양하고 구체적인 각론들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의미가 적지 않다. 남부러울 것 없이 성공의 길만을 달려온, 스스로 말했듯 민주화 운동의 일선에 나서지 않았고, 지독한 가난의 몸부림치며 괴로워 한 적도 없는, 지극히 평온한 삶을 살아온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가 썩 나쁘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애초부터 귀족이었다. 단 한 번도 그는 서민의 삶을 살지 않았으며, 국민적 공감대를 느낄 만한 삶 또한 없었다. 오직 귀족, 공주, 여왕의 지위만을 누리고 또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 운명이라 느끼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박근혜와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역시 풍족한 삶을 살아온 안 원장은 박근혜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남북관계, 통일, 경제, 복지, 정의 모든 부분에게 그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즉, 있는 이들, 부자들의 양보와 당연한 희생이 따라야 전체 국민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로써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다. 그가 비록 복지를 운운하고, 평화를 말해도 믿음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애초부터 자신 스스로도 그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없음을 이미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즉 서민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이가 어찌 대한민국의 복지를 책임질 수 있을까.
물론 우린 말과 행동이 한 인간으로부터 얼마나 다르게 나타날 수 있는지를 가카를 통해 극명히 느낀 바 있다. 절절하게 느꼈다. 때문에 말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결국 그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이의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아직 안철수라는 인물에 대해 섣부른 기대와 실망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그의 글을 통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를 짐작할 따름이다. 그렇게만 본다면 안철수라는 인물은 아직까지는 꽤 괜찮은 인물이라는 판단을 할 수 있어 보인다.
앞으로 만약 그가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다면 그와 담판을 통해 대권후보로 나설 것인지, 양보할 것인지 더 지켜볼 일들이 남아있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을 통해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것, 정치권이 먼저 머리를 박고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국민들이 바로 지금 이 곳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국민들이 진정 행복하고 잘 사는 나라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한반도 전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이것을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면 분명 안철수는 올 12월 커다란 돌풍을 일으킬 것이다.
당의 집단논리를 외면할 수 없는 기존 정치인들. 그리고 바로 그 집단논리에 신물이 난 국민들. 올 해 12월 과연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선택에 앞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은 분명하다.
한 가지 사족, 그가 책을 돈 많은 김영사가 아닌 영세하지만 좋은 책을 많이 펴내는 출판사에서 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