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수사대 박스 세트 - 전4권 - 진정한 협객의 귀환!
이충호 글 그림 / 애니북스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예년과는 다른 폭염으로 전국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덩달아 런던올림픽으로 인해 뜬눈으로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 이들도 많았으니,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참 뜨거웠다고 할 수 있다.

 

밖을 거닐면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 속에서, 어지간하면 책이 손에 잘 안 잡히는 것이 인지상정. 하지만 독서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책이 주는 즐거움은 온도와 상관없이 언제나 즐겁다.

 

지금처럼 더운 날씨엔 주로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게 되는 것 같다. 만화나 무협지가 좋은 예이다. 물론 이 장르들을 무시하는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너무 좋아해서 탈이지. 예전 학창시절, 만화방에서 밤늦게까지 무협의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던 기억, 늦은 밤 아줌마가 끓여주는 라면의 그 기막힌 맛은 여전히 내 소중한 추억 중 하나다.

 

어린 시절 내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았던 무협의 세계, 그리고 만화가 전해주는 다양한 상상의 몸짓들은, 지금처럼 메마르고 그다지 재미없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여전히 큰 힘을 전해주고 있다.

 

《무림수사대》는 《마이 러브》로 잘 알려진 작자 이충호의 작품이다. 워낙 그림이 좋고 내용도 탄탄하기에 그의 작품은 일단 기대하게 만든다. 무림수사대 역시 그런 기대를 전혀 저버리지 않는 수작이다.

 

무협과 현대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축을 적절히 섞어 새로운 무협 장르를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 무림수사대는 권선징악이라는 무협물의 기본 정석을 따르면서도 때론 정의가 패배하고 불의가 승리하는 이 시대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긴, 차라리 피바람이 몰아치던 무림의 세계가 어쩜 지금보다 더 깨끗하고 적어도 치사하지는 않았을지도.

 

주인공 모지후는 친형과 같이 따르던 선배 이현과, 그의 동문인 서연우를 만나며 우정과 사랑이 오가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오해와 진실이 풀어지기도 전에, 이현과 서연우는 참혹하게 살해당하는데. 그들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애쓰는 모지후. 그리고 그를 돕는 무림수사대. 연이어 벌어지는 의문의 죽음과 놀라운 진실. 모지후는 과연 이 모든 진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충호 작가의 작품은 ‘성장’이 큰 줄거리를 형성한다. 여리고 어리석은 젊음이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와 함께 조금은 커가는 스스로를 느끼기도 한다. 단순한 무협의 틀에서 벗어나 주인공 모지후가 차츰 더 큰 사람으로 성장하는 모습은 눈물겹지만 아름답다.

 

또한 작품은 적지 않은 어록들이 인상적이다. “진실은 양날의 검, 어설프게 마주섰다간 상처만 남게 된다”등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많다. 탄탄한 문학적 소양과 감성을 지닌 그이기에 이렇게 좋은 작품들이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책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나보다는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그리고 정의는 결국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거대한 적들과 마주한다. 이는 무협소설이 갖고 있는 전형적인 패턴이기도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서 더욱 큰 메시지를 전해준다. 과연 이 시대의 모지후는, 이 시대의 백운은 존재하는가.

 

여전히 만화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하찮고 건방진 것들이 많은 세상이지만, 잘 만들어진 만화는 그 어떤 고전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충호 작가의 또 다른 감동을 기대한다.

 

“그들의 말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고, 행동에는 반드시 과감성이 있으며, 이미 허락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성의를 다한다. 그 몸을 돌보지 않고 남의 곤경에 뛰어들며 벌써 생사존망의 어려움을 겪었어도 그 능력이 있음을 뽐내지 않으며 그 덕을 자랑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사마천이 《사기》〈유협열전〉에 ‘협객’을 묘사한 글이다. 세상이 천박하게 변해버려서일까. ‘협객’을 찾아보기가 너무나도 힘들어졌다. ‘협객’ 근처에도 가기 힘든, 나약한 책상물림으로서 이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그저 떨리는 펜으로 질문을 던져볼 밖에.

“어지러운 이 세상을 바꿀 진정한 ‘협객’은 어디에 있는가”

- 이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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