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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 - 99% 대 1% 월가 점령 인사이드 스토리
시위자(Writers for 99%) 지음, 임명주 옮김 / 북돋움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2011년 미국의 《타임》지는 올해의 인물로 ‘시위자’를 선정했다. 중동과 유럽 그리고 미국을 휩쓴 변화의 물결을 주도한 이들이, 그 어떤 위대한 정치가도 아닌 바로 ‘시위자’들이었기 때문이다. 맘에 드는 잡지는 아니지만, 선택은 탁월하지 않았나, 아니 어쩔 수 없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위자들이 만들어낸 역사의 이야기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들이 만들어낸 그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 어떤 영웅의 서사시가 아닌 평범한 미국 시민들이 만들어낸(아주 오랜만에!) 위대한 행동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직접 변화를 위한 직접 행동에 나선다는 것. 우리로서는 그리 특이한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다. 우리 현대사를 보면 자명하다. 대한민국의 발전은 어느 위대한 정치인, 예를 들면 5·16군사쿠데타를 일으키셔서 나라의 살림을 위해 한 몸 다 바친 분이거나, 그 뒤를 이어 또 다시 군홧발로 민족을 짓밟은 머리 시원한 아저씨가 이뤄낸 것이 아니다. 절대.
이 나라의 모든 발전과 번영, 민주주의의 정착과 삶의 진전은 온전히 이 땅의 서있는 시민들, 시위자들의 힘이었다. 국민(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단어는 아니다)들이 죽어나가고, 죽어나가면서도 또 죽어라 일하고, 또 싸우다 죽어나가고, 이러면서 만든 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쓰레기란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몰려 나라꼴이 참 한심하게 되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나라가 그나마 건재할 수 있는 것은(그것도 MB와 같은 괴물을 만났음에도), 모두 다 시민들, 국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99%의 대중이 1%의 특권층, 권력, 자본에 맞서 싸운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은, 때문에 우리에게 그렇게 큰 감동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해야 했다. 당최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국인들, 역시 그들도 별 수 없음을 말이다. 그들도 살아야 함을 말이다. 물론 잘잘못과 배경을 따지고 들어가면 그들이 그리 할 말이 많을 것 같진 않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괴물 같은 자본의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고, 돈의 환상, 소비의 환상에 젖어 있다가 이제 막 눈을 뜬 상태다. 그것도 정말 살기 힘들어진 계층부터 슬슬 말이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뜻은 금융자본의 횡포와 특권층의 부패, 서민층의 끝없이 추락하는 삶의 질에 대한 정당한 분노였다. 지극히 정당하다.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미국보다 더 심각하게, 더 근원적으로, 더 처절하게 무너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선 왜 1대 99의 투쟁이 저렇게 불붙지 않았을까. 왜 소수의 대학생들만이 천막을 치고 외롭게 투쟁해야 했을까. 왜 그랬을까.
사회학적으로, 정치학적으로 덧없는 분석을 좋아라 하시는 분들은 또 구구절절 늘어놓을 테지만, 일단 무지한 내가 보기엔 우리는 지금 너무 지쳐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만들어놓은 가공할 시스템 속에서 각자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다보니 어느새 우리가 역사를 발전시켜 온 동력인 ‘연대와 분노’를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끊임없이 분노해왔고, 또 연대해왔다. 이명박 정권 들어 자행되는 갖가지 희한한 꼴들 앞에 우리는 정당히 분노했고, 정당히 싸웠다. 하지만 그 치열한 분노가 채 꽃피기도 전에, 우리는 각자 퇴근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각자 학교로, 직장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왜? 피곤하니까!
우리는 이미 가진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투쟁할 수 없었다. 인정하자. 기득권에 맞서 싸우려 한다지만, 우리도 우리 안에 기득권이 된 것이다. 반값등록금의 당연함. 육아, 교육, 복지 등 모든 문제는 누가 알아서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투표만 제대로 하면 될 것 같다. 왠지. 그런데 투표도 제대로 안 한다. 드라마 〈추적자〉는 말 그대로 드라마고. 그런 피 끓는 분노와 정의감.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아줌마를 대통령으로 모시려 하고, 올림픽에서 오심 판정엔 핏대를 세우는데, 내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불의와 반칙엔 눈감는다. 오히려 내가 반칙할 기회가 없나 살펴보지.
이런 상황에서 변화를 기대한다? 우습다. 그냥 솔직해지자. 관심 없다고. 내일 지구가 멸망하고, 대한민국이 사라져도, 오늘 내가 편하고 오늘 내 세금을 줄여주고, 내 재산을 늘여주고, 내 새끼들에게 더 특권을 줄 수 있는 집단에게 표를 던진다. 그리고 적당한 구실을 대겠지. 그들의 정책이 더 올바르다고.
미국의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우리는 아스팔트 보도블럭을 까고 투쟁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최루탄에 맞아 죽어간 이들이 몇인가. 고문 받다 죽어간 이들이 몇인가. 아예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영원히 실종 되어버린 이들이 몇인가. 월스트리트는 그야말로 애들 장난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린 이제 할 말이 그닥 없어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추악한 자본주의의 정글 속에서 이젠 지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꼴마저도 우리에겐, 이제 대단해 보일 정도가 되었다.
분명한 건 있다. 연대는 위대하다. 정당한 분노와 또한 실현가능한 희망을 위한 연대. 그 연대는 위대하다. 신촌에 있는 거 말고. 때문에 우리는 연대의 가능성, 그 분노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 설사 그 문에서 지옥불이 뛰어 나온다 해도, 맥없이 착취당하고 억울하게 죽어나갈 순 없기에 다시 한 번 보도블럭을 뜯어낼 각오를 해야 한다. 어차피 연말에 멀쩡한 놈 뜯어낼 것. 소중한 곳에 사용하겠습니다.
세상은 엘리트들이 지배하고 있다. 뛰어난 놈들이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덜 뛰어난 덜 탐욕적인 덜 비양심적인 나머지 99%가 열심히 세금내고 사기치고 도망다니고 대출금 이자 갚고 애 낳고 짜증내고 피곤해하면서 살아간다. 누구 말처럼 잡놈 정신이 충만한 평범한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분노하면 그 어떤 뛰어난 정치학자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정말 볼 만 할 것이다. 아마 정말 아름다운 완전히 다른 세상은 쉽사리 오지 않을 것이다. 기득권들의 피나는 자기 생존본능이 얼마나 대단한가. 그런데 푸훗~! 혁명은 느닷없이 어느 날 그들의 눈앞에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
좀 적당히들 해먹어라. 그러다 정말 죽는다. 와, 무서워.
우리는 짐승이 아니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무서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