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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평점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이라는 부제가 인상적이다. 기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무책임한 존재인지 분명히 일깨워주는 책이다. 책 뒷표지에는 “조종하려는 자와 조종당하지 않으려는 자, 모두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소개한다. 이 역시 선전이다.
우리는 24시간, 심지어 잠들어 있을 때마저 수많은 선전 속에 포위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온전히 자신의 의지대로 이루어진다고 착각하며 살고 있다.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조카이기도 했던 저자는 ‘PR의 아버지’로 불린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미 연방공보위원회에 발탁되어 독일을 상대로 한 선전 전략을 펼쳤고, 전후 최초로 ‘PR 고문’이라는 직함을 달고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대중심리학과 결합해 선전과 홍보에 이용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홍보라는 분야를 과학, 산업으로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거의 반세기 동안 435명의 의뢰인에게 홍보 자문을 해준 인물. 그의 리스트에는 대통령에서 노동조합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명인사, 기업, 기관, 단체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책은 선전과 홍보의 고전이자,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읽고 있는 홍보의 교과서다. 히틀러마저 자문 요청을 했을 정도로 선전과 홍보의 귀재였던 저자는 타고난 열성과 근면함, 성실성을 바탕으로, 당시 비난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선전’이란 단어를 다시금 고결한 위치에 올려놓으려 노력했다.
아울러 책을 통해 정치, 경제, 교육, 예술, 사회단체 등 다양한 부분에서 선전이 어떠한 역할과 도움을 주고 있는지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지금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민주주의는 보이지 않는 정부, 또는 선량하고 합리적인 소수의 고결한 엘리트 집단이 나서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대중의 의견을 주조하고 조작할 때 비로소 원활하고 질서정연하게 기능한다고 굳게 믿었다. 때문에 그를 ‘민주주의의 암살자’라 비난하기도 한다.
원래 선전(propaganda)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622년이었다.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급속한 확산에 충격을 받고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앙선전실’이라는 뜻의 포교성성을 신설했다. 그때 이후로 ‘선전’은 한동안 중립적인 의미의 단어로 쓰이다 제1차 세계대전기에 들어와 영미 정부의 전시 대국민 선전활동을 계기로 지금처럼 ‘음험한’ 색채를 띠게 되었고, 그 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그런 의미로 굳어졌다.
저자가 생각했던 선전의 역할과 책임. 그것이 지금의 선전, 즉 자본주의의 총아로 자리 잡은 선전과는 분명 크게 다를 것이다. 하지만 책의 머리말을 쓴 마크 크리스핀 교수의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 버네이스는 그러한 역설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우리를 위해 만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 역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처럼 이 책은 분명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재벌가의 자식들이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영역마저 탐욕스럽게 먹어치우고 있다. 얼마 전 갔던 대형마트에서는 새우튀김마저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홍대 근처에서 처음 유행된 튀김 가게들을 먹어치우겠다는 발상이다. 분식과 제과, 피자 등은 이미 점령된 상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여기에 무감각하다. 그들이 퍼붓는 광고 속에 우리는 얼마나 강하게 저항할 수 있을까. ‘반값’이라는 단어에 무너진 자영업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선전은 자본주의의 총아이자, 바로 시민들을 위협하고 구속하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종교를 위해, 그리고 무의미한 전쟁에 국민들을 동원하기 위해 처음 사용된 선전. 이제 선전은 우리 사회, 지구를 점령해 버렸다. 여기에 100% 자유로운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 1%라도 선전의 가공할 위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 희망은 갑자기 찾아올 지도 모른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