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진다 꽃이 핀다 - 박남준 시인의 산방 일기
박남준 지음 / 삼인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이든 내 것 네 것으로 나누고, 소유의 틀거리로 세상을 바라보면, 그것은 정말 지옥과 다름없는 모습일 것이다. 아, 그렇다면 이미 이 세상은 지옥과 같구나. 저 아름다운 산도 강도 바다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온전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 누구의 것, 누구의 소유로 호명될 때 이미 세상은 끝장이 난 것이구나.

 

이 땅의 아름다운 강. 오랜 세월동안 이 땅을 살아가던 이들과 함께 흘러온 강이, 고작 찰나의 권력이 이처럼 무참히 깨부수어 버렸다. 그들의 호주머니를 채워주기 위해 강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지옥이다. 생지옥이다.

 

어린 시절, 잠시나마 농촌의 생활을 경험했던 나는, 어렴풋이 맡을 수 있다. 시골의 냄새, 땅의 냄새, 이 땅의 모든 생명들의 냄새를. 하지만 어느 새 시간을 깨끗하지 못하게 채워버린 나는, 개구리 한 마리, 사마귀 한 마리에도 움찔거리는 생 병신이 되어버렸다.

 

풀과 나무, 뭍짐승들과 새, 물고기들이 살아갈 수 없는 땅에, 그들이 터를 잡을 수 없는 땅에는 인간 역시 살 수 없다. 자연의 숭고한 품은 오직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연이 사라져가는 그 속도로 말라죽어갈 것이다.

 

시인은 오랫동안 자연과 벗 삼아 고독을 벗 삼아 살아왔다. 그리고 자연과 주고받은 이야기들, 자연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글로 심었다. 그 글은 자연과 떨어져 호들갑 떨며, 생 병신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에게 위안을 주었고, 눈물을 주었고, 생의 끝자락에 간신히 잡고 있는 인간성을 깨워준다.

 

“깊은 푸르름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하늘 아래 푸르른 것들이 저마다 깊어지며 우거져 간다. 이 빛나는 생명들이 우거져 가는 것들을 사람들은 그냥 놔두지 않는구나. 제초제를 뿌려대듯 자신의 한낱 덧없는 권력욕에 어두워, 티끌 같은 명리의 이권에 눈멀어 저만큼 다가오는 무서운 분노의 해악들을 보지 못하고 파멸의 재물이 되어가는구나.”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내, 이름도 얻고 돈도 얻은 시인이지만, 그는 하동의 작은 집 ‘심원재’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가 돈이 없어, 새들에게조차 비웃음을 받고 있을 적부터 계산한 한 달 생존비, 20여 만 원을 제외한 모든 수입은 지금도 수많은 단체에 기부금으로 보내진다. 그의 통장에 들어있는 ‘관 값’ 200만 원을 제외하고 말이다.

 

앞 개울에 버들치를 키우며, 새들이 먼저 목욕하는 시간에 무심코 멱을 감으러 냇가에 왔다가, 황급히 사과하고 도망가는 시인. 파랑새의 애절함과 노랑상사화꽃의 슬픔 아름다움에 눈물 흘리는 사람. 때문에 그의 글은 자연이고, 꽃이며, 구름이다.

 

이제 물러나는 정부가 5년 동안 자행한 패악질로 이 땅은 또 한 번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많은 생명들이 억지로 구겨 넣어져 땅 속에 묻혔고, 많은 짐승들이 이 땅을 떠나버렸다. 그들의 눈물, 원망, 한숨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시인의 여린 마음을 매일 아프게 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시인은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사랑한다. 어쩔 수 없는 외로운 사람,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글이 더 많은 생 병신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한다. 나 같은 생 병신도 따끔히 혼내 주시길.

 

시인과의 따뜻한 소주 한 잔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세상엔 슬기롭고 참된 이들이 더 많아서 아직 이 지구가 푸른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말자. 절망하지 말자. 우리의 뜻이 거기 있을진대 다시 우리는 가까운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