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의 세계사 - 스탈린 대 트루먼, 박정희 대 김일성, 아이슈타인에서 김정은까지
정욱식 지음 / 아카이브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현재 21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 세계적으로도 영토에 비해 원전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의 참사에도 아랑곳없이 2024년까지 이를 34기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역시나 대단한 양반이다.

 

돌이켜보면 한반도는 6·25전쟁 이후 끊임없이 핵 재앙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었고, 북핵 문제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은 ‘핵’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는 핵을 ‘인간계의 절대반지’로 표현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지난해 자신의 70세 생일에 “나는 핵전쟁이나 지구 온난화와 같은 재앙으로 인류가 1000년 이내에 멸망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한다. 물론 1000년이란 시간은 먼 훗날일 수도 있지만, 당장 내일이 될 수도 있다.

 

인류 뿐 아니라 지구 자체의 파멸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발명품인 핵.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탐욕이 만들어낸 핵을 어떤 이는 “사정거리가 가장 긴 구조적 폭력”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세계 번영의 마르지 않는 샘”이라 찬양한다.영화 〈반지의 제왕〉의 ‘절대반지’처럼 인간을 공포에 몰아넣기도 하고, 매료시키기도 하는 핵. 과연 핵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저자는 어느 순간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린 핵에 대해 정작 많은 이들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이는 3월 26~27일 정부의 호들갑 속에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렸고, 북핵문제, 원전 수출 등 핵과 관련된 많은 이슈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핵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나 담론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문에 저자는 광범위한 1차 자료와 역사적 사실들을 바탕으로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던 핵 문제를 제대로 알리고자 노력했다.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은, ‘삶과 죽음’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흔히 일제 패망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는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을 들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핵을 일종의 ‘해방의 무기’로 인식하게 됐고, 이후 미국 핵무기에 대한 비판에서 둔감한 모습을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여러 자료들에 의하면 일본의 항복에 굳이 핵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원폭이 아니더라도 일본은 항복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었고, 오히려 소련의 참전 선언이 일본에게 더욱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의 원폭이 소련 스탈린에 대한 무력시위의 측면이 더 강했다고 말한다. 소련보다 먼저 핵을 개발한 미국이 당시 잠재적인 라이벌로 떠오르던 소련을 견제하고, 전후질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불필요한 ‘재앙’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한편 그동안 우리는 원폭으로 인한 일본의 패망에만 주목했을 뿐,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4만 여명의 강제징용 조선인들은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 인천자유공원을 ‘점령’하고 있는 맥아더에 대한 인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당시 그는 중국의 참전으로 미군과 연합군이 수세로 몰리자, 트루먼 대통령에게 북중 국경지대에 30여 발의 핵폭탄을 투하하면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해로부터 서해에 이르기까지 코발트 방사선이 막을 형성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지역의 생명체는 60년, 혹은 120년 후에야 다시 소생할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당시 그의 계획대로 핵 공격이 이뤄졌다면 지금의 한반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전쟁 이후에도 한반도는 핵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았다. 북은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미국의 핵 위협을 견뎌야 했고, 남은 미국의 핵우산 아래 수많은 핵무기를 받아들여야 했다. 단 한 순간의 결정이나 우연, 실수로도 한반도는 핵 재앙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

 

책은 미국의 대한반도 핵 정책 속에는 한반도 분단의 논리, 냉전의 논리가 그대로 투영되어 왔다고 말한다. 이는 MD역시 마찬가지다. 북은 끊임없이 MD의 공격 대상이 되어왔고, 남은 MD의 포섭대상이었다.

 

이는 결국 한반도 핵 문제가 단지 북핵 문제의 해결만으로 풀 수 없음을 보여준다. 북핵은 60년이 넘게 쌓여온 분단과 냉전이라는 한반도 문제의 󰡐모순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핵 문제를 북 체제나 지도자의 문제로 국한해 바라보는 한 해결에 다가갈 수 없다. 냉전이라는 병을 앓아온 한반도 전체의 체질을 바꿀 때 비로소 그 치유법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북의 광명성3호 발사로 인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더욱 예측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부는 단호하게 대처할 것임을 천명했고, 미국 역시 2·29합의 이행에 부정적 입장이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는 당장 다가온 대선으로 인해 더 이상 북과 대화에 나서기도 어려운 모습이다.

 

저자는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미국 내에 팽배해있는 ‘북 불신론’을 깨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오바마에게 노벨평화상을 ‘선불로’ 안겨준 그의 ‘핵 없는 세상’정책 역시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만약 북이 3차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오바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 현실주의자들은 여전히 핵이 미국의 패권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수단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부상하는 중국이나 푸틴의 러시아를 상대함에 있어 핵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하다.

 

때문에 그가 재선한다해도 그의 구상이 현실로 이어지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푸틴의 러시아와 시진핑의 새로운 중국 지도부 역시 미국의 쇠퇴를 자국의 위상강화와 ‘미국의 단극체제’를 끝내고, ‘다극체제’로 변화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 오바마의 재선 이후 이스라엘의 이란 폭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결국 더욱 복잡해진 국제정세 속에서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또 다시 ‘그냥 이렇게’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잠깐의 평화에 안도하다가 돌발적 변수가 생기면 또 다시 불안해야하는 ‘진땀 흘리는’삶 말이다.

 

때문에 차기 정부의 역할이 더욱 무겁다. 북핵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와 더불어, 본질적인 한반도 문제의 근원, 즉 냉전체제의 해체라는 과제가 주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보수 진영은 북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쉬운 것이 또한 단순히 비난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비난한다는 것은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보수 진영의 관성을 과연 이름만 바뀐 새누리당이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김정은 체제가 처해 있는 상황으로 인해, 핵무기에 대한 의존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북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되는 핵을 부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김정은 체제의 생존을 위해 핵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에게도 역시 핵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딜레마의 무기’다. 때문에 광명성3호 발사로 일단락된 북의 미사일 행보가 끝난 후 어쩌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설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남북관계, 그리고 북핵 문제. 이는 어느 한 순간에 갑자기 생겨난 문제가 아니다. 세계 2차 대전의 와중에 탄생한 핵무기의 역사와 더불어 한반도의 분단과 냉전의 지속까지, 모든 것을 깊이 있게 통찰해야 비로소 ‘보이는’문제다.

 

때문에 이 책처럼 핵 문제를 근원부터 조명한 자료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핵은 안전하다’는 기만이 적어도 더 이상 한반도에서는 부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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