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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3월
평점 :
수없이 쏟아지는 자기계발서들을 보며 무척이나 궁금했던 것 하나가 있었다. 책에 담긴 내용대로 행동하고 노력한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하나같이 독자의 ‘미래의 나태’를 예상하며, 책대로만 열심히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가능할까?
대한민국은 주지하다시피 자살 공화국이다. 나이 어린 초등학생부터 연로한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연령의 제한 없이 스스로 생명을 버린다. 그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 너무나 살기 힘든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이런 ‘팍팍한 삶’이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자본주의, 거기에다 무지막지한 경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시대를 살고 있는 지구상의 모든 ‘우리’들은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두 스스로를 가혹하게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
재독 철학자 한병철의 짧은 에세이는 독일에서 커다한 반향을 일으키며,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들었다. 아시아 출신 철학자의 책이 2주 만에 매진되는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 서양 근대 철학과 인문학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독일에서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개념을 과감히 제시하고, 또한 그 개념을 통해 거장 철학자, 사상가들의 논리를 비판하며 바로 이 시대의 본질을 통찰하고 있다. 그들은 프로이트, 푸코, 아감벤, 한나 아렌트 등이다.
그가 말하는 것은 어찌보면 간단하다. 과거 규율사회, 복종적 주체에서 성과사회, 성과주체로 바뀐 지금, 사람들이 기대했던 유토피아 대신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자아의 새로운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진단이다. 즉 개인은 스스로를 극도로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성과사회, 성과주체의 이상은 오늘의 세계에서 전일적 지배를 확립한 자본주의의 요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더욱 생산적이 될 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근본적 요구라며, 이 요구가 관철되는 방식이 후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지배와 강제에 의한 타자 착취에서 성공적 인간이 되기 위한 자기 착취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이를 착취의 진화로 파악한다.
언제부터인가, 기업은 그리고 사회는 창의적인 인재를 강조한다. 창의적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혁신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듣기엔 좋은 말이다. 하지만 강제가 아닌 스스로 ‘성공’이라는 주문에 사로잡혀 자신을 소진하고 착취하는 것이 진정 진보된 인간상, 사회상이라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결국 어떻게 하든 그 성공이라는 목표는 극히 소수만이 차지할 수 있다면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자기 착취는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성공학 개론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을 저자는 ‘당신은 당신 자신의 자본가이며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 것이다.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는 현실.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은 소진되고 마모되는 모습.
저자는 시스템이 이상적인 자아가 되고자 하는 개인들의 욕망으로 움직이고 있다면, 개개인이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고 믿는다.
여기에서 그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그는 우울증을 이 시대의 핵심적 질병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 배경에 성과사회의 압력이 있음을 주장한다. 타자의 강제가 인간을 옥죄고 있는 상황이라면 우리는 그런 타자에 대한 폭력적 저항을 통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 기실 지난 과거는 이러한 타자의 압력에 대한 저항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마르크스주의의 모델이다.
하지만 우울증의 배후에 놓인 성과사회의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이며, 오직 인간 자신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만 관철된다. 때문에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성공과 부, 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이 시대 많은 이들이 자신을 몰아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자살은 속출하고, 또한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린다. 자기 착취는 누군가에 의한 강제가 아니기에, 자유롭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라는 착각 속에 자신이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게 된다. 그 끝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어느 새 스스로를 강제하고 착취하는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 부정성의 변증법이 아닌 긍정성의 과잉에서 나타나는 병리적 상태.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느끼고 있는가.
저자는 긍정성의 폭력이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라 말한다. 스스로 가슴이 철렁해짐을 느끼게 된다. 나는 진정 스스로를 경영하는 기업가일까. 아니면 그러한 착각 속에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가해자일까.
정답은 물론 우리 스스로가 알 것이다.
짧지만 매우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