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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미래
앤서니 기든스 지음, 신광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드디어 4·11총선의 본격적인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여기저기 현수막이 나부끼고 저마다 자신이 국회에 입성할 자격이 있다고 떠든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당명이 혼란스럽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들이 어지럽다.
앤서니 기든스와 토니 블레어라는 이름이 조금은 식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많은 논란과 비판에도 불구하고 앤서니 기든스는 여전히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학자다. 아울러 토니 블레어 정권 역시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책은 2001년에 집필된, 조금은 오래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른바 ‘제3의 길’을 주창하며 집권한 영국 노동당이 1기를 마친 뒤, 새로운 2기를 맞는 시점에서 ‘신노동당’이 추구했던 정책, 비판받았던 부분에 대한 설명 혹은 반박,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노선’이 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 이후 영국 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은 많은 비판과 저항 속에 실패한 것으로 - 특히 진보 진영에게 - 인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처로 상징되는 영국 보수정권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어느 정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평가는 저마다 다르다.
이 책이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 특히 지금 바로 이 땅에서 -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제야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기 시작한, 혹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싹을 틔웠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여지없이 역진한 여러 가지 가치 혹은 정책들이 당시 영국에게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영국 노동당 정권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전해줄 수 있다. 아울러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국민 스스로 하지 않으면, 결국 낙후된 우리 정치의 현실이 바뀌지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기든스가 책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들은 민영화, 복지 개혁, 지방분권, 교육, 환경, 세계화 등이다. 어느 것 하나 지금 우리와 관련해 중요하지 않은 게 없다. 기든스는 우파가 다시 부활시킨, 아니 더욱 강화시킨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는 동시에, 기존 유럽 좌파들이 가지고 있던 이념적, 정책적 경직성에서 탈피해 새로운 정치 담론, 정책 담론을 제시하고 있다. 민영화에 대한 합리적이고도 유연한 접근, 반세계화 운동에 대한 비판 등 기존 좌파적 시각에선 다소 파격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든스의 이론과 정책 제시를 그대로 우리 사회에 적용할 수는 없다. 아직 우리는 인정하긴 싫다 하더라도, 영국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정치적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영국과 우리가 처한 정치 상황이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기든스는 무조건적인 반대나 비판이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바람직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정책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일깨워 준다. 현 정부나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여전히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체계화된 논의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구호에 그칠 뿐이다.
이번 총선과 대선을 통해 우리 정치는 한 단계 도약하느냐, 다시 주저앉느냐에 기로에 서게 된다. 결과는 온전히 우리 선택에 달렸다. 다양한 가치와 정책들이 경쟁하는 선거가 되었으면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추잡하고 짜증나는 이야기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동안 우리는 꽤 많은 연습과 시행착오를 겪어 오지 않았나. 그런 경험들이 또 다른 현명한 선택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기든스는 세계적인 석학답게 세계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과 비판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북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인식을 갖고 있지 못함이 보여 아쉬웠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이다.
“우리는 개발도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나는 단 하나의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경제 성장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지구적 경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미얀마 혹은 북한과 같이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사회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회에 속한다.”
북은 지구적 경제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킨 적이 없다. 김일성 주석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염원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한 국제 사회의 편입이었다. 이것을 끝까지 막고 군사적·경제적 제재를 지속해 고립시킨 것이 미국과 김대중 정권 이전의 남한이었다는 사실. 숨길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