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치를 누를 때
야마다 유우스케 지음, 박현미 옮김 / 루비박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살기 참 팍팍한 곳이라는 사실은, 일단 이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갖가지 유쾌하지 못한 통계자료들이 이를 더욱 설명해 주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자살률일 것이다. 특히 젊은 층에 경우 교통사고보다 높은 사망원인이 된지 오래다. 자살을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국가의 오만함 역시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역시 젊은 층의 자살률이 매우 높은 편이다. 언뜻 보면 우리보다 잘 살고, 치안이나 질서 등등 겉보기엔 훨씬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기 쉬운 일본. 그런데 왜 그리 많은 젊은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까.

 

소설은 황당무계한 설정으로 전개되지만, 결코 황당 그 자체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로 자살에 대한 국가의 통제와 연구다. 이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권리까지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

 

젊은 층에 자살이 늘어나자, 일본 정부는 세금이 줄어들 것(!)을 심각히 우려해 결국 청소년자살억제프로젝트를 실행하게 된다. 이는 전국에서 무작위로 추출된 아이들을 고강도의 스트레스 환경에 두어 청소년의 심층 심리를 해명한다는 목적이다. 잔인한 국가의 무지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이다.

 

정부에서 무차별적으로 선택한 아이들은 다섯 살이 되면 심장 수술을 받게 된다. 물론 본인은 모른다. 그리고 수술 뒤 5년이 지나면 정부는 그 아이를 부모로부터 빼앗는다.

 

국가의 명령에 의해 강제 수용된 아이들은 하나의 스위치 장치를 받게 된다. 이는 스스로 언제든지 목숨을 끊을 수 있도록 만든 장치이다. 바로 5년 전 아이들이 받은 심장 수술, 그 때 심장에 삽입된 장치이다.

 

아이들을 각자 독방에 갇혀 정기적인 진찰과 검사 등을 받으며 마치 죄수처럼 생활하게 된다. 하루 중 몇 시간만 아이들이 함께 모일 수 있으며, 바깥으로의 운동이나 산책도 센터 안에서만 허용된다.

 

차츰 아이들은 고독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하나 둘 스위치를 누르게 된다. 바로 자신의 심장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말이다.

 

주인공 미나미 요헤이는 바로 이 수용센터의 감시원으로 근무한다.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업무를 맡아야 하는 미나미. 그는 요코하마의 수용센터로 발령을 받고, 곧 그곳에서 4명의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곳에 아이들은 무려 7년 동안 스위치를 누르지 않고 버텨온 것이다.

 

조금씩 아이들과 친하게 된 미나미는 왜 4명의 아이들이 스스로 생명을 끊지 않는지 알게 되고,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도 있는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바로 아이들을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탈출시키는 것이다.

 

소설은 시종일관 긴박감과 함께 우울감이 깔려있다. 자신의 유년시절을 박탈해버린 국가에 대한 증오와 가족, 친구들을 향한 그리움이, 아련한 아픔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건 탈출과 이어지는 가슴 먹먹한 사건들은 도대체 정부, 국가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회의를 낳게 한다.

 

어떻게 보면 자살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생사여탈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최소한의 자기 권리일 수 있다. 인류가 진보하면 할수록, 정작 개인은 자유를 빼앗겨야 하는 모순 속에서, 자살은 인간의 마지막 저항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자살마저, 국가의 발전과 영속을 위한 통제 대상이 되어버린다면, 그 세계는 과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그리고 그러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을까.

 

자살 그 자체에 대한 판단을 내릴 순 없다. 이것은 온전히 스스로의 결정이자, 책임이다. 하지만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굴레 속으로 밀어 넣고 오직 집단, 국가, 정부를 위한 부속품으로 전락시켜 버린 현대에서, 우리는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첫 페이지를 넘긴 뒤, 끝내 마지막 페이지를 확인케 만든 소설의 힘은 글쓴이의 뛰어난 흡입력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살이란 행위, 국가의 역할과 책임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든 힘도 적지 않은 작용을 했다.

 

개인적으로 자살을 반대한다. 그 어떤 도덕적 명분과 이상을 들이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자살은 결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끝내 자살을 선택한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함께 그러한 자살을 막지 못한 국가,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순 있다. 하지만 결국 스위치를 누르게 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선택과 책임만은 아니라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일본이나 우리나 늘어나는 자살을 궁극적으로 막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살예방본부 따위를 두어 허무한 캠페인을 벌이는 것보다 백배는 나을 것이다.

 

단순히 재미로 읽기엔 조금 무거운 소설이었다. 일독을 조심스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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