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모범소설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박철 외 옮김 / 오늘의책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자고로 고전을 읽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이들과 확연한 차이가 난다고들 합니다. 유명한 작가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정도이고, 아무튼 고전은 인류의 오랜 경험과 가치가 담긴 소중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습니다. 여전히 고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생길 정도로 많이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적지 않은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주신 세계, 현대, 한국문학전집을 독파하지 못한 부끄러움도 여전히 남습니다.

 

때문에 틈나는 대로 고전을 읽으려 노력해왔습니다. 독서의 어떠한 기준이나 계획도 없이 기회가 생길 때마다 고전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오래전에 마련했던 이 책을 순전히 우연하게 꺼내들게 되었습니다.

 

세르반테스에겐 참으로 죄송한 얘기지만, 전 아직도 《돈키호테》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언젠간 반드시 읽겠다는 다짐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돈키호테》를 읽기 전에 이렇게 세르반테스의 다른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모범소설》은 제목처럼 인류에게 모범이 될 수 있는, 동시에 소설의 재미를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까지 소설계를 풍미했던 이탈리아풍의 이상주의적, 목가적 분위기에서 벗어나 사실주의로의 전환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작품이 근대소설의 효시라 자부했다고 하니, 그의 천재적인 재능과 더불어 자신감 역시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작품은 12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1권은 6편을 담고 있습니다. 〈질투심 많은 늙은이〉부터 〈고상한 하녀〉까지 무척 즐거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스페인 문학의 문외한인 저로서는, 게다가 스페인 최고의 작가의 고전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소 지금 정서에 맞지 않는 표현과 시대 묘사가 책 읽는 속도를 방해했고, 조금은 따분함을 주었음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이해하고 책을 읽는다면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음을 곧 깨달았습니다. 12편 중 9편이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모범소설》은 당시 단지 성적인 도구이자, 집안의 물건처럼 여겨지던 여성을, 당당히 결혼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여성으로 만들었습니다.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합니다.

 

아울러 커다란 운명 앞에 직면한 인간의 다양한 고뇌와 선택을 표현함으로써 실재 살아 숨쉬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하려 했다는 점도 큰 장점으로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사랑과 정의의 승리, 그리고 순수한 영혼들의 이야기는 스페인 문학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만들어 줍니다.

 

여전히 고전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돈키호테》에 대한 성급함이 다가옵니다. 어서 빨리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역시 고전의 힘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소설 읽기의 즐거움과 삶의 교훈을 동시에 전해주는 세르반테스의 《모범소설》. 스페인 문학의 매력과 함께 당시 시대 상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참으로 ‘모범적인’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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