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씨를 부탁해 - 작은 풀씨들의 유쾌한 반란
박철웅 지음 / 봄풀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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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란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농락하는 동안 정부는 계속해서 잠만 자고 있고, 국민은 완전히 무시당하고, 미래는 똥으로 완전 뒤범벅이 되는 거예요.”

- 이동진의 《위트상식사전》중

 

과연 이 말에 어느 누가 자신 있게, “헛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랬다. 지금까지 우리 정치는 딱 저 정도 수준이었다. 물론 많은 이들이 피와 땀을 바쳐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발전시켜 왔지만, 딱 그들보다 몇 배되는 잡스러운 인간들이 민주주의를 더럽히고, 악용하고, 망쳐 온 것 또한 사실 아닌가.

 

지난해 10월 26일, 박원순 시민후보는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상대 나경원 후보 측의,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간들이라면 치를 떨만한 네거티브 공세와 온갖 추잡한 짓거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장이 되었다. 이후 나경원 의원에게 돌아간 여러 가지 의혹들이 사실임이 밝혀진 후, 아마도 많은 이들이 나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었다면 도대체 서울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참, 이런 수준의 인간들도 정치인이네, 법조인이네 하며 거들먹거리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박 시장이 취임 후 지금까지의 서울시정을 이끌어가는 모습은 물론,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비판적 지지도 있고, 그냥 비판도 있고, 또 전폭적인 지지도 있다. 아직은 그가 오세훈 전 시장이 배설한 온갖 ‘똥’을 치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곧 ‘박원순표’시정을 보여줄 것이다.

 

책은 순수한 자원봉사로 박원순 후보 진영에서 열심히 뛰었던 팬클럽 회원들의 ‘땀의 기록’이다. 글쓴이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간 박원순’을 ‘인지(!)’하게 되고, 곧 그를 위해 자원봉사에 나선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 벌어진 일이었다.

 

박원순 시장은 이른 바 직업 정치인이 아니다. 꽤 오랜 시간동안 인권과 정의를 위해 노력해 온 시민 활동가다. 개인적 부귀를 충분히 누릴 수 있을만한 능력과 지위를 가졌음에도 그는 공공적인 이익, 복지, 평등을 위해 노력해왔다.

 

전문적인 정치인이 정당을 기반으로 한 정치를 해야 비로소, 사회가 안정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정치에 전혀 문외한이 갑자기 의정활동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무조건 정치 경험이 있어야만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스운 얘기다. 오히려 난 개인적으로 정치적 경력이 많다고 내세우는 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 더 더러운 냄새가 나고, 더 역겨운 모습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신념이자 가치이다. 어떤 세상을 꿈꾸고 어떤 이들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명확한 가치관이 이미 굳건한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본인이나 국민이나 국가가 행복할 수 있다.

 

때문에 박원순 후보의 유세 기간 동안 그를 둘러싼 수많은 비방 중 정치적 자질이나 능력에 대한 비난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쓰레기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바로 그 점을 명확히 꿰뚫어 보았다.

 

박원순이 빨갱이라는 비난 역시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어버이연합이라는 집단은 아름다운 가게 앞에서 “원순이 이년, 연기나 할 것이지 무슨 정치냐!”하며 한 편의 코미디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원순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알 필요가 없었다. 다만 누군가가, 그를 빨갱이로 규정하면 그만이었다. 하다못해 직업도, 성별도 모른 채 말이다.

 

아직 우리 정치는 썩었고, 더럽고, 후졌다. OECD라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그룹 중에서도 아마 최하위일 것이다. 이명박과 같은 후안무치, 유일무이의 기업인을 대통령을 만들 정도로 우리 정치는 형편없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듯, 이명박 시대는 새로운 국민들의 자각을 이끌어 냈고, 시민활동가 박원순을 서울시장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저자와 같은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땀을 보탰다.

 

현재 야권연대가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분명 아름답지만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착착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아름답고 숭고한 종교적 행위가 아니다. 온갖 욕망과 추함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의 행위이자, 바로 그들을 위한 행위이다. 먹물 속에서 진주를 꺼내는 것이 정치라면, 손이 더럽혀질 각오가 필요하다. 그래야 비로소 먹물을 깨끗한 1급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며, 진정한 진주를 찾을 수 있다.

 

전문 정치인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힘을 모아 박원순을 시장으로 만들었듯, 이제 총선과 대선에서도 수많은 민초들이 일어설 것이다. 그리고 힘을 모을 것이다. 기존 정치권은 여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선택에 따라 당신들의 존재 여부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멍청한 짓거리는 그만 좀 했으면 한다. 지역주의, 패거리주의에서 이제 좀 벗어날 때도 되었다. 자신들의 입으로 계파 정파를 타파하겠다고 하고, 여전히 이 꼴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당신들의 헛짓거리를 모른 척 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젠 좀 알자.

 

책은 박원순 시장 선거 과정을 통해 기존 정치권의 구태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리고 순수한 이들의 선의가 어떻게 무시당하고, 또한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향후 또 다른 박원순을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분명 시사점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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