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가운 희망보다 뜨거운 욕망이고 싶다 - 청년 김원영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에 관하여
김원영 지음 / 푸른숲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은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서 때로는 무모하고, 위험하고, 해선 안 될 일에 뛰어들어 파멸을 맞기도 한다. 인간이란 종족 자체가 그렇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른다.

 

아울러 인간은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합리화한다. 자신의 현재에 대한 이렇다 할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임에도, 결국 어떻게 해서든 무언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런 인간의 습성이랄까, 이것을 이용해 국가와 조직 그리고 사회는 우리의 죄책감을 조장한다. 그리고 그것을 사회 순응과 통제를 위해 사용한다. 우리는 삶의 곳곳에서 이러한 어이없는 조작의 피해를 입으며 살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말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상징 만들기 또한 이런 모습 중 하나다. 장애인이 적어도 비장애인과 동등한 기회와 삶의 조건을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대신, 사회는 장애인에게 “장애를 극복하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비장애인들에겐 그런 ‘슈퍼 장애인’의 예를 들며, “너희들은 장애인보다도 못할 것인가!”윽박지른다.

 

이는 비단 장애인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무한경쟁을 당연시하는 사회에서 약자와 패자가 될 가능성이 극도로 높은 계층에게도 적용된다. 사회가 만들어낸 불합리성, 불의를 개인의 초인적인 노력으로 극복하라고 강요한다. 사회의 책임, 국가의 잘못은 그 사이 덮어진다.

 

얼마 전 차 안에서 어이없는 공익광고를 듣게 되었다. 출산 후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했던 주부가 다시 생계를 위해 취업 전선에 나가게 되었는데, 당연히 그 주부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내 나이에 가능할까?”라는 걱정의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광고의 대답이 걸작이다. “무얼 망설이세요. 인생에 늦은 것은 없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이러면서 예를 드는 것, 해외 유명 인사들의 삶이었다. 누구는 몇 살에 위대한 문학작품을 썼고, 누구는 늦은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등. 죄다 헛소리에 불과했다.

 

왜 대한민국에서 결혼한 여성은 육아의 엄청난 부담을 감당해야 하며, 임신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회사에서 눈치를 보다 결국 스스로 나가야 하며, 왜 다시 취업하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가 되어버렸는지, 여기에 대한 설명이 먼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온전히 여성 혼자 책임져야 할 문제인가 말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모습은 사회 곳곳에 널려있다. 무슨 불평과 불만이 있을 성 싶으면 곧바로 과거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 장애를 극복했다고 알려진 유명인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사탕이다.

 

이쯤 되면 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저자 김원영의 말대로 세상 모든 장애인이 헬렌 켈러, 스티븐 호킹, 오토다케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바로 여기에 위대한 가카의 말씀이 얼마나 지키기 어려운지 알 수 있다. 가카는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 대기업의 사장이 되었고, 서울시장과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결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취업을 힘들어하는 젊은이들에겐, 눈높이를 낮추라고 하고, 군대에서 총기사고라도 날라치면, 죄다 요즘 아이들이 허약해서 그렇다고 한다. 정작 자신은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는데도.

 

희망이란 단어는 함부로 사용해선 안 된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어도 해낼 수 있다고 떠드는 것은 오만에 불과하다. 현재 스펙이라면 유사 이래 최고라 자부하는 젊은이들이 원하는 직장에서 일을 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작정 희망만 가지면 되는 일인가. 다 해결되는가.

 

저자는 이른 바 슈퍼 장애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다. 수시로 뼈가 부러지는 골형성부전증을 안고 태어나, 15년 동안 좁은 방 안이 유일한 세계였던 아이. 하지만 재활학교를 거쳐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서울대를 지나 로스쿨에 합격한 사람. 흔히 사회에서 추켜 세워주는 ‘귀감’이 될 법하다.

 

하지만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자신은 단 한 번도 장애를 극복한 적이 없었다고. 자신은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다만 야한 장애인, 뜨거운 인간이고 싶다고.

 

그가 과연 초인적인 노력을 통해 슈퍼 장애인이 되었을까. 아니, 그렇다 쳐도. 과연 그것이 혼자 노력으로 가능했을까. 부모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그리고 이 땅에 살고 있는 수많은 장애인들이 저자와 같은 행운을 누릴 수 있을까.

 

장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회에 마땅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다만 그 새삼스러움이 여전히 지난한 우리 사회, 국가가 문제이다.

 

영화 《오아시스》에서 홍종두(설경구)와 한공주(문소리)는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사회는 그 사랑을 강간으로 규정한다. 장애인들은 성욕이 없는, 인간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욕망이 없는, 아니 있어서는 안 되는 존재들로 단정 짓는다. 과연 무엇이 옳을까. 아니 무엇이 틀린 것일까.

 

저자 김원영의 뜨거운 인간, 야한 장애인의 길은 여전히 가시밭길일 것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 잠깐이나마 관심을 갖다 잊게 마련이니. 하지만 사회에 대한 그의 정당한 분노는 계속 될 것이다. 그것이 옳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아본다. 지극한 겁쟁이에 소심한 성격. 장애인들에 대한 특별한 차별의식 같은 것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본 적은 있었는지, 돌아본다. 부끄러울 따름이다.

 

진보를 떠들고, 더 나은 세상을 떠드는 사람들이라면, 읽어봐야 할 그의 삶 이야기다. 누구나 과감한 사랑과 합당한 분노를 터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정말 세상이다.

 

“내 삶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자유’다.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 기존 질서를 마음껏 거스르는 존재이자, 수많은 이들이 열망한 자유가 모여 만들어낸 구체적인 증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