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평점 :
뭐 제가 미스터리, 추리 문학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을, 알만한 분들은 다 아시고, 알보다 조금 작은 분들은 모르시지만, 암튼 그렇습니다.(어쩌라고?) 때문에 이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음흉한 음모의 냄새에 즉각적으로 반응했음은 물론입니다.
아울러 표지글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닫기도 했습니다. 아하! 와인 발효 가스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구나! 사실 와인 제작 과정을 전혀 몰랐던 저로서는 부끄럽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와인 발효 가스를 이용해 얼마나 치밀하고 정교한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을까? 더더욱 기대가 컸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긴장과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는 의무감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어졌고, 마지막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찾기에 이르렀습니다. 아, 이게 웬 비극인가. 황금 같은 주말에 고르고 골라 읽은 책이 하필 왜 이런 비극적 마무리를 나에게 준단 말인가.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피살자에 신상을 캐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용의자들과의 대화, 주인공 시몬 폴트 경위의 고독과 함께 하는 수고양이, 100% 연애 관계로 이어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카린 발터 양. 오래된 포도 압착장의 미로와 같은, 지하 동굴처럼 꼬이고 꼬이는 관계들. 이런 그럴싸한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는 이렇게 허망하게 이야기를 끝맺었을까요.
작가가 추구했던 최대한의 사실성이 결국 이렇게 감당하지 못할 허무로 작품을 끝나게 하지는 않았을까요. 허무맹랑함보다는 최대한 사실적인 것이 더 낫다는 작가의 믿음이 너무 과하진 않았을까요.
사실 그런 것 같습니다. 가장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느꼈던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함이 가져다 준 재미와 허무는 사실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습니다. 영화의 고수들은 이 영화가 전작에 비해 너무 심하게 ‘뻥’이 많아서, 오히려 재미가 반감됐다고 평가합니다. 저도 역시 좀 심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렇게 보면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 미스터리 소설들 중 너무하다싶을 정도로 허무맹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뭐 우리소설 중에서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독자를 우롱하는 작품들이 눈에 보입니다.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의 반전에 성공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무리하게 이야기를 전개하다, 결국 스스로 그 이야기에 감당하지 못해 허겁지겁 초현실적 마무리로 끝나는 작품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문에 어쩌면, 아주 어쩌면 이 책의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반전, 트릭을 기대하셨나? 여보게들, 세상에 그런 것은 없다네. 삶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야”라고 말이죠.
여기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과연 ‘있을 법한, 재미없는 이야기’와 ‘과장이 지극히 많지만, 또한 재미도 쏠쏠한 이야기’중 어디에 손을 들어줄 것인가, 말이죠. 음, 어렵습니다. 하지만 또한 지극히 쉽기도 합니다. 전 후자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제 변치 않는 믿음,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는 제1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책을 통해, ‘인간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언젠가 지은 죄는 돌아오기 마련이다’등을 이야기하려 했다면, 그와 같은 교훈을 전달하면서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동시에 알아야 했습니다. 사실 그런 이야기들은 너무도 많습니다.
어쩌면 무지한 제가 숨은 작가의 더 깊은 메시지를 못 읽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담 저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요. 하지만 그래도 크게 아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스터리 소설을 쓴다는 것, 추리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문에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블랑, 앨러리 퀸, 챈들러, 대실 해밋 등등이 추앙을 받는 것입니다.
언젠가 정말 괜찮은 작품으로 작가를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