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히틀러 - 건달에서 총통으로

 

[역사의 해석, 정답이 가능해?]

 

아돌프 히틀러, 그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스탈린과 함께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이자, 학살자로 그의 이름은 끊임없이 거론된다. 수백만 유태인들을 계획적으로 집단 학살한 그의 죄악에 대해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 히틀러에 대해 우리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가 꿈꾸었던 세상, 그가 바라던 독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리고 그는 죽는 그 순간까지 무엇을 그리고 있었을까.

 

대학에 갓 입학했을 때 한 번 읽은 후 그대로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있던 책이다. 그러다 문득 다시 손을 뻗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을 히틀러에 묘사한 어느 예술가의 그림을 본 기억도 잠깐 들었긴 했지만.

 

저자는 이른 바 정식으로 문학을 배운 이가 아닌 것 같았다. 대학도 이공계열을 졸업했고, 특별히 등단을 했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그런 것을 따지고 있는 내 자신이 먼저 우스웠다. 그런 나는 문학 작품 감상 허가증이라도 취득하고 읽었는가.

 

책은 히틀러의 청년 시절부터 시작된다. 가난한 화가이자 건달이었던 히틀러. 삶에 대한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었던 젊은 시절. 부패한 권력에 대한 증오와 가족의 행복을 송두리째 앗아갔던 유태인들에 대한 분노를 갖게 되었던 젊은 시절은 훗날 그를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살인마로 만들고 만다.

 

저자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고뇌와 상처를 소개하려 노력했다. 부모의 비참한 죽음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목격한 전쟁의 광기와 무의미성. 그리고 돈이 없고, 권력이 없는 힘없는 국민들만 죽어야 하는 참혹한 현실을 겪으며 히틀러는 점차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이어 그는 양부모와 사랑하는 여인마저 유태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겪게 된다. 또 자신도 부패한 유태인 사업가에 의해 죽기 직전까지 폭행을 당한다. 훗날 유태인에 대한 그의 증오는 이렇게 아주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울러 그는 1차 세계대전 직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독일 국민들의 고통과, 동시에 점점 커지는 반유태인 정서를 뚜렷이 목격하게 된다. 전쟁으로 모든 국민들이 고통 받고 있을 때에도 유태인들은 무기를 팔고, 권력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챙기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 유태인들은 힘없고 선량했지만, 독일 사회에서 점점 유태인은 악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었다. 많은 독일 국민들이 나치당에 협력하고 동조하고 추종하게 된 것은 집단적 광기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역사적 근원이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히틀러가 청렴하고 솔선수범하는 정치가의 이미지를 잘 살려, 결국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고 설명한다. 절대 부정한 이익을 취하지 않았으며, 오직 국민들과 함께 겸손한 자세로 정치를 펴나갔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 독일 경제는 몰라볼 정도로 발전했으며,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다시 일어선 위대한 게르만 민족의 신화를 전 세계에 과시하게 된다. 아우토반과 폭스바겐도 히틀러 시대의 산물이다.

 

물론 그가 절대 권력을 잡은 후에는 다른 양상이 벌어진다. 철저한 독재를 추구하며 반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결국 또 다른 세계대전을 일으켜 인류의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물론 히틀러와 스탈린과 같은 명백하고도 씻을 수 없는 죄악을 저지른 이들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다. 영원히 히틀러는 악인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모든 것에는 그 원인을 제공하는 계기, 배경, 사건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선진국, 승전국들의 파렴치한 행위들, 제국주의 국가들의 죄악상 등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넓은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히틀러라는 인물이 어떻게 탄생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역사의 해석은 언제나 승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규정되고 단정 지어질 수 없다.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다시 태어난다. 히틀러에 대한 평가, 나치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당시 독일의 광기와 집단 최면과도 같았던 모습들은 독일을 넘어 세계사적 차원으로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해석에 정답은 없다. 관점만 있을 뿐이다. 《나의 투쟁》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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