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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번 설 연휴 때, 아주 오랜만에 영화를 몇 편 볼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나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그리 많이 볼 수 없었거든요. 뭐, 시간이 있음 순서대로 보던 미드나 몇 편 보았고, 또 사람이 어느 때는 영화에 집중하기조차 버거울 때가 있잖아요. 제가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연휴에 모처럼 시간이 생겨서 몇 편은 일부러, 몇 편은 텔레비전을 켜니까 나와서, 그렇게 봤습니다. 나름대로 편안한 연휴였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연휴가 시작될 즈음 읽은 이 책은 뭐랄까, 부럽기도 하고, 또 약간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 책이었습니다. 일단 두 작가의 오랜 우정이 부러웠고, 또 그들의 글 솜씨에 다시 부러웠죠.
하지만 우정이라면 저도 뭐 그렇게 꿀리지는 않습니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나름 십 수 년을 함께 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뭐 그렇게 정답고 살가운 표현은 안 하지만(남자끼리 그러는 건 좀) 말을 안 해도 대충 서로 분위기 파악을 할 수 있는(거의 능력자 수준인가요)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로 주고받는 칼럼이라, 이건 좀 색다른 것 같았습니다. 이 부분은 솔직히 부러웠습니다. 뭐 스포츠나 게임, 음주와 가무로 서로 자웅을 겨루거나 우정을 뽐내는 것은 해봤습니다만, 글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때로는 유치찬란하게 서로를 공격하는 모습. 요건 왠지 아름답고 거룩해 보였어요.
게다가 그 중심의 영화가 있다…. 나름 참신하면서도 나쁘지 않은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양 김씨와 같은 글 솜씨가 있는 분들이어야 좋은 그림이 그려지겠죠.
영화는 누구나 즐겨보지만, 그 ‘누구나’는 모두 저마다의 눈으로, 저마다의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기 때문에, 사실 영화는 지구상의 인간의 수만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또 해석되고 있습니다. 무슨 교과서처럼 이 영화는 이렇게 보고 해석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이들도 있지만, 다만 부르짖을 따름이죠. 그걸 누가 강요할 수 있습니까.
때문에 두 김씨가 한 영화를 보고 난 뒤에 느낀 감정은 어느 부분은 같고, 또 어느 부분은 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점을 바라보는 게 쏠쏠한 재미를 주었고요. 저는 아예 다른 방향으로 본 영화들도 있었다는 점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이번 연휴 때 본 영화 중 하나는 그나마 최근에 개봉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제목이 맞나요) 이었습니다. 인간의 의도된 실수로 태어난 침팬지 ‘시저’가 점차 각성하여 인간과 그야말로 ‘맞짱’을 뜬다는 내용입니다. 물론 동족 원숭이, 고릴라, 침팬지들을 규합하고 선동해서 말이죠.
제목부터가 ‘시작’이니 앞으로 후속편들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그때는 더욱 스펙터클한 액션과 거대한 스케일로 압도하겠지요. 뭐 대충 그럴 겁니다.
그런데 제가 영화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던 것은 시저의 눈빛이 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시저는 자신을 키워준 인간에게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고, 의지합니다. 하지만 점차 성장하는 과정(이른바 머리가 커지는 것이지요)에서 시저는 자신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른’ 침팬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어미가 그 과정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도.
점차 변해가는 시저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또 하나의 ‘자기반성 강요용’ 영화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을 매도하고, 그들의 도전을 위험천만한 ‘범죄’로 매도하고, 그 과정에서 꼭 지구를 뒤흔들만한 사건이 터지고, 결국 인간은 ‘함부로 자연의 법칙을 건들면 안 된다’는 숭고한 교훈을 주는 영화들. 이젠 좀 식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여전히 이런 부류의 영화들은 만들어지고 또 소비됩니다. 이는 인간 죄의식에 기반한 반성일까요, 반성하는 척 하는 것일까요. 아무 생각 없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도대체 뭘까요?
영화는 단지 영화일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이 아무리 안드로메다까지 가는 허황된 것이라도 말이죠. 현실의 반영, 희망, 반성, 촉구, 이데올로기 등 모든 것이 혼합된 그것이 바로 영화입니다.
이러한 영화를 주제로 떠드는 두 작가의 대화는 즐겁습니다. 때론 사소한 듯 보이지만, 찔끔 눈물이 날 만큼 치명적인 영화도 있고, 당최 감독의 면상을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그 사이를 왕복하며 두 작가가 쏟아내는 주저리 주저리는 지극히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마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물론 글 솜씨로 어디 가서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필력을 가진 두 분이니, 글들이 무척 재미있다는 장점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영화를 통해 삶을 성찰하고, 거대한 담론들이 왔다갔다하기도 하지만, 때론 사소함에 극치를 달리는 모습도 즐거웠습니다. 하긴, 세상에 거대한 것이, 사소한 것이 따로 있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제 나이 사십을 갓 넘기신 두 김씨의 앞날이 더욱 기대됩니다. 뭐 부담을 느낄 필요는 없습니다. 저도 바쁘거든요. 두 분의 미래를 유심히 지켜보느라 제 미래에 눈 감을 수는 없잖아요. 뭐 대충 가끔 들여다 볼 뿐입니다.
즐거운 글, 그리고 페이지 넘기는 손가락이 부끄럽지 않을, 그런 글들을 앞으로도 심심찮게 써주시길 바랄 뿐입니다. 저도 영화를 될 수 있는 한 더 자주 봐야겠다는 생각, 더 글을 재미지게 써야겠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이 공부하고 잔머리를 굴려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주 즐거운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