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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글을 참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글을 정말 좋은 글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여전히 저에겐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쩌면 영원히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글이란 저에게 언제나 신비 그 자체인 것 같습니다.
어떤 거대한 담론이나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가진 글들, 시공을 초월하고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글들도 있습니다. 그런 글을 통해 상상력의 한계에 이르러보고, 또는 색다른 감동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는 정제되고 또 정제된 글들로 만들어진 근사한 이야기 한 편이 독자들을 사로잡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한 문장을 지어내는 데 몇 달, 몇 년의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를만한 주옥같은 글들의 향연 말이죠. 우린 분명 그런 글들을 통해서도 무한한 감동을 느낍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안나 가발다의 글은 위의 어떤 글들과도 다릅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지극히 소박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꾸밈이나 치장도 없습니다. 다만 흘러가는 데로 그렇게 이어질 뿐입니다.
부끄럼 많고 내성적인 작가는 자신의 글이 유명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소설을 받아준 유일한 출판사. 그 출판사는 이름 없는 작은 곳이었습니다. 초판 발행 부수는 고작 800부. 하지만 그의 글은 프랑스 인들을 사로잡아버렸습니다. 자신의 삶을, 자기 자신을 닮은 그녀의 글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소문에서 소문으로 그녀의 책들은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첫 책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앞 다투어 모든 대형 출판사들이 그녀의 다음 책을 따내려 했습니다. 물론 그 전과는 다른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고 말이죠. 하지만 그녀는 신의를 지켰습니다. 자신과 같은 무명의 작가에게 기회를 주었던 그 작은 출판사에서 다시 두 번째 책을 내기로 한 것이죠. 참 멋진 작가란 생각을 해봅니다.
책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다른 연인이 생겨 자신을 버리고 간 남편. 주인공은 남겨진 두 딸과 함께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만 같습니다. 그때 남편의 아버지, 즉 시아버지가 그녀와 손녀들을 데리고 예전에 살았던 시골집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며느리와 대화를 나눕니다.
이전까지 시아버지는 완고함, 고집불통, 가부장적 인물의 대명사였습니다. 결혼 후 자신에게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고 느꼈고, 남편 역시 자신의 아버지에게 그 어떤 애정도 없어보였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나눈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시아버지에게 또 다른 사랑이 있었다는 비밀을. 그리고 그 사랑이야기는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랑이 옳은 것이고, 어떤 것이 그른 사랑일까요. 그 결정은 누가 내리는 것일까요. 남편, 혹은 부인을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내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만났다고 느꼈음에도, 아내, 남편이 있고, 아이들이 있기에 포기하고 마는 것 또한 옳은 결정일까요. 그 사람은 두 번 다시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요.
너무나 어려운 문제입니다. 작품에 나오는 시아버지와 남편, 이 두 남자의 사랑은 다릅니다. 사랑의 방식도 다르고, 그 사랑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누가 옳다고, 누가 틀렸다고, 감히 누가 심판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그렇게 말로는, 머리로는, 이성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 아닐까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 속에 저자는 조그맣게 속삭입니다. 삶은 당신보다 강하다고, 그러니 주저앉지 말라고.
짧지만 아름다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겨울, 많은 사랑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바보 같은 짓이에요? 그렇죠? 제대로 되는 법이 없잖아요?”
“왜, 제대로 되기도 하지. 하지만 노력을 해야지.”
“어떻게 노력을 해요?”
“조금 더 애를 써야지. 매일 조금 더 노력을 해야 해. 자기 자신이 될 용기를 가져야 하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결심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