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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 영화로 만나는 15개의 노동이야기
이성철.이치한 지음 / 호밀밭 / 2011년 8월
평점 :
“영화 속에 나타난 개인과 그(녀)를 둘러싼 구조, 그리고 인물들의 살림살이 등이 지금까지 이르게 된 과거의 역사와 이들의 앞으로의 전망까지를 영화 속에서 관계적으로 찾아보려는 것이 비평의 본류 또는 영화소비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아닐까 생각한다. 소위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의 영화학적 변용인 셈이다. 그러므로 이를 통해 몇 가지 전문적인 용어를 살짝 곁들이면서, 영화 줄거리나 소개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사실상 ‘영화를 통해 현실을 읽어내기’ 그리고 ‘영화를 통해 현실로 나서기’ 쯤이 되지 않을까? 나아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비교적 소개가 덜 되어있는 노동관련 영화들을 살펴봄으로써, 국내 영화의 지평과 내용을 확장·심화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전작 《안토니오 그람시와 문화정치의 지형학》을 통해 드라마, 소설 등의 일상적 소재를 활용해 사회학적 이론을 보다 쉽게 전달하려 시도했던 이성철 교수가 이번엔, ‘영화와 노동’의 만남을 주선한다. 강단사회학의 타성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왔던 그의 보다 확장된 시도다. 여기에 중국문화 전문가인 이치한 교수가 힘을 보태 영화 비평에서 한 발 나아가 새로운 인문학의 지평을 열어 보이고 있다.
유럽, 중국, 미국, 일본, 한국 등 다양한 국가들의 문화에서 노동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또 이러한 노동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게 되었는지, 15편의 영화를 탐험하며 느끼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책의 일독을 강력히 추천하며 그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소개한다.
★ 역사의 추동력 ‘노동’의 재조명
▶‘영화와 노동의 만남’이라는 다소 신선한 주제의 책이다.
- 기존에도 이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편적이고 하나의 책에서 주제가 일관되게 진행되지는 못했다. 때문에 노동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영화라는 소재를 통해 수미일관하게 조명해보았다는 점에서 책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1994년부터 부산에 소재하고 있던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일원으로 활동해왔다. 연구소는 이후 약 13년 간 노동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생산과 현장과의 결합을 도모해온 곳이다. 여기에 참여한 연구자들과 현장활동가들은 모두 뛰어난 역량과 모범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분들인데 모두 제 나름의 전문분야가 있었다. 노동운동, 산별노조, 단체교섭, 노동교육, 노동정치 등의 분야에서 최고 고수들이었다. 저도 노동문제와 운동에 일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분들의 분야를 따라간다는 것은 역량 밖이었다. 그래서 ‘노동세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다른 틈새시장을 발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문화 분야에 관심을 돌리게 된 것 같다. 물론 문화연구는 이미 굉장히 많다. 하지만 이를 노동의 관점에서 보려는 글들은 많지 않다. 여기에 착안해 2001년부터 노동문화에 관한 나름의 공부를 해왔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과 문화실천》이라는 이론서를 내놓게 되었고, 그것이 이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 되었다.
한편 무엇보다 현재 많은 분들의 ‘노동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었다’고 생각했다. 일반 대중이나 학생들, 심지어 노동자 자신들도 말이다. 노동은 삶의 근간이고 역사의 추동력인데 왜 이런 일들이 생겼는가에 대한 생각은 책의 곳곳에 밝혀두었지만,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영화를 통해 미력하지만 재조명하고 싶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노동관련 전공을 보다 손쉽게 전달하려는 생각도 있었다.
▶책을 통해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정말 해박함을 느꼈다. 그동안 문화를 통한 사회학적 이론 전달이라는 시도를 해왔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 어릴 적부터 영화를 많이 접했다. 장르 불문, 장소 불문, 시간 불문이었다. 그동안은 단순한 영화소비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음에 남는 영화들을 메모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노동관련 영화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이런 습관이 책을 쓰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화를 통한 사회학이론의 전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주지하다시피 1980∼90년대 한국사회는(물론 지금 다시 반복, 심화되고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때문에 문화 이야기는 비교적 한가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문화 역시 당대의 물적 토대에서 비롯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서 문화의 두 측면(문화실재론과 문화실천론) 중 문화실천의 부분을 그동안 특별히 강조해왔다. 이는 여타 사회운동과 효과적으로 상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이러한 전달방법을 선호한 것 같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양가성에 따라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현실로 나서기”라는 시도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영화는 가장 “자본주의적 매체”이기도 하면서, 또한 환상과 현실의 반영인데.
- 그렇다. 흔히들 영화는 가장 자본주의적 매체라고 한다. 수용자들로 하여금 환상을 갖게 한 결과 현실도피적 성향을 조장하고, 관음증에 빠지게 만들며, 결국 개인주의화시킨다는 주장들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문화만을 통해 세상을 근본적으로 의미 있게 바꿀 수도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랑비에 속옷 젖듯이 좋은 경험과 모범적인 사례는 체내외에 축적되어야 한다. 특히 젊은 층에서 이런 경험이 더욱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동안의 영화편식은 지양되어야 할 측면이 있다. 책에 소개된 영화들은 일단 재미있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아 다양한 상들도 탄 작품들이다. 대중적인 셈이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이들 작품들을 잘 모른다.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일 것이다.
가장 편안하게 보고 또한 가장 가슴이 답답해질 작품들이다. 이러한 경험과 느낌이 축적된다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답답한 가슴속을 풀려고 나서지 않을까?
★ 다시 ‘전태일 정신’이 필요하다
▶노동 문제라는 다소 딱딱할 수 있는 주제를 ‘영화’를 통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데 책의 미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15편의 영화를 선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고, 또한 개인적으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꼭 추천하고픈 영화는 무엇인지 소개해 달라.
- 15편의 영화를 선정하게 된 기준은 첫째, 자본주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다루자. 둘째, 각각의 노동문제 소재는 다른 것으로 하자. 셋째, 비교적 다양한 국가들의 영화를 배치하자. 넷째, 이를 영화 속 연대기 순으로 배치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발달사나 노동운동사가 되도록 하자. 다섯째, 재미있는 것을 고르자 정도가 되겠다.
제가 본 영화 중에 감명 깊은(?) 것들이 많다.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1980년대 학생운동권의 분화를 짐작할 수 있는 김응수 감독의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 타비아니 형제의 〈빠드레 빠드로네〉 켄 로치와 마틴 리트 감독의 일련의 작품들, 이리 멘젤의 〈가까이서 본 기차〉, 몽골 영화인 〈동굴에서 나온 누렁개〉와 〈낙타의 눈물〉 등이 떠오른다. 이들 영화들 모두 추천한다. 그리고 책의 부록에 소개된 약 300편의 관련 영화들도 모두 추천작이다.
▶이소선 어머님께서 전태일 열사의 곁으로 가셨다. 때문에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던져주는 의미가 더욱 남달랐다. ‘전태일’이라는 상징이 우리 노동운동사에 남겨준 과제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 어머님의 소천을 마음 속 깊이 조의를 표한다. 40여 년 전태일 열사의 뜻을 어머님께서 이어오신 것인데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여 더욱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어머님은 당신 가슴 에만 열사를 묻지 않고 우리들 가슴에 전해주고 가셨다. 열사의 마지막 편지처럼.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여러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영화사적으로는 한국의 새로운 영화운동(뉴벨바그)의 중심에 서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또한 사회운동사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영화에 담겨있는 내용과 실제 사료들을 보면 이때부터 체계적이고 본격적인 노·학연대가 시작된다. 그리고 영화 미학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지금 이러한 모든 중요한 점들이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태일 사상’이 아니라 정신이 다시 필요한 셈이다.
▶공저자인 이치한 교수가 중국 영화 부분을 맡은 것으로 짐작된다.
- 이치한 교수와 함께 쓴 부분은 책의 말미 두 편의 논문이다. 학술논문 형태로 발표한 것이기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미꾸라지도 물고기다〉와 〈24시티〉가 그것이다. 이 교수는 중국고전문학 전공, 특히 〈홍루몽〉 권위자다. 〈24시티〉를 보면 홍루몽의 내용이 중요하게 들어 있다.
〈미꾸라지도 물고기다〉는 현재 중국의 최대 난제인 농민공 문제를 다루고 있고, 〈24시티〉는 중국 사회주의 체제의 대표적인 노동력 관리방식이었던 단위체제가 붕괴되면서 일어나는 노동자들의 삶의 변화를 세대별로 추적하고 있다.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아울러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 주위에 널리 소개해 달라(웃음). 먼저 《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 시즌2》를 쓸 것 같다. 아직 할 이야기와 소재들이 남아 있다.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 후에는 청소년과 아동들을 위한 노동관련 책을 쓸 계획이다. 동화가 될 지 어떤 형태가 될 지는 두고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