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아름다운 절
금강 지음 / 불광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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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들으면 섭섭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이상케도 스님들이 쓴 책에서 많은 감동과 삶의 위안을 얻곤 합니다. 목사님이나 신부님, 수녀님이 쓰신 책들을 많이 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스님들이 쓴 책을 더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 스님들의 책이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전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금강 스님은 우리나라 땅끝 해남 미황사의 주지로 계십니다. 멀고 먼 땅끝 미황사는 참으로 아름다운 절 중 하나라고 합니다. 호수 같은 서해의 해넘이와 노을이 바다와 섬들 그리고 그 끝의 절을 한 가지 빛깔로 아름답게 물들인다고 합니다. 이 곳에서 보내는 365일을 고스란히 담은 것이 이 책입니다.

 

스님은 미황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고 삶의 또 다른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비단 절이 스님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찾아와 마음을 ‘툭’ 내려놓을 수 있도록 스님은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종교의 아집을 거부하며 화합을 이뤄냈습니다. 이른 바 사하촌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공존입니다. 마을 당제에 나가 기도를 해주고, 당산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무탈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하느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며 타 종교를 이단으로 내몰고 극단적인 행위마저 일삼는 극소수 개신교 집단과는 확연히 다른, ‘격’높은 모습니다. 스님은 한 마을에서 서로의 종교가 다른 상황에서도 굳이 절에 찾아와 당제를 부탁하는 마을사람들의 순정을 아름답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또한 당제가 오랜 세월 절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켜온 값진 문화유산이라 말합니다. 종교는 모든 것을 포용해야 비로소 종교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굳게 믿는 제 마음과 일치합니다.

 

작은 시골에 있는 절에서 생활한다는 것. 그 어떤 화려하고 웅장한 대사찰에 있는 것보다 값지고 아름다운 추억들을 많이 만들 수 있었다고 스님은 말합니다. 매 페이지마다 보여지는 마을과 절에 대한 스님의 사랑은 결코 대사찰 주지가 부럽지 않아 보입니다.

 

매월 셋째 주 7박 8일 동안 진행되는 ‘참사람의 향기’ 프로그램. 이는 일반인들이 일주일동안 절에 머물러 마음을 비우고 수행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해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황사를 찾아오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은 각박한 속세를 잠시 잊고 시간과 공간의 얽매임에서 자유로워져 수많은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불교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발우공양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나누어 먹는 평등의 정신과 철저하게 위생적이고, 낭비가 없는 청결의 정신, 그릇 소리나 먹는 소리가 나지 않는 고요함이 담겨 있습니다.

 

“한 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 한 톨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 있습니다. / 정성이 깃든 이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여 청정하게 살겠습니다. / 이르는 곳마다 부처님의 도량이 되고 / 베푼 이와 수고한 모든 이들이 보살도를 닦아 다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또한 참선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느끼는 고통에 찬 현실이 실은 실체가 없는 것임을 일러주는 공부법이라고 스님은 말합니다. 그 고통이 고통 아닌 행복임을 일러주는 공부이며 늘 여여하게 깨어 열린 삶을 살라고 가르치는 공부법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식들의 무아일여의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조용히 앉아 끊임없이 버리고 버리는 노력을 한다면 조금은 이 세상이 달리 보이지 않을까요.

 

책은 스님들의 한해살이를 소개합니다. 동안거, 하안거 등 수행의 시간들, 결제와 회향, 운력 등 불교 용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부처님오신날, 템플스테이, 백중 천도재, 칠월칠석 불공 등 일반 대중들이 함께 하는 이야기들도 전해줍니다. 49재를 이야기할 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합니다.

 

스님은 한문학당, 템플스테이, ‘참사람의 향기’, 산사음악회, 작은 학교 살리기 등 많은 프로그램과 노력을 통해 미황사를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로 탈바꿈 시켰습니다. 남녀노소 누구나 미황사를 찾으면 금강 스님과 따뜻한 차담을 나눌 수 있었고, 아름다운 바다와 노을을 바라보며 행복해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걷기 수행 등을 통해 긴 호흡으로 삶과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중 수행공동체라는 꿈을 간직하며 살아온 스님의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제 예전보다 규모나 위상이 한결 높아진 미황사입니다. 이제는 금강 스님도 너무 바쁘셔서 일일이 방문객들과 차담을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심스레 제 희망 방문지 리스트에 미황사를 눌러 적습니다. 착하디착한 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 그리고 이 마을과 슬그머니 하나가 되어버린 절 하나. 아름다운 바다와 산이 푸근하게 반겨주는 땅끝마을. 어찌 찾아감을 바라지 않을 수 있을까요.

 

모든 마음을 버리고 또 버릴 때 가장 큰 행복과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저 역시 일천한 불교지식, 혹은 경험으로부터 느낍니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절의 이야기. 그리고 부지런히 부처님의 말씀을 실천으로 옮기는 스님. 아름다운 문화유산과 오랜 시간 축적된 지식과 경험으로 그 가치를 측정할 수 없는 불교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중생들에게 다가가야 할지, 이 책은 작은 힌트를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행복을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저도 찬 한 잔 주실 꺼죠?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저녁예불을 마치고 마당을 세 바퀴 돈다. 천천히 큰 원을 그리며 걷는다. 여름에는 황금빛 저녁노을이 마당에 한 가득이다. 그 황홀한 풍경에 빠져 걷는 걸 잊을 때도 있지만 저녁노을과 온전히 하나가 되는 내가 참 좋다. 그때만큼은 나도, 미황사도, 달마산도, 저녁노을도 그 경계가 없다. 온전히 하나일 뿐이다.

겨울에 마당을 걷는 것도 운치가 있다. 달빛과 별빛의 은은한 빛이 고즈넉함에 젖게 한다. 겸손하게 살자, 까닭 없이 찾아든 생각을 하게 되는 때가 겨울 그즈음이다. 내가 딛는 이 발걸음이 뒤따르는 누군가의 길이 된다고 했던가. 걸음걸음 한 걸음 조신하게 내딛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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