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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의 정세토크 - 60년 편견을 걷어내고 상식의 한반도로
정세현 지음, 황준호 정리 / 서해문집 / 2010년 11월
평점 :
“6·15선언은 북한에 대한 환상이 있어서, 아니면 김대중 전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진 건 아닙니다. 국제정세의 흐름을 우리가 최대한 활용하면서 민족의 활로를 열기 위해 추진했던 평화 만들기 장전이었어요. 평화 만들기를 한다고 해서 평화 지키기, 즉 안보를 게을리 했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평화 지키기를 위해 연간 전체 국가 예산의 약 9~10%, 20조 원 이상을 국방비로 쓰면서, 그 돈의 1/40 정도 되는 5000억 원 정도를 남북협력기금으로 만들어 평화 만들기를 추진한 겁니다. 그게 6·15의 패러다임이었어요.”
우리 민족이 워낙 짧은 시간에 파란만장한 역사를 겪어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사람들의 심성이 조금은 남다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흥분하기도 하고, 또 쉽게 쏠리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믿을 것은 나와 가족밖에는 없다’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는 물론 사람들의 개인적 성향만을 탓할 수 없습니다. 국가, 정부라는 것은 언제나 국민들을 보호하기보다는 탄압하고 착취하고, 심지어 학살해 왔으니까요. 그 누구도 무엇인가를, 혹은 누군가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냉전이라는 세계사적 상황이 종식된 이후에도 우리는 여전히 냉전 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일제의 강점, 그리고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논리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분단된 우리 민족은 서로 학살을 자행하는 전쟁까지 치르며, 극도의 원한과 분노,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아물 상처는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군사정권을 포함해 역대 정부는 자의든 타의든 북한과의 대화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일정 부분 서로에게 정권 유지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서로가 증오하면서도, 일정 부분 협력해 온 것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11년입니다. 오늘 현인택 통일부장관이 교체된다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2대 통일부장관으로 무척이나 장수한 장관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록이 있지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무언가 하는 것”이라는 해괴망측한 논리를 대며, 통일부장관의 임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는 기록 말입니다. 오히려 내외부로부터 “축사 장관”이라는 놀림을 들어야 했습니다. 장관이란 양반이 할 일이 없으니 각종 행사에 축사나 하러 돌아다녔거든요. 참 많이도 돌아다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책의 저자인 정세현 원광대 총장님은 30여 년 동안 공직에 있으며, 남북 관계의 현장을 누볐던 베테랑 중 한 분입니다. 통일부 직원으로는 최초로 통일부장관에 올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각종 남북회담에 주인공으로 활약하셨죠.
특유의 거침없는 그러나 지극히 논리적이고 상식적인 발언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좌우에 치우치지 않는 “상식에 기반한”대북정책을 위해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정 총장님은 오랜 시간동안 남북문제를 다뤄온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았던 분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할 말은 하고,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주장하셨던 분입니다. 지금 정권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분들과는 정말 차원이 달랐던 분이죠.
그런 총장님의 남북정세, 국제정치 감각과 전망을 재미있게 풀어낸 책은 때문에, 비단 남북관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올 것이라 믿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상식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정 총장님의 글을 읽다보면 상식이 무엇인지,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됩니다. 참으로 감사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형적 보수 세력들이 득세를 하고 있습니다. 진정 보수가 무언지도 모르는 인간들이 보수란 이름을 더럽히고 있죠. 교회 세력들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만들어 왔다며 오만하게도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말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하자는 데에도, 조직적으로 대형교회들은 사람들을 끌어들여 반대 여론을 조성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국가를 이끌어간다고 믿었습니다.
진정한 보수는 정 총장님 정도의 식견과 애국심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 총장님은 지극히 보수적이고, 합리적인 분입니다. 이런 분마저 좌파 세력으로 몰아가는 현실. 김구 선생을 빨갱이로 몰아 결국 암살했던 해방정국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지극한 지혜와 비전이 담겨 있는 책.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일독을 권합니다.
“좋은 일에는 초청을 받아야 가지만, 궂은일에는 소문만 듣고도 가는 겁니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정 총장님이 한 말이다. 음식 쓰레기로 연간 20조 원을 버리는 우리가, 10·4 선언 이행에 14조 원이(그것도 중장기적으로 모두 따졌을 때) 든다고 ‘퍼주기’라고 한다면, 천벌을 받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