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나미 아직 끝나지 않은 경고 - 일본 동북부 대지진, 그 생생한 현장기록
류승일 지음 / 전나무숲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2011년 3월 11일, 마치 한 편의 거대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 일본에서 벌어졌다. 성난 자연의 거센 파고가 일본을 뒤덮은 것이다. 충격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참혹한 재앙 그 자체였다.

 

쓰나미에 이은 방사능 유출은 일본을 한 순간에 죽음의 공간으로 만들어버렸다. 전 세계 지진의 15%를 차지하는 지진국가 일본이기에 치밀하게 대비해 놓은 모든 것들이 허무하게도 한 순간에 사라지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재앙을 통해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일본에 쓰나미가 덮치자마자 마치 자석이 끌어당기는 것처럼 자신도 모르게 일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인간이 만들어놓은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내버린 재앙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마디로 살아 있는 지옥이다. 삶 저편의 세상이 있다고 믿어본 적은 거의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이야말로 생지옥이다. 점점 자연이 무서워지고 두려워진다. 자연은 자신의 만행을 인간이 가진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걸 알려주려는 듯 잔혹한 풍경을 만들어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위대함을 인간이 스스로 깨닫기를 바라는 듯 지금은 아주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 잔혹한 만행과 흔적 없는 침묵에 이젠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기운이 빠지고 허탈했다. 삶이 무상했다. ‘열심히 일궈놓으면 뭐 해. 자연이 한 번 심술을 부리면 찰나에 사라져버릴 것을.’아귀다툼까지 하며 욕심을 채우고 사는 우리가 한없이 가여웠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의 재앙은 일본인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주로 재앙이 휩쓸고 간 다음에 뒤늦게 반성하고 외양간을 고치는 성향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민족적 특성 등으로 분석하기엔 내 깜냥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적어도 짐작되는 것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다른 국가, 민족이 겪어왔던 기나긴 과정들을 그야말로 압축해 겪은 특이한 경험이 있다. 타 민족에 의한 주권침탈과 뒤이은 민족 간의 전쟁, 그리고 분단이라는 상황을 연이어 겪었다. 또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놀라운 속도로 이루어내었다. 그 과정에 부작용이 없을 리 없었다. 온갖 부조리와 불의가 정당화되고 상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이랄까, 공권력의 무관심이랄까 이것 역시 마찬가지다. 대형사고와 자연재해 앞에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무책임하게, 무감각하게 대응해왔다.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고 이후에도 우리는 그다지 먼 미래를 내다보는 대책을 고민하지 않았다. 워낙 큰 사건을 많이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일까.

 

이번 7월 수해와 8월 태풍의 피해를 보면서도 느끼는 게 많았다. 특히 7월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폭우는 인재와 천재가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였다. 광화문 광장을 물바다로 만들어버린 것은 하늘과 서울시의 공동책임이었던 것이다.

 

지난해 폭우 때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백년 만에’‘사상 최대의’ 등 수식어를 써가며,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앙이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그 재앙은 올해 또 재현됐다. 그런데도 뻔뻔하게 정부는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백년 만의 폭우라고 말이다.

 

오세이돈이란 별명을 얻게 된 오세훈 서울시장은 수해나 재해를 위한 예산을 삭감하고 그 돈으로 디자인 서울을 위해 콘크리트를 더욱 깔았다. 여성들의 하이힐이 박히지 않게 하겠다고 깔아버린 콘크리트는 빗물 역시 흡수하지 못했고, 광화문 광장은 바다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삭감한 예산 약 67억의 세 배나 되는 돈을 들여 전면무상급식을 저지하기 위한 주민투표에 나서고 있다. 사람의 안전, 사람의 먹거리를 무시하면서까지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이어나가겠다는 몰염치와 철학의 빈곤, 비열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얼마 전엔 무릎까지 꿇고 눈물을 보였다. 미안하지만, 역겨움 외에는 느껴지는 게 없었다.

 

정부는, 공직자는 시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일해야 한다. 시민의 안전을 무시하면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 것도 무의미하다. 사람들이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는 마당에 디자인 서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가 일본의 재앙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자연의 분노를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고, 그 철저한 대비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정부, 공직자들을 선출해야 한다. 경제적 가치를 위해 흙을 파내고 강을 파헤치는 무식한 정부, 서울을 돌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무식한 서울시장은 다시는 뽑지 말아야 한다.

 

국가권력은 특성상 국민 개개인의 안녕을 신경 쓰지 않는다. 결국엔 국가권력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작동하며 스스로의 안전을 먼저 추구하게 된다. 한 번 잘못 작동된 국가권력을 멈추고 바꾸기란 그리 쉽지 않다. 현 정권이 그야말로 임기 내내 우리에게 가르쳐준 교훈이다.

 

이제 난 내일이면 또 다른 코미디 한 편을 감상할 것 같다. 182억을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주민투표’다. 모든 아이들이 눈치 보지 말고 같이 밥을 먹자는 데에도 기를 쓰고,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사람들.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이 쓰나미보다 더욱 무서운 사람들이다.

 

일본 지진과 쓰나미로 고귀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난 내일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다. 쓰나미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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