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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몰락
서보명 지음 / 동연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일단 다음의 문장에서 틀린 말이 있다고 생각하면 거수!
“대학이 현실, 그것도 체제를 섬기는 하부조직으로 전락했을 때, 대학이란 이름으로 불릴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대학이 체제와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주장하는 자율을 밥그릇 싸움 그 이상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이념으로 생각하지 않는 대학을 대학이라 할 수 있을까? 정신과 이상의 가치를 무엇보다 앞세우는 대학이 현재 가능할 것인가? 그런 가능성이 없을 때, 대학은 어디에서 존재해야 하는가?”
난 윗글 어디에서도 ‘태클’을 걸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대학이라는 이름 자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로, 기업의 인력양성소 혹은 지사 정도로 전락해버린 오늘의 대학. 진리와 자유를 추구한다는 대학은 이제 대한민국 어디에도, 아니 이 지구상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시카고 신학교 교수인 저자는 한국인 1.5세대로 자신이 바라본 한국 대학의 현실에 충격을 받고, 과연 이 시대 대학은 어떠한 존재인지, 또 대학의 미래는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한다. 책은 그 고민의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등 이른바 최고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명문’에서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개개인의 사정이야 각자 다를 수 있다지만, 카이스트의 성적별 차등 등록금제, 전 수업 영어강의 등 경쟁의 정점에 오른 제도들이 학생들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음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대학은 해마다 등록금을 인상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물가 인상에 따른 부득이한 조치라고 하지만, 곰곰이 따지고 들자면 물가 인상폭보다 항상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인상된 등록금이 학생들에게 어떠한 혜택으로 돌아가는지도 설명하지 않는다.
때문에 고통 받는 대학생들에 대해 무관심한 건 당연하다. 해마다 많은 학생들이 등록금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하고 있지만, 대학은 거기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한 사죄나 반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말만 대학일 뿐 강도나 다름없다. 결국 돈이 없으면 학교에 다니지 말라는 것이 그들 주장이다. 혹은 죽어라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으라는 개소리도 함께.
한국의 대학은 ‘한국적’이상과 가치를 채 발견하기도 전에 서구로부터 수입되어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제에 의해 수입되었지만, 일본이 서구에서 도입된 대학 체제를 가져온 것이니 같은 맥락이다.
전통의 대학은 저자의 말처럼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가치를 섬겼다. 섬김의 대상이 없는 교육은 없었다. 기독교 신학의 영향에서 벗어나 탈종교라는 상징의 울타리 속에 거주하기를 원하는 현대의 대학도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자본주의라는, 종교와 시장이라는 신이 서구 사회에서 전통적인 기독교 세계관을 대신하고 있다. 현대의 대학이 바로 그 시장의 신을 섬기는 곳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전통의 대학이 기독교 신학에 의해 통제되고 학문적 당위성을 부여받았다면, 현대의 대학에선 비즈니스 신학이 그에 상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신은 시장이고 그 시장의 신을 연구하는 학문이 비즈니스 신학이라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은 결국 경쟁과 순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고, 당최 그 기준이 애매할 수밖에 없는 ‘순위’를 위해 학교를 으리으리하게 확장하고, 기부금, 후원금을 끌어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미국 등 신자유주의의 정점에 선 국가의 대학들과 한국 대학의 차이점은 다만 소비자로 전락해버린 학생들에 대한 자세다. 미국은 학생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학교 시스템을 바꾸고 교수들에게 압력을 가하지만, 한국의 대학은 여전히 학생들을 다만 조용히 돈만 내고 다녔으면 좋을 소비자로 간주한다.
자, 다시 묻는다. 대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진리의 상아탑이란 말을 헛소리로 치부한 대기업 회장은 자랑스럽게, 한국의 대학은 기업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의 로고가 박힌 건물들이 학교를 점령하기 시작하고, 스타벅스 등 다국적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이런 곳에서 토론과 비판, 자유로운 철학이 가능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자, 이제 지금의 대학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저자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정답은 이미 오래전에 나와 있는지도 모른다. 대학이 이미 그 역할의 의미를 상실하고, 더 이상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면, 대학의 밖에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묻는다.
모르겠다. 과연 이 시대의 대학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지도.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의 대학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전체 사회의 진지한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우리들의 모습을 곰곰이 살펴야 할 것이다.
대학생들이 고통에 겨워 스스로 죽어나가고, 대학은 여전히 건물 올리기와 산학협동을 강조하며 기업의 입맛에 맞는 ‘사원’ 만들기에 주력한다면, 단언컨대 더 이상 대학은 필요치 않다. 진정한 대학은 어떠해야 하는지,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한 번쯤 고민이 필요하다.
대학생, 대학생을 둔 부모, 신학자 그리고 대학 관계자 모두가 일독할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