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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체 게바라 평전
시드 제이콥슨 외 지음, 이희수 옮김 / 토트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이성으로
언제나 세상의 모든 불의에 맞서
그대가 분노할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다!
오랜만에 동지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볼리비아의 뜨거운 밀림 속에서 마치 예수와 같은 모습으로 삶을 마친 후, 무려 10년이나 지난 뒤 태어난 저이지만 굳이 동지라고 부르렵니다.
사르트르는 동지를 일컬어 “우리 시대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찬사를 보냈지요. 여전히 동지는 쿠바의 영원한 형제이자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1997년엔 동지의 유해를 볼리비아에서 쿠바로 이송해 동지가 혁명의 그날 점령했던 산타클라라에 안장했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겠죠?
한편 동지가 그토록 증오했던 제국주의의 원흉 미국에서도 동지의 인기는 놀랍도록 높습니다. 동지의 얼굴이 담긴 티셔츠를 입고, 동지의 치열했던 삶을 경배합니다. 물론 동지는 혁명마저 상품으로 만들어버린 자본주의의 저열함에 치를 떠시겠지요. 저도 동감입니다. 하지만 저 역시 동지의 티셔츠를 가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저는 동지가 1960년 겨울 방문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반세기가 넘도록 반목하고 있는 부끄러운 나라에서 살고 있습니다. 당시 동지가 김일성 광장에서 어린 여학생들과 손을 잡고 강강술래를 돌고 있는 사진을 인상 깊게 본 기억이 납니다.
동지, 동지가 떠난 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세상은 온갖 불의와 탐욕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약자들을 억누르고 세상의 권력을 독차지한 이들은 여전히 자기의 배를 불리기에만 정신없습니다. 더러운 자본의 노예들은 여전히 썩은 정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혁명은 여전히 미래입니다.
때문에 더욱 동지를 그리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권력과 명예를 미련 없이 던져버리고, 또 다시 혁명을 위해 죽음의 정글로 뛰어 들어간 당신을…. 애써 동지를 폄하하려는 세상 모든 자본주의의 ‘개’들마저, 동지의 불굴의 투지와 헌신을 모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동지, 동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한 저는 왠지 이대로 졸업을 해버리면 너무나 허무할 것만 같았습니다. 때문에 제가 끄적거려왔던 잡문들을 모아 저만의 문집을 만들었습니다. 40부였던가요. 없는 돈을 탈탈 털어 만든 문집을 벗들과 후배들에게 나눠주고 혼자 뿌듯해 했었죠.
그 문집의 표지가 바로 동지였습니다. 그리고 표지 아래엔 동지가 했던 말을 담았죠. “Hasta La Victoria Siempre!”그렇습니다. “승리의 그날까지 영원히!”였습니다. 조잡하게 인쇄된 동지의 얼굴은 그러나 우뚝했습니다.
벌써 10년 전의 기억입니다. 전 그때 동지의 얼굴을 보며 무엇을 다짐했던 것일까요. 어떤 삶을 고민했던가요. 그리고 어떤 희생과 죽음을 각오했던가요. 볼리비아의 뜨거운 밀림은 아니더라도, 분단의 치욕 같은 굴레에서 벗어나 더욱 더 뜨거운 민족의 하나됨을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다짐했던가요. 그것이 아니라면, 철저히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 땅의 모든 민중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했던가요.
그리고 지금의 전 과연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요. 전 얼마나 패배했고, 얼마나 더러워졌으며, 얼마나 비겁자가 되었을까요. 이따금 동지에 대한 글이나 책이 나올 때마다, 동지의 삶을 다룬 영화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동지의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전 왜 한없는 부끄러움과 외면을 반복해 왔을까요.
그렇습니다. 10년 전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동지는 제 삶과 행동을 규정하는 하나의 지침이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삶을, 치열한 열정을 따를 능력도 열정도 부족한 저이지만, 그와 상관없이 언제나 “만약 이 순간에 동지였다면 어떤 행동을 했을까”생각하곤 합니다.
네, 전 10년 전의 제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전의 저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분노를 가슴에 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릴 줄 압니다. 저열함과 치열함의 숭고한 차이를 알고 있으며, 여전히 혁명을 꿈꿉니다. 모든 이들이 형제가 되어 총을 내려놓고 손을 잡을 수 있는 세상.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가 되고자 합니다.
당신의 삶을 간결하게, 그리고 동지가 살았던 그 시대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상황을 알기 쉽게 소개한 이 책은 잠시나마 당신을 모른 척 했던 저에게 일격을 가했습니다. 삶이란 고개를 돌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분노는 허튼 웃음이나 회의로 감출 수 없음을 다시 느낍니다.
동지, 여전히 저를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세상은 한없이 어둡지만, 그 속에서 뜨거운 횃불을 밝힐 수 있도록, 그 불쏘시개라도 될 수 있기를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차가운 땅 위에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살아있는 인간’으로 살 수 있기를 기원해 주세요.
서른 아홉이란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동지. 아직 동지보다 많은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대가 살았던 그 치열함만큼 뜨겁게 세상과 맞붙어 보겠습니다. 약자를 억누르는 저 짐승 같은 권력, 그리고 그 권력 아래에서 일신의 안위만을 지키며 같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기생충과 같은 인간들에게 굴복 당하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용기를 주세요. 동지.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있는 젊은이라면
누구나 뜨거운 가슴을 찾아 헤맬 줄 알아야 한다.
그 길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 할지라도
심지어 돌아오지 못할 길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