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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12월
평점 :
판매중지
최근 《종이여자》가 서점가에 나왔더군요. 많은 이들이 책을 집어 드는 모습을 봤습니다. 여전히 기욤 뮈소의 인기가 대단함을 실감했습니다. 뭐, 전 언제나 그렇듯 이제야 이 작가의 작품을 접하게 됐네요.
‘85주 연속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라는 문구가 표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흔하디흔한 사랑 이야기일 수도 있는 책이 왜 이리 큰 인기를 얻었을까요. 그리고 프랑스 소설이라 하면 조금은 어렵게 받아들이는 국내 출판계에서 이토록 큰 반향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많은 분들의 서평을 보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가독률이 뛰어나다는 것. 이는 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보자면 무엇보다 큰 미덕입니다.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그야말로 어려운 소설들도 많거든요. 그 작품들이 노벨상이나 등등의 큰 상을 받은 작품이라 할지라도 솔직히 책장 넘기기 어려운 소설들은 망설여지게 됩니다.
책은 쉽습니다. 아울러 프랑스 소설 특유의 딱딱함, 그리고 난해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쩌면 조금 세련되었다고 할까요. 영화를 고려해 만든 것처럼 장면 장면이 눈에 보이고, 약간의 판타지와 스릴이 가미된 ‘잘 만들어진 이야기’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했던 아내를 잃어버린 샘. 그는 하루하루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은 고통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말이죠.
한편 화려한 여배우의 꿈을 안고 고향 프랑스를 떠나 뉴욕으로 온 줄리에트는 결국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다시 쓸쓸한 귀향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샘과 운명적인 만남이 이뤄지고 격정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짧지만 생애 최고의 사랑을 경험한 이들. 하지만 선뜻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놓지 못하고, 결국 줄리에트는 고향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그리고 이어서 벌어지는 놀라운 사건들. 과연 이들의 사랑은 이루어질까요.
무난한 스토리 전개에 무난한 문장.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즘 트렌드에 걸맞은 판타지적 요소들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전 그 이상의 점수를 주기엔 머뭇거려 집니다. 왜 그럴까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작품에 감히 시큰둥하다니요.
전적으로 제 개인적 취향임을 밝혀둡니다만, 전 ‘너무 미국적인’혹은 ‘너무 대중적인’글로 보이기 위해 애썼을 저자가 약간은 안쓰럽다는 생각입니다. 이 소설은 누가 읽어봐도 당최 저자가 프랑스 작가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습니다.
문장마다, 혹은 문단마다 부러 세련되어 보이려는, 혹은 미국의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듯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뉴욕의 소도시 혹은 타운 들에 대한 묘사에서 나타나듯, 실재 저자는 뉴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그것이 오히려 저에겐 어색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딱 다빈치 코드 류’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살벌하게 폼 잡는 것 말이죠.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이는 순전히 제 개인적인 평가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 감동을 느꼈다면 책은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고, 또한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것입니다. 이를테면 저 하나 정도는 빼고 말이죠.
아, 그렇다고 제가 책을 정말 눈물 나게 재미없게 읽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페이지는 쉽게 넘어가고, 또 어느 인기 미드의 에피소드 하나, 혹은 할리우드의 뻔한 통속 러브스토리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었으니까요. 저 미드 좋아하거든요.
거창하게 민족주의 운운할 능력도 생각도 없습니다. 미국은커녕 프랑스 구경도 못해본 촌놈이지만, ‘위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나 세계화에 대해 대체로 수긍하고 사는 편입니다. 하지만 모든 스토리의 중심, 이야기의 중심이 너무 미국적으로 흐르는 것은 그닥 맘에 들지 않습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지만, 혹시 배경이 전부 미국은 아니겠죠?
혹시 오해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 제가 찌질이처럼 배경이 미국이거나 미국 상품, 제품의 이름이 난무한다는 것 하나에만 딴지를 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요. 뭐 어떻습니까. 다만 그 도도하고 자존심 높은 프랑스 양반들이 미국 입맛에 딱 맞는, 혹은 맞추려 애쓰는 작품들이 최근 좀 많이 나오는 것 같다는 생각 정도?
본의 아니게, 건방지게 작품에 시비를 건 꼴이 되었습니다. 뭐 저 하나가 딴지를 걸어 봤자
대세에 지장은 없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미안한 건 별로 없지만, 오해는 말아 주세요. 저 미드 좋아한다니까요.
책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그의 작품들이 두어 권 정도 더 있습니다. 이것들도 마저 읽어 본 다음, 다시 기욤 뮈소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봐야 할 듯합니다. 뭐 프랑스인이면 프랑스다운 글을 쓰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는 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딴 건 세상에 없거든요. 다만 ‘뜨기 위해’부러 그다지 부럽지도 않은 세계를 환상적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죠.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