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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강의 - 미국 명문대 교수가 추적하는 뱀파이어의 세계
로렌스 A.릭켈스 지음, 정탄 옮김 / 루비박스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즐겨보는 미드 중 수퍼네츄럴(Supernatural)이 있다. 잘생긴 두 청년 퇴마사들이 온갖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이제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신의 경계를 넘나들고 생사도 왔다 갔다 한다. 온갖 천사와 악마들도 등장하고.
최근 에피소드 중에서 주인공 형제 중 형 ‘딘’이 뱀파이어의 습격을 당해 자신도 뱀파이어가 되는 장면이 있었다. 뭐 결국은 다시 인간이 되지만, 그 후부터랄까. 다른 인간들이 뱀파이어와 관련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딘의 평가가 조금 달라졌다.
뱀파이어를 숭배하는 어느 소녀의 집에 들어간 딘은 소녀의 방에 걸려있는 뱀파이어 영화의 남자 주인공 브로마이드를 보며 말한다. “저건 뱀파이어가 아니야, 그냥 쓰레기일 뿐이지.”아마도 최근 〈트와일라잇〉〈뉴문〉 따위의 영화를 빗대어 말한 것일 테다.
뭐 그렇다. 아주 오랜 예전부터 지금까지 흡혈귀, 드라큘라, 뱀파이어와 관련된 문화 아이템은 너무나 많았다. 늑대인간과 더불어 흡혈귀는 없어서는 안 될 대표 문화 상품이다. 거기에다 100% 창작이 아닌 나름의 실화와 전설, 역사도 갖추고 있으니 더 그럴 듯 하지 않나.
〈뱀파이어 강의〉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그런 여러 가지 흔해빠진 아이템 중 하나라 여겼다. 이것 또한 하나의 소비품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엄연히 대학에서 10년 넘게 강의를 해 온 하나의 ‘학문’이었던 것이다. 뱀파이어에 대한 학문적 고찰이라, 색다르면서도, 조금은 깔보며 페이지를 넘겼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가 빈번히 등장하고, 정신분석학, 문학과 영화, 드라마를 넘나들며 파헤쳐진 뱀파이어의 세계는 나의 무지를 다시 한 번 강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으악”이었다.
애도와 우울, 동성애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니힐리즘과 자본주의, 인쇄술과 마녀 사냥 등 뱀파이어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만만한 것들이 전혀 없었다. 한마디로 뱀파이어는 그냥 단순한 영화, 드라마의 흥밋거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적절하게 매장되지 못한 사람이 뱀파이어가 된다는 것은 그 특정인이 적절하게 애도를 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많은 나라에서 중병에 걸렸으나 돌보아줄 이가 없어서 혼자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누구나 되살아난다는 믿음이 실제로 유행하고 있었다.……죽은 자의 원망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다.”
“애도를 할 때, 그때마다 일어나는 대체, 통합, 살의의 순간에 대해서도 애도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애도하는 동시에 애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오로지 삶을 긍정하기 위해 벌떡 일어서서 동일자의 영원회귀를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우리의 유령으로 인해 또는 그것을 따라 죽는 게 아니라 유령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뱀파이어는 애도 받지 못한 자이자, 미처 애도하지 못한 우리이며, 이해받지 못한 소외된 자다. 또한 초인적이지만 신이 될 수 없는 ‘팝스타’이자 ‘기형아’인 것이다. 그들은 유령이기보단 ‘슬픈 인간’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그토록 오랫동안 뱀파이어에 공포를 느끼면서도, 환호하는 것일까.
그것은 뱀파이어의 불멸성, 젊음, 성적 매력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은 아닐 듯 싶다. 유년 시절을 온전히 극복하지 못한 이들의 불안감, 성장통 역시 뱀파이어를 숭배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내가 느끼기에 뱀파이어에 대한 인기, 숭배에는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죄의식’이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소외된 이들, 가까이 가기 두려운 이들에 대한 죄의식, 억지로 ‘악인화’시켜, 결국 집단으로 살해해 버린 이들의 대한 공포인 것이다. 우리는 최근 흔하게 등장하는 좀비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좀비는 그 발생 원인을 막론하고 두렵고 기피해야 할 ‘죽지 않은 자’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존재는 없다는 사실. 뱀파이어 역시 수많은 이야기와 수많은 시간들과, 수많은 고통과 죽음 속에 이어진 전설이자, 엄연한 ‘사실’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적당한 소비품으로 전락해버린 비통함이 있지만, 엄연히 뱀파이어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적당히 즐기고, 무서워하고, 비명을 질러대는 것으로는 온전히 확인할 수 없는 뱀파이어의 세계. 비록 저자의 난해하고 비비 꼬는 듯한 문장이 눈에 착착 감기지는 않지만, 저자 덕분에 애꿎은 역자의 문장마저 때론 기괴하고 이해불가였지만, 어찌되었든 ‘국내 최초의 뱀파이어 분석서’라는 수식어처럼 책은 흥미와 그 외에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들과 문학 작품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적지 않다.
그리고 나를 비롯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자신 없어 하는, 그러면서도 마치 아무 일 없이 잘 하고 있는 것 마냥 꾸며대는 ‘애도’와 ‘우울’에 대한 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었음도 성과였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