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복희씨
박완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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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할까요. 2008년 초에 읽었던 《친절한 복희씨》를 다시 꺼내든 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였습니다. 말 그대로 다시 한 번 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죠. 그리고 마감이다 뭐다 바쁘게 돌아가는 와중에 짬짬 읽어나가다 21일 책장을 다 덮었죠.

 

그런데 다음 날, 참 허망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박완서 작가님의 별세 소식이었습니다. 이날은 고 리영희 선생님의 49재 날이기도 했습니다. 전 아침 일찍 봉은사에 나가 49재 추모행사 자리에 있었죠. 그런데 같은 날 박완서님께서 생을 달리 하신 것입니다.

 

손에 쥐어있는 책이 순간 마치 작가님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저에게 주신 선물마냥 느껴졌다면 이상한 이야기일까요. 허망하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이제 편히 쉬시겠구나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절한 복희씨》의 맨 마지막 “작가의 말”을 보자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9년 만에 또 창작집을 내면서 또 작가의 말을 쓰려니 할 말이 궁했던지 문득 이게 마지막 창작집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나도 사는 일에 어지간히 진력이 난 것 같다. 그러나 이 짓이라도 안 하면 이 지루한 일상을 어찌 견디랴. 웃을 일이 없어서 내가 나를 웃기려고 쓴 것드이 대부분이다.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결국 《친절한 복희씨》는 선생님의 마지막 창작집이 된 셈인가요. 지난 해 말 다른 문인들과 함께 펴낸 《반성》에서 선생님의 마지막 글을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참으로, 참으로 겸손하셨어요. “건망증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서글픈 것”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라 하셨죠. “사회정의를 일신의 안위를 희생한 적도, 불우한 이웃을 위해 큰돈을 쾌척한 적도 없다.”시며 “기껏해야 남에게 폐나 안 되게 살려고 전전긍긍 옹졸하게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엔 염치없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은 사실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없죠. 다만 죽지 않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선생님은 널리 알려지거나, 혹은 알려지지 않게 크고 작은 선행을 꾸준히 해 오신 분입니다. 자신의 장례조차 부의금을 일체 받지 말라 당부하셨죠. 가난한 문인들이 문상 오는 것을 부담 없게 하려는 생각이셨습니다.

 

선생님이 과연 이 세상에 태어나 남을 위해 좋은 일 한 게 하나도 없는지는, 남아있는 사람들이 절절히 알 것입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통해 위안을 받고, 삶의 용기를 얻고, 때론 함께 분노해 온 많은 이들에게 선생님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주셨음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친절한 복희씨》는 ‘나이 들어감’의 대한, ‘노년’에 대한 솔직하고 담담한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없이 자식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달려 온 이들이, 이제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허둥지둥 대는 모습도 보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슬기롭고 지혜롭습니다.

 

생각보다 무서운 속도로 ‘나이 들어가는’사회에서 정작 사회는 이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새로운 자원들(아기)을 빨리, 많이 생산하라는 독촉뿐이죠. 아이를 갖기 위한 적당한 조건은 전혀 마련해주지 않고 말이죠.

 

어느 책에선가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구절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순간 순간 불타 사라지는 도서관들을 하염없이 멍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책을 통해 선생님은 ‘이해하고’‘용서하고’또한 그저 바라봅니다. 젊은 아이들의 청춘에 삐치고 싶지만, 그들이 젊음을 받아들이고, 곧 자신의 늙음을 받아들입니다. 세상에 각박함에 진절머리 치다가도, 이 또한 사람 사는 세상임을 인정합니다.

 

물론 이러한 달관의 자세는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대책 없이 무조건 ‘다 그렇게 가는 거지’ 따위의 방관도 아닙니다. 선생님의 글이 여전히 우리에게 우뚝한 이유는 노년의 지혜와 더불어 날카로운 관찰력과 비판 의식이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좀처럼 사람들에게 ‘곁’을 주지 않았던, 그러나 시무룩해 있는 이들의 기분을 ‘눙쳐줄’ 줄 알았던 사람. ‘첫밗’에 마음에 들지는 않았더라도 언제나 ‘구슬’같았던 사람. 이제 능청스럽게도 추억을 아름아름 풀어놓던 선생님의 글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생님이 풀어놓으신 이야기들은 언제나 두고두고 젊은 ‘아해’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줄 것입니다.

 

〈그 남자네 집〉의 아련한 추억처럼 이제 추억으로 남을 박완서 작가님. 부디 아름다운 심성 그대로 그 곳에서도 한없이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숨막히게 어지러웠던 세상일랑 깨끗이 잊어버리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굿바이 추억이여, 잘가요. 복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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