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물 인터뷰 - 세계사인물 다시보기, 진시황에서 이토 히로부미까지
최용범 지음 / 페이퍼로드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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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광해군은 연산군과 함께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대표적 폭군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광해군은 임진왜란 중 국가의 안위를 위해 직접 분조를 이끌며 전장을 지휘했고, 재위 기간 동안 복잡다단한 국제정치 상황에 대응해 중립외교로 조선을 전란에서 구한 ‘외교정책의 대가’였다. 반면 그를 몰아내고 임금이 된 인조는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포기했고, 그 결과는 ‘삼전도의 굴욕’으로 돌아왔다. 인조는 청나라 황제 앞에서 아홉 번이나 머리를 땅에 부딪쳐야 했다.

 

오해와 편견의 역사 인물 다시 보기

 

최용범 대표가 펴낸 《역사인물 인터뷰》는 그동안 악인, 패자, 폭군으로 알려진 역사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직접 저자가 그 인물이 살았던 시대로 돌아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신선한 형식이다. 물론 가상 인터뷰라고 해서 내용까지 허구는 아니다. 수많은 사료와 자료를 통한 ‘사실적 가상 인터뷰’다.

 

인터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양하다. ‘분서갱유’와 ‘만리장성’으로 유명한 진시황부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 클레오파트라, 《삼국지》의 대표 악인 조조, 중국 유일의 여황제 측천무후, 우리 역사의 해상왕국 시대를 열었던 장보고, 그리고 궁예, 정도전, 허균, 카사노바, 나폴레옹, 명성황후, 이토 히로부미까지 그동안 고의적으로 폄하되었거나 왜곡된 역사적 인물, 혹은 그 중요성을 간과했던 인물들이다. 이들은 인터뷰를 통해 하나같이 자신의 억울함이나 정당성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조조는 자신이 대표적인 악인으로 후세에 알려져 있다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대꾸한다.

 

“선생께서 보기에는 나와 유비 중 누가 더 많은 배반을 했겠소? 유비가 동맹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소. 나를 포함해 공손찬·도겸·원소·유표·손권 거기에다 여포와도 동맹을 맺었소. 게다가 거의 유비가 먼저 의탁했던 경우가 많소. 그러나 나중에는 유비가 이들과 모두 반목하지 않소? 명분이야 못 붙이겠소? 거기에다 나에게 항복한 여포가 ‘저의 무예로서 섬기겠다’고 했을 때 죽여야 한다고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유비였소. 허허….”

 

최 대표는 책을 통해 ‘자기 눈으로 역사를 보자’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전한다. 그동안 알려진 피상적 인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정말 이것이 사실인가’라는 의문을 갖고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깨자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은 2002년에 냈던 것을 다시 발간한 거예요. 당시 준비부족으로 부실하게 낸 것을 마음에 걸려 하다, 이번에 다시 내게 된 거죠. 하지만 책이 주고 있는 메시지는 변함없다고 생각해요. 또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추가로 넣었고요. 이를테면 광해군 같은 경우죠. 광해군은 현실적인 중립외교로 강대국 ‘명’과 신흥강국 ‘청’ 사이에서 자강책을 추진했어요. 그가 얼마나 현명했는지는 그 이후 역사를 보면 알 수 있죠. 전 광해군의 지혜를 현 정부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우리는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일방적으로 미국 편향적인 외교를 펼쳐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는 MB정부가 인조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역사가 주는 교훈은 시간을 초월하는 법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나름대로의 균형외교가 아닌 일방주의, 근본주의에 가까운 이명박 정부의 외교상. “내치의 실패는 정권 교체로 끝날 수 있지만, 외치의 실패는 민족의 생존 여부까지 가른다”는 최 대표의 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지금이다.

 

‘인간학’에 관심 많았던 ‘얼치기 운동꾼’

 

대학시절 문예운동에 매진했던 그는 정작 스스로 ‘얼치기 운동꾼’이었다고 말한다. 주류 운동권이 아닌 ‘주(酒)류 운동권’이었다는 것. 학문의 화두로 잡았던 인간학을 바탕으로, 대중 공간에서의 운동, 문학을 통한 운동을 꿈꾸었던 그는 졸업 이후 시사월간지 《사회평론 길》의 취재기자, 프리랜서 작가, 출판기획자 등을 거쳐 2006년부터 출판사 페이퍼로드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그가 30대 초반 겁 없이 펴낸 《하룻밤에 읽는 한국사》는 10년 간 30만 부가 팔려나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하룻밤에 읽는 고려사》 《난세에 간신 춤추다》 등도 좋은 반응을 얻어왔다. 또 페이퍼로드가 펴낸 《CEO의 습관》 《원점에 서다》《108가지 결정》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등도 많은 독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그는 《역사인물 인터뷰》의 등장인물 중 조조를 가장 좋아하고, 궁예가 가장 아쉬움이 남는 인물이라 말한다. 죽는 그 순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던 현실주의자 조조,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끝내 펴보지 못하고, 역사의 악인으로 남은 궁예. 어쩌면 이들의 삶을 통해 최 대표는 우리 시대의 방향 설정에 주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최 대표는 올해도 많은 책들을 구상 중이다. 역사작가 함규진 선생의 연재를 모은 《만약에 한국사》도 곧 나올 예정이다. 이는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들을 뒤집어보는 형식이다. 승자독식주의가 판을 치는 지금, ‘패자’의 목소리에서 또 다른 진실을 찾는 것. 이는 운칠기삼(運七技三)에서 3은 다했지만 7이 따르지 못해 좌절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피땀 어린 흔적 역시 소중함을 말해준다. 최용범 대표와 페이퍼로드의 새로운 ‘역사 바라보기’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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