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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리더십
최경환 지음 / 아침이슬 / 2010년 12월
평점 :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나약한가. 한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것이 인간 아닌가.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인간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위대하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 김대중은 참으로 위대한 정치인이자, 또한 ‘인간’이었다.
대통령이 서거하신 이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거꾸로’를 반복해왔다. 대통령이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원칙과 철학의 리더십은 실종되었다. 지도자, 리더는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히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믿음은 그러나, 이제 한낱 쓰레기처럼 무시될 따름이다.
지도층이란 인간들이, 리더라는 인간들이 먼저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되는 법이라면 그건 그들에게 이미 법이 아니다. 없애야 할 장애물일 따름이다. 리더 스스로 법을 준수하지 않으면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한다면, 과연 그 사회는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
1999년부터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하며, 마지막까지 곁을 떠나지 않은 최경환 비서관. 그는 책을 통해 제2의, 제3의 김대중을 바라고 있다. 원칙과 철학을 갖춘, 믿음과 성실 속에 오직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지도자. 국민들이 진정 믿고 함께 발전해나가길 원하는 지도자. 사실 우린 그런 지도자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역사의 발전은, 물론 어떤 천재적인 개인이 이끄는 것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역사적 발전의 계기 때마다 이것을 한 발자국 앞서 이끌어간 이들이 있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대통령은 우리 국민들을 끝까지 신뢰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놀라운 경제적 발전을 함께 이뤄낸 국민들의 저력을 믿었다. 하지만 이런 슬기로운 국민들과 함께 역사의 발전을 추동해 나갈 인물의 부재는 늘 아쉬워했다.
김 대통령은 “어떠한 민주국가라도 다수 국민의 열망을 집결해서 정책화하고 이를 실천하는 선도적 역할을 하는 지도자가 없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금의 한국 정치를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썩은 리더들이 온갖 권력을 휘두르며 이 땅 이 나라를 한심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던 대통령, 성공과 실패에 관계없이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모든 사람이 인생의 사업에서 성공할 수는 없지만, 원칙을 가지고 가치 있게 살면 성공한 인생이고, 이러한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하셨던 대통령. 그는 긍정의 힘을 믿으며, 자신에게 떨어진 수많은 불행과 고통을 극복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가신 뒤, 1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버릇이 하나 생겼다. 모든 지도자들, 리더라 자처하는 인간들을 두 분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삶과 철학, 행동과 발언,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살펴보았다.
실망이었다. 모두들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면서도 수치스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당장 이익이 된다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이건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간 자리에서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몇 차례 말했다고 한다. 지금 결과를 보자면? 거짓말이었다. 그는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리고 오직 흡수통일이라는 헛된 꿈에 사로잡혀 북을 위협했고, 결국 천안함 사건(물론 아직도 진실은 모른다)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까지 초래했다.
김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7개월 전 비서관회의에서 하신 말씀을 옮겨본다. 이런 대통령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든다. 그것도 이미 퇴임하고 여생을 편히 보내도 되는 입장에서 말이다.
“나는 요새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내가 건강해서, 기가 막힌 시대에 한마디라도 거들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 아래 1998년 정권교체까지 50년 동안 온갖 박해를 받으며 국민과 함께 싸워왔다. 고통 받은 국민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죽은 사람, 가산을 탕진한 사람, 이혼한 사람, 감옥에 간 사람, 고문을 당한 사람,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 자식을 취직도 시키지 못한 사람……눈물겨운 피 나는 희생이 있었다. 1998년 여야 정권교체하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넘겨주면서 이제는 민주주의로 걱정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잘못 봤다. 지금 내가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 현역같이 정치활동을 할 수 없지만 지금 나는 맥시멈으로 하고 있다.”
당시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인 행태를 두고 김대중 대통령은 끊임없이 우려를 나타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생각해주길 당부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은 “노인네가 망령이 났다”고 대꾸했다. 정치인을 떠나 ‘인간’으로서 얼마나 많은 수준 차이가 나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그들은 김 대통령의 마지막 애절한 호소마저 ‘망령’으로 치부했다.
그 결과는 현재 그대로 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요즘 살기 좋다고 웃으며 떠드는 인간들은 오직 ‘돈 많은’그리고 경북고와 고대를 나와 소망교회에 다니는 인간들뿐이다. 빽이 많아 자식들 군대 안 보내도 되는 ‘군미필자’뿐이다. 아니면 행방불명되었거나….
이명박 정권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악의 근원’이라 표현한 보수 성향 잡지를 국방부 간부 교육용으로 배포한 정권이다. 이쯤 되면 상식이니 개념 따위를 기대할 수 없다. 김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절대 정치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리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당신을 부당하게 괴롭혔던 사람을 처벌할 생각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손보려고 따져보니 손볼 사람이 너무 많아서 포기했다”는 우스갯소리로 대신했다. 인격이나 품격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현 정권에게 그딴 것을 바라는 것도 우습지만 말이다.
난 여전히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한다. 거꾸로 돌아가 버린 미친 세상에서 동지를 잃은 노 정치인의 눈물. 가식이나 체면 따위 생각하지 않은 진정 뜨거운 눈물. 그때 난 이미 현 정권의 부당성과 집권세력의 수준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은 젊은이들은 물론 정치를 하겠다고 꿈꾸는 혹은 이미 하고 있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말뿐이 아닌 직접 행동으로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신념을 지켜낸 거인의 삶을 통해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사는 것인지, 느껴야 한다. 무섭다고, 귀찮다고 지금의 불의를 방치한다면 이는 중도나 중용 따위의 말로 덮을 수 없는 ‘악’을 저지르고 있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철학과 가치, 그의 신념과 꿈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이제 수많은 김대중들이, 또 노무현들이 그의 길을 향해 갈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여전히 한국이란 나라에 희망이 있음을 말해준다. 잡스러운 사람들이 아닌, 더럽고 추잡하고 오직 자기만 아는 이기적 경제 동물들이 아닌, 진정 사람다운 사람이 여전히 이 땅을 위해, 이 땅의 이웃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은 눈물겨운 고마움이다.
대한민국 정치를 몇 단계 발전시킨 김 대통령. 그리고 ‘국격’ 떨어뜨리기에 여념 없는 지금 사람들. 나는 지금 사람이라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님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수준이 안 되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음을 느낀다. 배고픈 아이들의 밥값이 아깝다고 덤비는 사람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기가 막힌 세상. 우리는 또 다시 김대중의 리더십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위대한 인물은 위대한 상식이며, 위대한 생각은 완전한 상식 위에서만 생성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