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좀 도와줘 - 노무현 고백 에세이
노무현 지음 / 새터 / 200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대통령님, 안녕하세요. 또 이렇게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세월이 무심하고 또 무참한 지금입니다. 떠나가신 지도 벌써 2년이 되어가려 합니다. 그동안 스스로 어떻게 시간을 보내왔는지, 부끄럽게 삶을 그저 이어만 가는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됩니다.

 

부러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님의 책이 저의 새해 첫 책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님이 쓰신 또는 님과 관련된 책들을 애써 담아두기는 했지만, 차마 페이지를 열 수 없었어요. 왜 그랬는지…. 다시 고개 숙이고 움찔 거리기 두려웠던 것일까요.

 

작년 한 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모두가 웃을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가슴 졸이고 아파하고, 한 없이 초라해지는, 그런 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두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과연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무엇이엇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당장 전쟁이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상황에서 살고 있어요. 대통령이란 사람은 전쟁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고 있고, 일본과 군사적 협력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하려고 합니다. 역사 인식,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대해선 애시당초 생각도 관심도 없는 사람이죠.

 

님이 계실 때와는 전혀 다른 일들이, 또한 도저히 보통 사람이라면 납득할 수 없는 어이없는 일들이 매일 벌어지고 있어요. 불의가 정의가 되고, 부정이 공정이라는 이름 속으로 사라지죠. 염치없는 사회, 반성 없는 사회가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호의로 이제 조·중·동 찌라시들은 더더욱 큰 권력과 부를 얻겠죠. 그토록 님을 저주하고 끝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던 사갈과 같은 족속들이 오로지 돈과 권력을 위해 끝까지 사람임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억누르며 경제 성장이라는 허구 아래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모습은 여전합니다. 정치인이란 이름으로 거짓과 기만과 위선을 밥 먹듯 부리는 이들도 여전하고요. 님과 김대중 대통령께서도 떠나신 지금, 민주주의와 평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이미 책 속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있어요. 그나마 희망의 싹을 자를 수 없는 것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죠. 촛불을 들 줄 알았던 아이들은 자유와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썩을 대로 썩어버린 기성세대를 조롱하며 다시 대한민국의 희망을 가져올 것으로 전 믿고 있어요. 님도 그러시죠?

 

책을 통해 님의 어린 시절,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들을 떠올려 봅니다. 물론 권양숙 여사와의 풋풋했던 사랑도 알았고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며 정의를 위해 노력했던 님의 모습은 감동과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님께서 조금만 더 그 때 그 시절을 기억하셨다면 어쩌면 더 좋은 모습으로 우리들에게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님은 자신의 허물과 모든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분이었으니까요. 어쩌면 그 당연한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거든요.

 

김정길 의원은 님의 뜻을 이어 다시 부산에서 시장으로 출마했습니다. 물론 부산의 벽을 깨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선전했습니다. 놀라운 득표율이라 평가했어요. 어쩌면 그렇게 깨버리려 하셨던 지역구도가 차츰 차츰 무너지고 있다는 희망의 증거이기도 할 테죠. 열심히 하셨습니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어떠했을까 생각해봐요. 이명박 정권의 저 후안무치한 행태, 전쟁을 선동하고 북의 붕괴만을 기다리는 한심한 작태를 어떻게 보셨을까요. 서민을 위한다는 철저한 거짓말로 위장한 채 오직 있는 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조폭 집단과도 같은 행태들. 님은 어떻게 보셨을까요. 무참합니다.

 

책을 덮은 후 또 버릇처럼 한참을 창밖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 문득 님이 부른 〈상록수〉가 다시 듣고 싶어졌어요. 기타를 치시며 어색한 미소를 띠우셨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이제 2012년이면 다시 권력을 잡기 위한 이전투구가 시작될 것입니다. 진정 국민을 생각하는 바른 정치인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님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정당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씀드려요. 그 순박하신 이재정 장관께서 참 열심히 뛰어다니십니다. 문재인 변호사님도 여전하시고요. 님의 벗들은 여전히 님의 벗이길 원하고 있습니다. 다행스럽고도 눈물겨운 모습이에요.

 

새해에는 보다 굳게 살아가려 해요. 남을 속이고 헐뜯고 괴롭혀야만 살 수 있다면 그 삶을 포기할 각오로 살려구요. 지켜봐 주시고요. 새해에도 항상 그렇게 우릴 지켜봐 주세요. 새배를 드리지 못하는 아쉬움 대신 보다 희망찬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다짐으로 대신합니다.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 꼭 알아주세요. 그리고 대통령 노무현, 인간 노무현에서 멈추지 않고 님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런 이들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도요.

 

올 해 열심히 살께요. 그곳에서 항상…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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