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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커 (반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29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SF소설이라…. 평소 그리 즐겨 읽는 장르는 아닙니다. 뭐 그렇다고 특별히 피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워낙 이 분야에 문외한이라 약간은 두려움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완득이》를 워낙 재미있게 읽은지라,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란 말에 주저 없이 책을 들게 되었습니다.
소설은 참 영악합니다. 청소년 소설, 혹은 SF소설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페이지마다 보여주는 것은 여지없는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니, SF에서 무슨 현실이야기냐고요. 그렇습니다. 저자는 미래 사회를 통해 바로 지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싱커〉라는 게임을 통해 ‘반려수’, 즉 자신이 함께 느낄 수 있는 동물과 연동되어 ‘신아마존’을 체험하는 미마와 부건 그리고 다흡. 이들은 지구상 유일한 청정구역인 지하도시 ‘시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모험과 위기. SF의 모든 미덕을 갖춘 소설은 쏠쏠한 흥미와 함께 미래에 대한 조금은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과연 어떤 세상이 진보한, 살기 좋은 세상일까요? 새까맣게 더러워지고 때가 끼더라도, 흙으로 범벅이 된 발바닥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으며 뛰어노는 아이들과 아침부터 잠자리에 드는 그 시간까지 노오란 버스에 태워져 이러 저리 끌려 다니는 아이들 중 과연 누가 더 아이다운,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스스로 땅을 일구며, 조금은 힘이 들더라도 먹을거리에 대한 걱정, 아픔에 대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요.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 하나 하나 걱정해가며, 거기에 알게 모르게 수많은 돈과 시간을 퍼부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할까요.
책은 말합니다. 인류가 꿈꾸는 진보, 이상향은 어쩌면 이미 경험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리고 그것을 한심하게 저버렸다고요. 착각 속의 진보나 윤택한 삶을 위해서 말이죠. 우리는 그것이 행복이고, 또 잘 사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책의 또 다른 미덕 중 하나는 현실에 대한 철저한 비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기실 얼마나 허약하고 또 엉터리인지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가령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 저자가 표현한 곳이 ‘시안’인지 ‘한국’인지,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지금의 ‘세계’인지 헷갈립니다.
공연이 한창 무르익을 즈음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자치대 제복을 입은 노인들이 몰려온 것이다. 자치대는 1세대 노인들이 시안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였다. 그들의 노란 제복은 주름을 좍 편 반질반질한 얼굴만큼이나 호감이 가지 않았다.…“우린 지난 시대의 참상을 직접 겪은 사람들로서 너희들의 철없는 짓거리를 중지시킬 권리와 의무가 있다.”
“여기 개인 면담을 한 사람들 없어? 교육국에서 이번 시위를 뒤에서 조종한 세력을 찾는 눈치야.”
“그런 게 어딨어?”
“없지만 없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거지. 그들의 사고방식으론 말이야.”
“설사 그런 세력이 있다 한들, 찾아서 뭐하게? 우린 평화적으로 시위를 했을 뿐인데.”
“그 일 자체를 가지고 트집 잡진 못하겠지만 어떻게든 겁주려고 할 거야.”
따지고 보면 당시 세계에 만연하던, 특히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던 질병들도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값싼 치료약과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을 거라고 부건은 말했다.
인간은 때로 진보란 이름으로 무수히 많은 것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과니 혁신이니 발전이니 하면서 정당화하죠. 그러한 허명 때문에 사라져야 했던 수많은 생명들, 그리고 함께 사라지는 많은 추억들은 단지 뒤떨어진 구습일 뿐입니다.
그 결과가 참 아름답습니다. 지구상을 온통 파헤친 덕분에 이제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을 보듬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극지방은 녹아내려갈 것이며 몰디브는 잠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재앙을 피할 순 없을 것입니다.
《싱커》는 미래 사회의 빛과 어둠을 그리며,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합니다. 아울러 자유와 민주주의의 소중함,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스스로의 의지’를 말합니다. 바른 말을 해야 할 때, 더더욱 주눅 들어야 하는 지금의 우리들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누구와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든든한 일입니다. 하지만 자칫 그 집단이 위험한 방향으로 치닫는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집단을 경계하되 그 집단의 올바른 전진을 위해 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 집단 역시 개개인의 모음뿐이니까요.
조금은 느슨한 이야기 전개와 다소 빤히 보이는 결말 등이 읽은 재미를 아주 조금 떨어뜨리기도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고,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합니다.
아울러 지식은 단지 이해로 그칠 수 없다는 소중한 이야기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