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다 케이스케 지음, 고정아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엄청난 추위가 성탄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럴 땐 정말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러지 못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하고요. 성탄이 모든 이에게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소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뭐 그래봤자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나름 이것저것 잡식으로 책을 읽는 제가 최근엔 이상하게 소설에만 손이 가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일까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세상 때문일까요.

 

《달려라》의 작가는 처음 만나는 이였습니다. 그의 전작들을 읽어보지 못했다는 뜻이죠. 때문에 이 책 한 권으로 그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이릅니다. 하지만 이 책 하나만 두고 보자면 그는 무척 꼼꼼하고 뛰어난 관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일탈을 꿈꿉니다. 그 일탈의 끝은 각자 다르겠지만, 판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한 번 쯤은 과감한 ‘궤도이탈’을 상상하죠. 특히 현대와 같은 그야말로 숨 막히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더욱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 일탈이 고의든 아니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면, 아쉽지만 비난받게 됩니다. 물론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동을 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사회는 치밀하게, 어떠한 것이라도 일탈 그 자체가 타인에게 일정한 피해가 가도록 꾸며놓았습니다. 사실 그리 큰 피해가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죠.

 

주인공은 예전에 선물 받았지만, 잊고 처박아 두었던 경주용 자전거 ‘비앙키’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무엇에 홀린 듯, 다시 꼼꼼히 닦고 조립하죠. 그리곤 떠납니다. 아무런 목표도 없이 말이죠. 다시 같은 길을 달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합니다.

 

그의 신분은 고등학생입니다. 이제 한 해가 지나면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합니다.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가 있지만, 아직 섹스는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동창회에서 만난 초등학교 친구가 자꾸 맘에 걸립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다시 만난 그녀는 몰라보게 예뻐졌습니다. 지금 사귀는 여자 친구도 예쁘지만, 이유 없이 주인공은 옛 동창에게 맘이 끌립니다.

 

그는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간 마다 문자를 보내고 답을 받습니다. 그리곤 다시 휴대폰을 끄고 달립니다. 점점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연장되고,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빼먹게 됩니다. 처음엔 불안했던, 또한 묘한 스릴을 느꼈던 결석도 차츰 이어지자 덤덤해지고 그는 그냥 달립니다. 그리고는 느낍니다. 자신이 살아온 반경이 얼마나 좁았었는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 말이죠.

 

책을 읽고 있으면 일본 도쿄부터 혼슈 지방 최북단까지 달리는 자전거 한 대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 지방마다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우리 땅을 이렇게 자전거로 달리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기도 합니다. 물론 무척 조심해야겠죠. 우리나라 사람들의 운전 솜씨를 알기 때문입니다.

 

매우 꼼꼼하게 여정을 그리고 있는 저자는 분명 이 소설에 나온 코스대로 달려본 듯합니 다. 그리고 각 지방의 특색과 기후 변화 등을 세심하게 관찰했을 것입니다. 경험에 의하지 않고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문장들. 그 성실함이 돋보입니다.

 

달리는 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의 본능일지 모릅니다. 물론 이제는 기계를 빌려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시대이지만, 그래도 자전거가 주는 매력은 여전합니다. 주말만 되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교외로 나갑니다. 그들의 힘찬 페들링을 보면 저도 그렇게 달리고 싶어지죠. 몸이 근질근질하면서 말이죠.

 

책은 청소년의 ‘질풍노도 시기’를 표현하고자 했을지 모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지는 나이, 무언가 불만에 가득하고, 표현하고 싶은 나이. 세상에 이유 없이 떠들고 싶은 나이 말이죠. 누구나 한 번 쯤 겪어본 그 시간. 당신은 어떤 경험을 했고, 어떤 일탈을 꿈꿨었나요.

 

지금도 일탈을 꿈꾸는 이들, 지금도 젊음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아련함과 왠지 모를 충동을 느끼게 할 작품입니다. 처음엔 생소한 일본 지명들의 나열로 다소 지루하다 느낄지 모르지만, 곧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인공과 함께 달리고 있는 자신을 말이죠.

 

아, 주인공의 러브 라인이 어떻게 결말지어지는지도 흥미롭습니다. 약간의 반전, 기대해도 좋습니다.

 

나는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의 페달 회전이 쌓이고 거듭되어 100킬로, 1000킬로로 이어졌을 뿐이다. 음식물이 연료가 되어 몸을 움직인다. 그 단순한 공식은 달려 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이라는 하루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해가 떠오는 것이 너무 느려 ‘오늘’이라는 쐐기를 언제 박아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아침부터 세상의 흐름에 거슬러 반대로 움직인다니, 매우 자극적이었다.

“괜찮아아아~? 어? 괜찮아!”

 

※ 아, 눈에 거슬렸던 표현들, 먼저 동해를 ‘일본해’로 쓴 것. 그것은 작가가 일본인이니 이해한다고 쳐도, 북한을 이용해 이상한 비유를 한 것은 좀 그랬습니다. 이를테면, “북한 병사들은 총을 맞아도 달린다고.”와 같은 말. 정말, 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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