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바다로 간 아침
이치카와 다쿠지 지음, 홍성민 옮김 / 현문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치카와 다쿠치란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물론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통해서였다. 먼저 소설을 읽고 그 다음 영화를 봤는데, 그야말로 창피하게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던 기억이 난다. 아주 창피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다웠고, 슬펐고, 그랬다.

 

그 후 작가의 책을 몇 편 더 읽은 것 같다. SF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전혀 황당하지 않고, 오히려 남자 주인공의 어리바리한 모습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와 닮은 부분도 적지 않았기 때문일까. 사실 나 역시 어리바리한 것으로 치면 그의 작품에 등장할 만하다.

 

이번 작품은 가족의 소중함, 부모의 사랑이 주요한 테마이다. 격정적으로 감동적이거나, 눈물을 쏟을 만큼 애절한 것은 아니지만, 잔잔한 감동은 ‘역시 이치카와’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일본은 우리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한 동네다. 살벌하기도 하고, 때문에 경제로만 치면 언제나 세계 최고의 위치에 서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항상 일본을 의식하고 또 이기려 안간힘을 쓴다. 하다못해 스포츠를 통해서라도 말이다.

 

물론 이는 과거 식민지 경험에 대한 아픈 트라우마가 온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본의 놀라운 경제성장과 경제력이 부럽기도 해서일 것이다. 가깝지만 먼 나라라는 수식어는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일본이란 거대한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리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철저한 경쟁사회, 잔혹한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야 우리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적어도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 상처, 트라우마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들이라고 왜 아픔과 상처와 두려움이 없을 것인가. 어쩌면 우리보다 더 치열한 삶을 버텨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기엔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지만, 사실 그들 역시 커다란 상실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작가의 책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다소 황당한 스토리, 말도 안 되는 SF적 요소가 전혀 이상하지 않고, 언제나 따뜻함과 배려, 사랑이 담겨져 있는 그의 작품은 많은 일본인들을 위로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따뜻한 위로가 우리에게도 전달되었고 말이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끝없는, 대책 없는, 무한대의 사랑. 대단한 것이 아닐지라도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부모. 그들은 그렇게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고, 그러다 떠나간다. 국경을 초월한 부모의 사랑은 읽는 이들을 잔잔하게 적신다.

 

아빠는 대단한 인간은 아냐, 하지만 가슴을 펴고 모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애가 내 아들입니다. 아주 착한 아이죠. 상냥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입니다. 이름은 히로미라고 합니다. 큰 바다, 라는 뜻이죠. 내가 지었습니다. 나와 아내가 아이를 길렀습니다. 내가 이 손으로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습니다.”하고.

그래, 고생한 보람이 있다, 하는 기분이 든다. 네가 우리 아들로 태어나 주었다는 사실이 너무 고맙구나.

 

남들과 다른 그 무엇인가를 가지고 태어난 아들. 그런 아들이 험한 세상 속에서 당당히 일어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가족의 사랑. 아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들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사랑. 아직 부모라는 위치에 오르지 못한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의 부모가 전해준 사랑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분에 넘치는 사랑’을 이제 나도 내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그 사랑이 온갖 화려한 재물과 명성과 권력이 아니라 하더라도 충분히 소중하고 가치로운 것임을 믿기에, 힘을 내고 용기를 얻을 것이다.

 

곁에 있어 깜빡 잊기도 하는 가족의 사랑.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살짝 일깨워주는 책이다. 고맙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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