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수송차를 털어라
이안 레비전 지음, 이경식 옮김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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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많은 상상들이 우리 삶을 채우고 있구나, 라고 미치는 생각했다. 온갖 헛소리들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을까? 오늘밤 우린 거기서 저녁을 먹을 거야. 그럼, 당연히 거기에서 먹어야지. 정말 죽일 거야, 안 그래? 그럼! 집사를 시켜서 일곱 자리 예약해 둘 걸 그랬나? 그건 모두 동일한 세뇌 과정의 한 부분이었다. 미치는 언젠가 집을 살 수 있도록 신용 점수 관리를 잘하려고 결제 날짜를 정확하게 지키는 일에 집착했고, 케빈은 자기 동네에서 가장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을 하자는 제안을 했다. 하지만 셋은 이제 다들 이 짓거리에 싫증이 났다.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에 똥 냄새가 날 정도로 물렸다. 세 사람의 미래는 간단했다. 일을 하지 않으면 굶는 것, 그게 미래였다. 그리고 일거리를 얻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펜실베니아의 몰락해 가는 탄광도시 윌튼, 그곳에서 살아가는 ‘미래 없는’청춘 세 명. 이들에겐 마리화나가 유일한 삶의 낙이며, 몰락해 가는 고향처럼 스스로 가라앉고 있음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오랜 친구 사이인 이들은 지긋지긋한 가난과, 사는 듯 죽은 듯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에 염증을 느낀다. 그리곤 계획한다.

 

“현금수송차를 터는 거야!”

 

자본주의의 종주국,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나라 미국. 하지만 그곳의 국민들은 정말 모두 행복할까. 그들은 아무런 걱정 없이 오늘도 정원에 나가 잔디에 물을 주며, 아름다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고 있을까.

 

답은 이미 모두들 알고 계시리라. 턱에 턱도 없는 소리다. 남한 국민의 수만큼 많은 이들이 하루 벌어 하루를 연명하고, 수백만의 노숙자들이 길거리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그리곤 죽어간다. 살벌한 호러 영화 〈식코〉를 보신 분들은 더욱 더 잘 아시겠지만, 가난한 이들은 아파도 단지 ‘죽을 수 있는’ 권리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극소수의 ‘잘 사는’ 이들만이 행복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미국이다. 물론 이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러한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돈이 없다면? 권력이 없다면? 정말 살아가기 힘든 정글이 바로 우리 사회이지 않은가.

 

글쎄, 모르겠다.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에 부풀어 미국을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을지, 혹은 미국의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이는 이들이 있을지. 있다면 어쩌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현실을 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잔인하기 때문이다.

 

책은 키득거리게 만든다. 웃기다는 소리다. 또한 번역하신 분의 과감한 결단으로 미국 하층민들이 사용하는 욕설을 그대로 ‘우리 식’에 맞게 옮겼다. 약간은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더욱 사실적으로 주인공들의 삶이 다가옴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에 “웃기지마!”와 “좆까지마!”가 같은 느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최근 대형마트에서 싼 값에 판매하는 피자 때문에, 동네 피자 가게들이 줄줄이 망해간다고 하는데, 아무튼 대형 마트에서 몰래 마리화나를 피워가며 근무하던 미치는 정말 멍청한 상사를 한바탕 골려준 대가로 해고당한다. 마리화나를 집에서 아름답게(!) 재배해 팔다 걸려 감옥에 다녀온 케빈은 동네 개들을 산책시키는 새로운 직업에 종사한다. 그리고 더그는 자신이 일하는 식당이 망해 한순간에 실업자가 되지만, 여전히 ‘헬기 조종사 겸 아동작가 겸 요리사’를 꿈꾼다.

 

지질이 궁상인 ‘찌질이’세 명은 대형 마트에서 판매하는 대형 TV를 성공적으로 훔친 후, 점차 자신들의 천재적인 범죄적 소질에 대한 무한대적인 자신감으로 절도의 대상을 높여간다. 그 대상은? 빨간 색 페라리에서, 현금수송차까지!

 

책은 많은 해외 언론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작품이라 한다. 자본주의의 냉혹한 현실과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쳤다는 것.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변두리 인생들의 이야기를 능청스럽고 따뜻하게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변두리 인생은 도대체 뭐냐? 어떤 몹쓸 인간이 이딴 단어를 만들어냈냐. 넌 중심지 인물이냐!

 

책은 정말 매력적이다. 우선 재미가 넉넉하고, 재치가 있으며, 가끔씩 빵 터지는 유머도 쏠쏠하다. 하지만 결코 얕지 않다. 책을 덮은 후 안도의 한숨(헤피엔딩에 대한)과 더불어 슬그머니 감동이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과연 어떤 법칙에 의해 이처럼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지 궁금하기만 하지만, 여전히 정신없는, 때문에 궁금증을 풀만한 시간조차 없는 삶이 애처롭다.

 

그야말로 G20 때문에 전국이 난리법석이다. 서울은 무슨 대테러 경계령이 내린 것 마냥 살벌하다. 감히 그깟 G20이 뭐 길래, 이 난리일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어쩌면 정부나 대통령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별것 아니란 걸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윽박지른다. “대단한, 어마어마한 행사라고! 그러니까 조용히 닥치고 있고! 간혹 외국인 지나가면 미친놈 마냥 그냥 웃어주라고!”

 

과연 G20이 끝나면 정부는 무엇을 내밀어 또 다시 국민들을 주눅 들게 할까? 설마 중국 아시안게임? G20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다는 이익, 즉 국익을 정확히 국민 1인당 얼마씩 떨어질 수 있도록 계산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이익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통계청은 알고 있을까? 청와대는?

 

이 모든 거대한 삽질과 헤프닝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돈 때문이다! 우리 국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등등은 다 헛소리일 뿐이며, 결국 돈이 된다는 그 한마디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그 한마디에 국민들은 ‘그런가 보다’하고 참는다. 세계의 달랑 20개 나라의 대표들이 모여, ‘감히’ 건방지게 지구의 살림살이와 미래를 전망한다는 턱없이 오만한 자리에 방석을 깔아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 새 없이, 그저 돈이 된다면 끄덕 거리게 하는 힘.

 

이것이 바로 미치도록 타락해버린 자본주의의 현실인 것이다. 책은 왜 미국 백수 세 명이 다음처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더욱 슬프다. 우리의 현실과 미래가.

 

“커트 코베인은 마약중독자였잖아. 부자로 살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다 마약중독자야. 제니스 조플린, 헨드릭스, 짐 모리슨……. 마약중독자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어. 왜냐하면 그들은 언제든 마약을 왕창 살 수 있거든. 그래서 현실을 회피하고 황홀경의 세계에서 노닐잖아. 그래서 부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보고 이렇게 말하는 거야. ‘돈으로는 행복을 살 수 없어, 이 쪼다 같은 새끼들아. 커트 코베인이 어떻게 됐는지 봤지? 그러니 돈을 더 벌어보겠다고 아등바등하지 마. 돈은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이 개새끼들은 우리한테 돈을 더 주지 않으려는 핑계로 그런 개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는 자기들이 다 가지잖아. 그리고 버뮤다의 해변에서 낄낄거리며 즐기고……. 좆 까는 소리 말라고 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면, 왜 그 개새끼들은 총을 든 경비원을 시켜서 돈을 지키게 하겠어?”

 

“누구나 돈만 있으며 행복을 살 수 있어. 좆도, 내기를 해도 이길 자신 있어. 돈이 있으면 정신적인 평화가 찾아와. 왜 그런지 알아? 돈이 있으면 걱정할 일이 없어지거든. 걱정이 없으면 그게 행복이지 뭐야.”

 

세 명의 찌질이들의 유쾌한 반란.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혹하다. 하긴 그래서 책이 더 웃기고, 슬픈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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