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존 론슨 지음, 정미나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리고 전쟁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참담한 학살이 한창이던 2004년 4월. 세계는 몇 장의 사진으로 그야말로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무엇이었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바그다드 외곽에 있던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의 이라크 포로들 사진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뭐 사진을 봐서 아시겠죠. 21세의 미군 보충병인 린디 잉글랜드 일병의 모습이었습니다. 벌거벗은 이라크 남자들을 줄에 매어 마치 개처럼 질질 끌고 다니는 사진, 담배를 입에 문 채 미소를 띠우며, 이라크 남성들의 성기를 가리키는 모습. 인간 피라미드를 만든 것도 있었고, 철제 프레임에 묶은 남성의 머리 위에 여성 팬티를 걸친 사진도 있었습니다. 아마 그녀의 속옷이었겠죠.

 

이 사건은 당시 모든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고, 미국은 서둘러 이를 덮으려 애를 썼습니다. 수용소 앞에는 “미국은 모든 이라크 국민의 친구입니다”라는 표지판을 달았습니다. 린디 일병을 비롯한 극소수의 병사들이 자신들의 성적 환상을 만족시키기 위해 벌인 ‘특별한 사건’으로 몰아갔죠.

 

린디 일병은 웨스트버지니아 주 오지의 가난한 마을 출신이었습니다. 체포될 당시 그녀는 임신 5개월이었고, 포트 브래그 기지에서 내근직을 수행하고 있었죠. 그녀는 이 사진으로 인해 결국 포로 학대 및 음란행위 죄목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과연 이 포로 학대 사건이 린디 일병을 비롯한 몇몇 변태적 취향을 가진 병사들의 해프닝에 불과했을까요? 린디는 훗날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모습으로 찍고 싶어서 찍은 게 아닙니다. …그 끈을 잡고 카메라를 보라는 상관들의 지시를 따른 겁니다. 제가 아는 거라곤, 그들이 심리전 부대의 목적을 위해 그 사진을 찍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시키는 대로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미소를 지으며 알몸의 이라크인 무더기 뒤에 서 있었을 뿐입니다.…(명령한 사람들은) 지휘계통상의 상관들입니다. …그들은 심리전 차원에서 그렇게 했고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와서 그 사진들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오, 좋은 책략이니 계속 하게. 효과가 있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어.’”

 

책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그야말로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기괴한 이야기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 우리는 가끔 세상이 마냥 아름답다고만 믿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이런 사건들이 그 희망을 여지없이 무너뜨리죠.

 

저는 미스터리물을 무척 좋아합니다. ‘X-Files’이나 ‘수퍼네츄럴’처럼 외계인, 심령의 세계 등 초현실적 이야기들에 열광하죠. 그런데 미국인들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전쟁에 이러한 것들을 적용시키려 했으니까요.

 

단지 노려보는 것만으로 불쌍한 염소를 죽게 만들고, 벽을 통과하고, 자신의 모습을 투명인간처럼 숨기기, 구름을 터뜨리기, 음악 또는 음파로 상대방의 마음을 조종하기 등. 솔직히 정상인이라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을 현실에 옮기기 위해 만들어진 특수부대가 있다면? 그리고 그 부대가 실전에 투입되었다면? 참 기가 막힌 일입니다.

 

전쟁이란 어차피 ‘미치지 않고서는’할 수 없는 짓입니다. 죽임을 당하는 이들이야 말 할 것도 없고, 죽이는 이들도 극심한 상처를 입게 됩니다. 왜 내가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아야 하는지, 사실 그 어떤 권력도, 정부도 정당하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승리를 위해서라고 한다면 당신은 수긍할 수 있습니까

 

단지 미국이 비정상적인 미치광이 전쟁국가이기 때문이라고 단정짓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어쩌면 인간들 특유의 본능일지도 모르지요. 어떠한 기발한 발상을 동원해서라도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마음. 상대방을 그야말로 하찮게 여기는 오만함. 생명에 대한 경시, 선별적 사랑 그리고 자신 혹은 아군에 대한 절대적 신뢰. 우리는 어느 새 인간 최후의 비참함을 목격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음모론은 지구상 어느 국가에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남한도 역시 그런 것들이 있겠죠. 사람들은 자신이 범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혹은 절대권력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희한한 일들을 몽상하고, 열광하며 밝히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죠.

 

책은 음모론이 판치는 소설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사실임을 명확히 밝히고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이 소름끼치고 미친 짓거리들이 엄연한 사실이라는 것에 또 한 번 경악하게 됩니다. 블랙코미디라고 하기엔, 웃음조차 어색한 이야기들.

 

무슨 무슨 프로젝트, 무슨 무슨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또 지구상 어디에선가 기괴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인간이 어디까지 사악해 질 수 있고, 또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한계는 없어 보이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사람에게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외수 선생님은 나만 아는 인간, 즉 ‘나뿐’인간이 결국 제일 ‘나쁜’인간이라 말합니다. 나만이 아니라 타인도 생각할 수 있는 이들이 세상에 더욱 많아져야 한다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흥미 있는 내용에 재치 넘치는 문장이 돋보였지만, 내용은 사실, 결코 웃을 수만은 없었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그 동네에 사는 이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정말 미국이 잘 안 되었으면 합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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