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 - 전 노동당 고위간부가 겪은 건국 비화 박병엽 증언록 1
박병엽 구술, 유영구.정창현 엮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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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북은 제3차 당대표자회를 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김정은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의 후계 문제를 매듭지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의 관심 대상이었던 “3대 세습 문제”가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대체적인 반응은 부정적이다. 때가 어느 때인데, 3대 세습이라는 봉건적 권력 세습을 할 수 있냐는 것이고, 이는 기존에 가지고 있는 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커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일단 보통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북의 권력 승계 문제 역시 단순히 액면만 바라보고, 현상만 바라보고 평가할 수 없다. 아니, 평가는 그렇다 쳐도 단정 짓고 매도할 수 없다.

 

문제는 북에 대해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들이 무엇이었나 하는 점이다. 또한 남쪽의 국가 권력이 북이라는 국가를 그동안 어떻게 포장해왔고, 왜곡해 왔고, 이용해 왔는지 인식하는 것이다.

 

얼마 전 이 책을 들고 택시를 탄 적이 있다. 기사님이 책을 흘깃 보시더니 무슨 책이냐고 물으셨다. 북의 역사에 대한 책이라 답하니, 이렇게 대꾸하신다.

“아, 북에도 역사라는 게 있긴 하네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게 현실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을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관계를 망친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열을 올렸던 그 기사님도 북의 역사에 대해서는 관심도, 인식도, 느낌도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이 너무도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북의 역사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는다. 권력에 순응하고 이른 바 ‘시스템’에 순응할 인적 ‘자원’을 생산해내는 공교육에서 여전히 ‘적’인 북에 대한 공평한 평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적어도 아직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을 진심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통일의 파트너가 될 북과 화해와 평화의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공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제대로’만든 책과 ‘제대로’생각하는 사람들을 만나야한다. 물론 분단을 이용해, 또는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이용해 구차한 생명을 이어가는 기생충과 같은 이들이 떠드는 것도, 그런 언론이, 권력이 떠드는 것도 유심히 봐야 한다. ‘균형 잡힌 시각’ 같은 헛소리를 위함이 아니라, 그런 세력, 인물, 권력이 더 이상 분단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총 3권으로 이어질 시리즈의 1권인 책은 해방 이후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성립되는 때까지의 역사를 담고 있다. 기존 북 역사서들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과 애매모호함을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희귀한 사진자료들이 매우 많이 삽입되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구술한 박병엽은 북 정권 수립 과정에 참여했던 북 고위 간부로, 훗날 서울에서 사망하게 된다. 그가 겪은 북 정권 수립과정을 통해 우리는 북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조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북을 전공하고, 통일 문제에 천착하고, 또 그 일로 먹고 사는 나로서는 너무도 귀하고 중요한 책이 아닐 수 없다. 아울러 엮은이들이 모두 훌륭한, 그리고 개인적 친분이 있다고 해도 될 만한 분들이기에, 책에 대한 신뢰가 간다. 적어도 개인적 이익을 위해 왜곡과 선동을 일삼는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분들이다.

 

역사서들이 대부분 그렇듯, 수많은 인물들, 사건들 속에 자칫 따분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북 역사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들이라면 그 새로움 만으로도 따분함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왜 우리는 그동안 북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았을까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단언하건대, 우리 국민들은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만큼 어리석기도 하다. 하지만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북의 내부 문제’이니 우리가 비판하거나, 개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만큼 현명하기도 한 국민들이다. 이는 설문조사 결과를 말하는 것이다.

 

이제 젊은 김정은이 새로운 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더욱 획기적인 변화나 남북관계의 진전을 기대할 수도 있다. 물론 현 정권에서, 현 통일부의 만행과 어리석음에서 크게 기대할 것은 없을 것 같지만 말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나열이 아니다. 승자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패자의 저항도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민중들의 삶이 녹아있다. 그게 진정 역사다. 북의 역사를 다시, 혹은 처음으로 진중히 살펴보길 권한다. 그렇다면 현재 보이는 모든 남북관계가 단순히 ‘미친 국가’ 북의 ‘깽판’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북을 전공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한 엮은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쓰잘머리 없는 책 읽느라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정말’제대로 된 역사서를 읽어보시라 권하고 싶다.

 

한편 이 책이 ‘역사의 기록’이라는 과거의 측면 못지않게 현대적 의미와 미래가치가 있음을 지적하고 싶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탄생과정에 관한 해명은 이북 정권의 ‘존재근거’와 ‘정당화’, 특히 그들의 대남·통일정책의 이해와 직결된다.

북측은 해방 3년의 기간에 통일정부의 수립과 민족통일전선의 형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으며, 이 책에는 그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때문에 남북 간이 당국회담에 참석하는 정부 당국자들은 물론이고 남북관계의 일선에서 활동하는 여러 분야의 민간교류 인사들, 그리고 시민·통일운동가들에게 이 책은 적지 않은 시사점과 지혜를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제발 축구나 뭐 할 때 “대한민국:북한”이라는 찌질이 같은 표기는 하지 말자. 세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존재하지만, ‘북한’이란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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