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베이터 오세훈의 조용한 혁명
김미라 지음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지난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 노회찬 대표는 억울한 비난을 받아야 했다. 이는 노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했다면 오세훈 대신 한명숙 전 총리가 새로운 서울시장이 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묻어난 비난이었다.

 

물론 옳지 않은 비난이었고, 뒤바뀐 분석이었다. 하지만 노 대표를 그 정도로 비난한 것은 그만큼, 한명숙 전 총리의 승리를 사람들이 바라고 있었다는 뜻도 된다. 그럼? 그렇다. 오세훈 시장을 원치 않았다는 소리다.

 

내가 이 책을 얻게 된 것은 지방 선거를 앞둔 얼마 전이었다. 당시 이름 좀 있다는 정치인들이 너도 나도, 혹은 누구세요? 묻고 싶은 이들도 너도나도 자서전 비스무리한 것들을 마구 펴내고 있던 시절이었다. 충분히 예상했다. 오세훈 시장의 자랑이 듬뿍 담긴 책이 나올 것임을. 그리고? 나왔다.

 

뒷 표지에 추천사 비슷한 글들에서 먼저 기분이 상했다. 하나 같이 우울한 인간들이 오세훈 시장의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그리고 박경림. 박경림에겐 그리 유감이 없었지만, 솔직히 실망했다. 자신이 너무 머리가 좋다고 과신하는 것도 그리 보기 좋은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 난 오세훈 시장에게 이미 실망한 사람 중 하나였다. 자신은 아니라고 우악스럽게 우기겠지만, 그는 이명박 전 시장의 길을 그대로 가고 있다. 청계천 대신 광화문 광장을 만들고, 거기서 스노우보드 대회를 열만큼 개념 상실이다. 서울광장을 굳게 사수하라는 정부의 말에 덤비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쓸데없이 막대한 세금을 퍼부었다. 겉만 번지르르하면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근시안적 태도도 실망이다. 보여주기를 싫어한다는데 내가 보기엔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오해였으면 좋겠다.

 

책을 쓴 저자는 물론 서울시에서 얼마간 일도 했으니, 시정에 대해 잘 알 수도 있겠지만, 시정백서를 거의 그대로 옮긴 듯한 문장들이 의외로 많았다. 일방적인 서울시 홍보, 오세훈 치적에 대한 용비어천가다. 솔직히 조금 역겹다 싶을 정도로 찬사를 늘어놓는다. 하긴 책을 만든 목적이 그러니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런데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서민을 생각하고 환경을 중요시 하며, 서울시의 미래를 위해 당장 티가 안 나는 일을 묵묵히 추진한다는 것. 글쎄, 아이들 급식비를 땡겨다 서울시의 겉모습 치장하는데 쏟는 것이 정말 서울시의 먼 미래를 보고 하는 행동인지는 모르겠다.

 

일단 저자는 생각이 글러먹었다. 문장 곳곳에 잘못된 역사인식과 쏠림 현상이 보인다. 일부러 김대중 대통령의 이야기를 인용하고, 이명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난하는 글들을 실어 ‘꼴통 보수’와의 차별성을 보여주려 했지만, 그게 어쩌면 더 치사하고 보기 싫다.

 

“전임 이명박 시장이 역사적인 청계천 복원사업을 통해 유력한 대선주자로 비상하면서 이른바 ‘청계천 신드롬’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려 있던 그 때,…”

 

“‘경쟁이 경쟁력이다’는 단순한 모토 아래 메스를 들었다. …새로운 인사 시스템을 시행한다는 말에 동요하는 직원들에게 그는 프리미어 리그의 예를 들며 우리 모두 프리미어 리거가 되자고 이해를 구했다. 오늘날 프리미어 리그의 경쟁력과 명성이 바로 ‘UP&DOWN’방식의 철저한 경쟁체제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오 시장의 입장에선 주택 정책이야말로 시민들의 재산권, 삶의 질과 직결된 중대 사안으로, 결코 유마무야 넘길 수 없는 것이었다.”

 

“시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원칙에 반대할 공무원이나 시민단체, 언론은 없을 것이고, 이제부터는 인내를 가지고 설득해 상호 합의를 이끌어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도시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하는 시대인 만큼 그것은 국가 전체의 미래를 좌우하는 일이기도 했다”

 

“미국의 저명한 국무장관으로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헨리 키신저는…”

 

“Design or Resign!(디자인하든지 아니면 사임하라)”

이것은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가 1979년 첫 번째 각료회의에서 했던 말이다. ‘고질적인 노동자 파업과 영국병을 고친 정치인’이라는 평가부터 그녀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지향점에 따라 다양하지만, 이미 30년 전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본 그녀의 혜안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내 생각을 말하자. 청계천 복원사업은 역사적이긴 하다.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대형 인공천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물을 가둬놓고, 그게 친 환경적이라고 떠드는, 전 세계가 조롱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분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경쟁이 경쟁력이라는 말은, 결국 시정이나 정치도 축구처럼 당장 성과가 나지 않으면 2군으로 떨어지고, 실력이 있는 놈들만 1부로 올라가는 시장주의에 입각해서 하자는 말이다.

 

시민들의 재산권, 삶의 질과 직결된 중대 사안으로 결코 유야무야 넘길 수 없는 것이 주택 정책이었기에 그는 용산에서 그 많은 철거민들이 타 죽어갈 때 침묵했을까. 시민의 입장에서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한다는 원칙은 도대체 어디에 갔을까. 서울을 겉만 번지르르한 빈 깡통으로 만드는 것에 시민들이 동의했을까. 아이들이 밥을 굶고, 집값으로 선거가 뒤바뀌는 현실은 오세훈 시장에겐 ‘다른 나라 일’일까.

 

왜 도시의 경쟁력만이 국가 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할까. 온 국토를 도시로 만들면,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가 될까. 쓸 때 없는 터치스크린을 돈 처발라 버스 정류장, 지하철 곳곳에 설치하면 우리나라가 디자인 대빵 멋있는 도시가 될까.

 

헨리 키신저가 얼마나 많은 국제분쟁에 개입했으며, 베트남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끼친 해악에 대해서 저자는 정말 모를까. 그가 국제 전범 수준이라는 사실도 모를까. 뭔가~!

그리고 하필 비유할 사람이 없어서 영국을 망국의 지름길로 인도한 대처 수상, 냉전의 전성 시대를 열어 수많은 이들을 고통으로 몰아간 대처 수상을 거론할까. 존경할 사람이 그리도 없을까.

 

앞서 말했다. 온전히 내 생각이라고. 동의하지 못한다 해도, 할 수 없다. 오세훈 시장은 조금 억울할지 모른다.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말이다. 거의 떨어진 것과 같은 결과라고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들은 오세훈 시장을 버렸다. 왜 그랬을까. 책만 보면 오 시장이 서울을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도시로 만들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단순하다. 그의 서민정책에 정작 서민은 없었기 때문이다. 종로 거리에 노점상을 쓸어버려서, 서울시가 깨끗해 질 수는 있어도 서민들의 삶이 깨끗해 질 수는 없다. 조금 지저분해 보여도, 왁자지껄 시끌벅적해도 사람들이 살아 숨 쉬는 도시가 더 낫지 않을까. 그가 장기주택 시프트를 만들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어도, 용산 참사의 가족들은 죽을 때까지 그를 기억할 것이다.

 

겉모습을 아름답게 꾸민다고 도시가 진정으로 아름다워 지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이 행복해야 비로소 도시는 살아있는 것이다. 뉴욕, 런던이 아름다운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 중 과연 얼마나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까. 도쿄는? 자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 등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나라들의 국민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형편없이 낙후됐다는 이유로 그들은 불행한가? 서울시가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품인가?



오세훈 시장이 역점을 두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 분명 개선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하지만, 책의 내용처럼 그가 위대하지는 않다.(물론 위대하다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이번 선거 결과에서 알 수 있듯 오직 강남의 시장이었을 뿐이다. 서울강남특별구청장인 것이다.

 

아주 어렸을 적, 천금성인가 누군가 하는 작자가 쓴 전두환 용비어천가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읽고 어이가 없어 웃은 적이 있다. 글쓴 새끼는 광주의 학살에 대해 말하지 않았고, 군사쿠데타로 인한 불법적 정권 찬탈을 말하지 않았다. 그저 검소하고 애국적인 젊은 장군으로 전두환을 묘사했다.

 

저자에게 아주아주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조용한 혁명》을 통해 천금성이 떠올랐고, 황강과 북악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로 치장한다 해도, 국민들은, 시민들은 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진실성을 담고 있는지, 또 어느 정도 계산된 것인지.

 

오세훈 시장은 분명 대권에 도전할 것이다. 서울시장 다음 대권 도전.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아주 안 좋은 것들 중 하나다. 물론 그 전에도 서울시장을 거쳐 대권에 도전한 인간들이 많았지만, 이명박은 성공한 케이스 아닌가.

 

서울이 대한민국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 대한민국에 서울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며 일할 수 있는 서울시장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진정 서울시민을 위해 일한 서울시장도 아직 본 적 없다. 오세훈 시장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른 것일지 모른다. 그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추진한 정책들이 성과를 거두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바로 그 때문이다. 이 책이 낯간지럽고, 살짝 역겨운 이유가. 선거를 앞두고 그럭저럭 잘 만든 홍보용 책자이긴 하지만, 서민들에겐 절대, 특히 서울에 살고 있는 강남 3구를 제외한 모든 시민들에겐 절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오 시장 말대로 티 나지 않게 조용히 일하고 싶었다면, 이딴 책은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아무리 선거에서 질 것 같았어도 말이다. 그냥 자신의 든든한 강남 인간들을 믿지 그랬나.

 

가까운 지인일수록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때문에 저자는 오세훈 시장에게 그리 도움이 되는 사람 같지는 않다.

 

추천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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