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대통령 - 노무현, 서거와 추모의 기록 1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 한걸음더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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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모니터를 쳐다만 봤다. 마지막 페이지 그의 웃는 모습이 모니터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 시간은 흐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시간은 그렇게 쉴 새 없이 우리 곁을 지나간다. 그래서 더 서럽다.

 

시간은 고마운 존재다. 치가 떨리는 분노와 심장을 도려낼 것만 같은 고통도 어느 새 무뎌지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아닌 게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잊을 수 없는 고통과 분노도 반드시 존재한다. 그게 사실이다.

 

난 노빠였다. 처음엔 아닌 줄 알았지만, 결국 노빠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난 ‘배신한’ 노빠였다. 스스로 나의 배신은 먼저 배신당한 사람의 당연한 대응의 ‘배신’이라고 믿어왔다. 그리고 그렇게 난 노무현 대통령을 버렸다.

 

지난 해 5월 오랜만에 학교를 찾아가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6개월 정도의 백수생활을 거쳐 지금의 직장에 오기 직전이었다. 얼렁뚱땅 다시 일자리를 얻게 된 상황에서, 간만에 후배들을 만나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를 찾았다.

 

학교는 지방이다. 때문에 자주 찾아가기 힘들다. 하지만 난 왜 하필 그 때 학교를 찾았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후배들과 즐거운 술자리를 갖고 예전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렇게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숙취가 덜 풀린 상황에서 난 TV에서 나오는 속보에 그저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허망하게 그는 먼저 이별을 고했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예감했던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얼마나 여린 사람인지. 혼란스러웠다.

 

그 후 5월 그 시간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기억할 수 없다. 아니 기억하지 않으려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덕수궁 돌담길에서 흐느끼고 있었고, 영결식과 노제가 있던 29일까지 난 그곳을 서성거렸다. 눈물을 멈출 수 없었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고,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왜 그를 그렇게 몰아 붙였을까. 왜 그에게 시간을 조금만 더 주지 않았을까. 왜 그를 사랑한다고 인정하지 않았을까. 왜. 왜….

 

나에게 그렇게 5월은 다시 한 번 큰 구멍을 만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을 목 놓아 부르며 그렇게 난 서러웠다.

 

노무현, 그리고 참여정부. 허점투성이에 아마추어 정권이었다. 물론 그이는, 그리고 참여정부에서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은 섭섭해 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이었다. 평범한 국민들을 다시금 한마음으로 만들게 했던 그 힘을, 그들은 온전히 추스르지 못하고 허망하게 물러났다.

 

이라크에 파병을 결심했을 때, 한미FTA를 추진했을 때, 평범한 노동자, 바로 노무현과 참여정부를 지지했던 그 노동자가 길거리에서 전경의 방패에 찍혀 죽어나갈 때, 난 노무현을 버렸고, 참여정부를 버렸다. 또 다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살인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지만, 그 모든 과오를 생각해도 그는, 그리고 참여정부는 그렇게 참혹히 평가받아선 안됐다. 아쉽고, 때론 분통터지게 하는 모든 잘못들을 저질렀지만, 그래도 참여정부는 최선을 다해 자신들의 꿈을, 그리고 돈 많은 이보단 돈 없는 이들을, 힘있는 이들보단 힘없는 이들을 돌아보려 애썼다. 그것도 얼마큼의 진정성을 가지고 있었는가는 다시 평가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그들은 노력했다.

 

난 그것마저 인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나 혼자만의 분노로, 아집으로, 혹은 바람으로 난 어느 새 신문이라고 볼 수 없는, 언론이라고 볼 수 없는 쓰레기들의 말들을 주워 담고 있었다. 온갖 저주의 굿판이 벌어질 때에도 애써 눈을 감았다.

 

참여정부 말기, 이명박 세력이 무서워, 혹은 자신의 영달을 위해 보수의 편으로 돌아선 껍데기 진보들. 그가 곤경에 빠질 때 더욱 큰 저주를 퍼붓다가, 정작 그가 떠나자 한껏 영웅으로 치켜세우던 더러운 언론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오열에 대답할 수 없었던 비겁한 인간들.

 

내가 그 더러운 것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이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서러웠다. 그렇게 울었다.

 

세상은 썩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밥을 먹여주지 않고, 철저히 계산된 속임수와 음모만이 판친다. 집값이 오른다고, 재개발이 이뤄진다고, 혹은 자기 동네로 명문고가 이사 온다고, 사람들은 다시 한나라당을 찍을지 모른다. 1%를 위해 존재하는 세력에게 99%가 다시 지지를 보낼지 모른다. 그날의 그 울분과 서러움을 이미 잊었는지 모른다.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낀다. TV에선 다시 그때처럼 뭉치자고 호소한다. 다시 붉은 악마가 되자고 소리친다. 허무하다. 방송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을 수 없다고 누가 그랬나. 아니다. 이미 성공했다. 국민들은 그렇게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4대강이 얼마나 썩어가고 있는지, 관심 없다. 아이들의 점심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천안함은 아마도 증거는 없지만, 북한이 했을 것이다. 설마 미국이 했겠나. 중간선거는 코앞인데, 정작 월드컵이 우선인 나라. 이미 속았음에도, 다시 한 번 표를 주면 집값이 오른다고, 뉴타운을 만들어주겠다고 장담하는 이들을 믿고 싶다.

 

그렇게 시간은 갔다. 그리고 가고 있다. 온갖 더러운 짓거리를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이 나라의 운명을 쥐고 있는 모습. 그 밑에서 잘 살아보겠다고 굴종하고 있는 기생충들. 국민? 국민의 안위? 국민의 행복? 개소리마라. 더 더러운 노예, 더러운 노예, 자신이 노예인 줄 모르는 행복한 노예들만이 남은 곳. 그게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노무현을 그리워한다. 완벽하지 않았기에, 완벽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많고 눈물이 많고 실수가 많았던 그였기에 그리워한다. 난 그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을 기억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여해 미소를 지었던 이명박을 기억할 것이며,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해 헌화한 전두환을 기억할 것이다. 전두환은 김대중 대통령에 사형을 선고한 사람이며, 이명박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게 한 사람이다.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것이다. 무엇이 역사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떤 이가 정녕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려 했으며, 어떤 이가 더러운 입으로, 더러운 몸짓으로 이 땅의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선거 때 놀러 가시라. ‘정치 따위 관심도 없어’ 하고 사시라. 이놈 저놈 다 도둑놈이야 하며 그 도둑놈들에게 빼앗기며, 계속 그렇게 사시라. 공부 잘하는 게 최고다. 좋은 대학 가는 게 최고다. 일단 이기고 보는 게 최고다. 하시며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시라. 북한은 주적이다. 통일하자는 놈들은 다 빨갱이다 하시며 그렇게 사시라. 조선일보를 봐야 신문을 보는 것 같다고 하시며 그렇게 사시라. 미국은 영원히 우리의 큰 형님이다 하시며 6월이 오면 성조기를 들고 나가시라. 그렇게 사시라. 아름답고 우아하게, 지저분한 것들은 하나도 보지 말고 그렇게 사시라.

 

그리고 죽으시라.

 

너무나 순진했던, 그래서 더 서러웠던, 내 마음 속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한다. 다시는 이런 어리석은 땅에, 태어나지 마시라. 인동초와 함께 영원히 행복하시라.

 

하지만….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우릴 지켜봐 주길.

 

다시 오는 5월이 무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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