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 서경식 김상봉 대담
서경식, 김상봉 지음 / 돌베개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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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해마지 않는 서경식 선생, 그리고 ‘거리의 철학자’‘서로주체성의 철학자’김상봉 선생.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서로주체성의 공동체를 꿈꾸는 두 명의 지식인이 만났다. 2007년 5월 19일부터 2007년 8월 15일까지 아홉 차례 총 40시간의 대담을 엮었다. 이들의 만남을 주선한 출판사, 그리고 후배 학자들은 이들이 만남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조금 길지만 이 배경만으로 나는 벅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합니다. 독재자가 다시 나타나서도 아니고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도 아닙니다. 너 나 없이 민주주의에 시큰둥해지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느냐고 사람들은 냉소적으로 묻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게만 된다면 과거나 이념 따위야 아무러면 어떠냐고도 합니다. 이념의 시대는 갔고 역사라는 거대서사도 다 죽어버린 거 아니냐고 제법 배운 티를 내며 삐딱하게 나오기도 합니다. 민주주의, 역사, 이념, 정의 앞에 밥의 현실성을 내세우는 이런 말들을 듣고 돌아설 때, 우리 머리엔 ‘그럼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이 서로를 위해 흘린 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주머니들이 시민군들의 입에 넣어주던 주먹밥들은 다 어디로 간 거지?’라는 물음이 괴롭게 떠오릅니다.

 

먹고살기도 각박한 세상에 과거의 기억 따위를 들춰서 뭐하느냐고 쏘아붙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역사란 한류 드라마의 소재로 돈 벌이 콘텐츠나 되면 족한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고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할 때나 ‘독도 영유권’을 둘러싼 외교 분쟁이 벌어질 때가 아니고서는 역사가들이 진지하게 소환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렇게 소환된 역사가들 입에서 반듯한 소리를 듣기도 쉽지 않고요. 민족이니 역사니 다 철 지난 이야기라며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이럴 때는 ‘우리 역사를 지키자, 우리 땅을 지키자’며 독립투사라도 된 듯 흥분하기도 합니다. 다른 한 편에선 그런 흥분을 야유하기 바쁜 또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민족주의는 파시즘적 열광이고 몽매주의적 산화라는 거지요. 맞는 말이지만 한편에 드는 의구심을 지울 길이 없습니다.

 

‘민족도 없고 국가도 없고, 그런 식으로 사회도 가족도 연인도 차례로 지워버린다면 남는 것은 개인뿐인가? 그런 개인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가? 어떻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가? 그 혹은 그녀는 너무나 고독하지 않은가? 고독 끝에 병들지 않겠는가? 기댈 곳 없이 생존하기 위해 이기적이고 타산적이고 전략적으로만 행동하지 않겠는가? 그런 개인들로부터 어떻게 공동체, 즉 개인과 개인 사이의 호혜적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가? 서로에 대한 사랑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계약으로 충분한가? 서로를 못 믿는데 계약을 어찌 믿는가? 계약을 못 믿으니 그걸 강제할 법이 나오고, 또 그 법을 강제할 무력으로서의 국가기구가 등장하고, 그런 국가도 못 미더울 때 국적 없는 화폐인 국제금융자본에 의탁하게 되고, 실상 디지컬 숫자에 불과한 화폐를 실효적인 힘으로 만들려니 제국 같은 무력의 질서가 등장하게 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20세기의 개인주의와 국가주의, 21세기의 개인과 제국은 어떠한 갈등과 모순도 없이 공존하거나 공멸하는 관계가 아닐까? 기업과 자본이 국가와 이념의 장벽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그 자본을 쫓아다니는 노동과 상품이 전통과 민족과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뒤섞고 또 스스로도 그런 혼란의 일부가 되는 이 (신자유주의적으로) 지구화된 세계, 이 혼란스런 퓨전의 21세기는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세계와는 너무도 거리가 멀지 않은가? 그러한 부정적 사태들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생각도 없거나 그럴 능력이 없는 자들이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과도기적 마찰과 소음에 불과한가……?’이런 물음들에 그들은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못합니다.

 

신, 군주, 독재자, 아버지, 이데올로기, 민족, 국가 등 온갖 굴레들로부터 자신이 해방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자기와 다른 것, 자신을 넘어서는 것, 성스럽거나 공적인 것들을 끌어안고 서로 어울려 사는 법을 알지 못하기에 다시금 과거의 거짓 주인들을 환상으로라도 불러와 예속되고픈 유혹을 느끼는 이 위태로운 시대에 우리는 어디서 그런 배움을 찾아야 합니까? 구속 없는 결속, 속박 없는 소속, 자유로운 사랑…… 그런 역설적 관계가 어떻게 가능합니까? 해방된 자들의 공동체라는 게 있습니까? 그런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려면 우리는 누구여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여야 하는가? 우리는 누구일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왜 그런 물음들을 하필 서경식과 김상봉 두 분에게 꺼내놓는가? 그 두 사람이 모든 답을 알고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보다 그런 물음을 열렬히 또 괴로워하며 던져온 선생이고 선배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모르겠다. 내가 워낙 늦되는 녀석이라 그럴지도. 다른 이들은 예전에 이미 몇 차례 홍역을 치르며 나름대로의 해답을 구했는지도. 하지만 난 여전히, 아닌 나이를 먹을수록 위의 질문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여야만 하는가? 라는 화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왜 타인의 슬픔이 외면 받고, 무시 받고, 오히려 더욱 강요되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 미칠 지경이었다.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그 순간까지 결코 타인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결국 자신이 파멸의 길로 떨어져야 비로소 자신이 어떤 존재 였는가 느끼는 사람들. 무수히 많이 봐왔고, 보고 있다.

 

대담은 5·18에서 시작해 운명적인지 몰라도 8·15로 끝을 맺는다. 물론 이는 끝이 아니다. 두 지식인의 대화는 앞으로 내가 살아가야 할 길이 어때야만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고민, 경악과 슬픔을 전해줄 뿐이었다. 때문에 짧지 않은 분량의 책을 덮고 난 후의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그래서다. 이 책이 더할 수 없이 고맙고, 치열한 이유가. 순간 순간 삶의 비루함에 젖어 나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던 때, 모든 고통을 외면하고 타인의 아픔에 눈감고 결코 편할 수 없는 안락함에 사로잡혀 있을 때, 그 순간에 책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것도 말로 할 수 없는 큰 행운.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에 난 길과도 같다. 본래 땅 위에 길은 없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서경식 선생의 좌우명으로 루쉰의 《고향》에 나오는 글이다. 그는 희망이 있어서 걷는 것이 아니다. 걸을 수밖에 없으니 걷는 것이고, 걷다 보니 길이 생기는 것이다. 걸을 수 있는 동안에는 걸을 따름이다.

 

서경식 선생은 이미 여러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일조선 지식인이다. 그의 형 서승·서준식 형제의 간첩단 사건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두 형의 억울한 옥살이를 지켜봐야 했던 그. 그 와중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어야 했던 그에게 조국은 무엇이었을까. 악랄한 고문에 못 이겨 무고한 친구들의 이름을 댈까 두려워 온 몸에 석유를 붓고 뜨거운 난로를 껴안아 자살하고자 했던 형에 대해 서경식 선생은 무엇을 느꼈을까. 그에게 타인의 고통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타인의 눈물과 함께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김상봉 선생은 인간 서경식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분은 차별받는 재일조선인으로 태어나 자랐다. 생각하면 그것은 존재 그 자체가 고통인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성장한 뒤에는 무려 20년 동안을 형들의 옥바라지를 하면서 살아야만 했다. 그 사이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절망 속에서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것은 아직 서른 안팎이었던 막내아들에게는 너무도 힘겹고 절망스런 일이었겠지만, 아마도 그분은 그런 슬픔 속에서도 옥중에 있는 형들을 염려하느라 자기를 위해서는 제대로 울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깊은 절망 속에서도 그분은 이를 악물고 형들에게 자기는 아무 일이 없으니 옥중에서 건강 조심하라고 편지를 써야만 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내 앞에서 구부정하게 걸어가는 거구의 선생님을 뒤 따라가면서 바라볼 때면 그 오랜 세월 동안 안으로 삼킨 눈물로 그분의 몸이 퉁퉁 부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남의 슬픔이 자기의 슬픔이 되어버려, 자기의 슬픔과 남의 슬픔을 구별할 수 없게 되어버린 사람, 그리하여 자기의 슬픔 속에서 남의 슬픔을 보고 남의 슬픔 속에서 자기의 슬픔을 느끼는 것이 아예 성격으로 굳어져버린 사람, 그분이 바로 서 선생님인 것이다.”

 

책은 만남의 통한 슬픔의 공감, 타인을 통한 자신의 정체성 확인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두 사람 모두 타인을 통한 만남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서로의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배우고 느낀 것이 다르고, 언어의 소통이 불편했더라도 결국 대담을 이어갈 수 있었다. 외부의 시선에서 바라본 조선, 그리고 조선 내에서 바라본 조선, 일본,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 이는 결코 같을 수 없을 것 같은 두 이야기가 하나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책이 나에게 적지 않은 당혹감을 전해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시에 책은 오직 책이어서 가능한 커다란 기쁨과 공감을 선물했다. 이들의 만남이 단순히 두 지식인의 만남이 아니라 책을 읽는 모든 이들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대담의 이름으로 나오는 수많은 허접 쓰레기 중에서 이 책이 독보적이라 믿는 이유이다. 책은 공감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고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아닌 새로운 자각을 깨워야 한다. 단순히 시대 유감이나, 어설픈 지식의 향연, 독기를 품은 저주 따위가 페이지를 채워선 안 되는 것이다.

 

두 분의 폭넓은 교양과 지식(두 분은 지식보다 교양이 중요하다고 대담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들에게 교양은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닌 ‘실용적인 목표를 갖지 않는 앎이면서도 살아남기 위한 힘이 되어주는 앎’‘자기를 초월하여 타자의 자리에 자기를 놓을 줄 아는 능력, 곧 타자에 대한 상상력’으로 설명된다. 즉 참된 교양이란 ‘학문이나 예술에 대한 지식과 소양을 얼마나 축적했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삶의 기쁨과 슬픔을 얼마나 절실하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에 결코 범접할 수 없는 내 입장에서 책을 평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두 분의 만남 중 내 심장을 ‘바늘로 콕콕’찌른 문장을 옮긴다. 책에 등장하는 적지 않은 지식인, 예술가들이 타인의 고통으로 자신의 몸에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고통’을 느껴본 이들이었다. 진정한 교양인들이었다.

 

바깥에 대한 상상력은 그에게 현실의 모순, 존재조건의 모순을 겪어낼 수 있는 힘이자, 동시에 자기의 벽을 넘어 타자의 고통을 감지하고 개인의 벽을 넘어 인간으로서 보편적인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국민주의’란 자신이 ‘국민’으로서 향유하고 있는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자기중심적인 심성을 가리킨다.

 

함석헌 선생은 고구려 역사에 관해서 “오늘날 우리가 고구려 역사를 어떻게 대면하느냐에 따라 뜻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고 했어요. 저는 그것이 천재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뜻, 의미, 가치’라는 것이 단순히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당시의 개인이나 집단의 뜻에서 끝나지 않고 후대에 사람들이 그것에 어떻게 응답하느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것과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니까요.

 

‘나와 너’가 이곳에 서 있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절망적인 고통과 투쟁이 토양이 되어주었는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철학의 임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가 죽어 있어서 우리가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뜻이 결정된다는 일방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죠.

 

제가 5·18을 못 잊잖아요? 제 부모 세대는 6·25를 못 잊지요. 그렇게 보면 지금 대학생 정도의 세대들은 행복한 세대라고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 사건 없이 자랐고 국가의 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묘한 것이, 역사의 기억이란 게 그렇게 쉽게 희석되거나 휘발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은밀한 전승 방식을 갖는다고 할까요?

이를테면 한국 사회에 보이지 않는 큰 불안감이 있어요. ‘내가 한국 국민·시민이다, 국가가 있는 한 나는 인간 이하의 나락으로 쉽게 떨어지지는 않는다’라는 식의 믿음은 없고요. 국가는 여차 하면 나를 버리고 추방하고 박해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아마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더 클 겁니다. 개개인이 그런 체험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려워요. 국가기구라는 것이 존재이유가 없다거나, 또는 국가기구의 존재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식의 불안·불만 같은 것이 알게 모르게 우리 마음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러나 어느 순간 어떤 계기들과 만나면 그런 불안과 불만의 자리에서 다 잊은 줄 알았던 과거의 기억들이 불꽃처럼 확 일어납니다.

지금 이 나라의 권력이 대다수 국민들과 적대적인 관계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겉보기엔 회칠한 무덤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이 책이 쓰일 때는 2007년.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다른 듯.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끼는 국민들이 과연 지금 있을까.) 5·18이 일어나기 전에, 그러니까 박정희 정권 말기에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것만 같았어요. 유신헌법이 90% 이상의 지지로 통과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한순간에 5·18이 일어났잖아요.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의 한미FTA나 자본의 지배 같은 현상들을 보노라면 국가가 국민들에 대해 아무런 배려를 하지 않지요. 그저 잘사는 사람만 계속 잘살면 된다는 논리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영원할 것 같던 현재의 거짓 안온과 균형이 순식간에 뒤집힐 수도 있다고 봅니다.(김상봉 선생의 예언(?)은 촛불정국으로 현실화됐다)

 

저는 학자는 ‘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말이 아니라 함석헌 선생의 말입니다.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는 씨들을 위해 대신 울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고 학자라고 함석헌 선생은 말해요. 이광수와 최남선을 두고 한 말인데, 함석헌 선생은 그네들이 끝까지 울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슬픔이라는 것은 식민지배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유서처럼 남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남에게 박해받고 수난당하면서 자기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그 감수성을 어떻게 이어받을 수 있고, 지금 그것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제게 과제처럼 주어진 거죠. 만해와 윤동주가 다르지 않다고 봐요. 저는 그게 성찰이라고 느낍니다.

 

두 번째 생각은 자본주의가 고도화되면서 나타나는 자발적인 노예화 현상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고도성장기로 진입하면서 일본에서 나타난 상황과 많이 유사하다는 느낌이죠. 일본 지식인들은 ‘자발적 노예화’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제가 사사한 후지타 쇼조 선생님은 ‘안락전체주의’라고 말했습니다. 안락하게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고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런 전체주의가 1970년대에 진행되었다고 하셨어요. 한국에서는 일본의 그런 추세가 훨씬 더 급격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20~30년이 걸렸다면 이 나라에서는 5~10년 사이에 그런 변화가 일어난 듯합니다.

신자유주의적 전지구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앞질러 그런 추세를 밟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들 정도예요. 아주 어린 나이부터 컴퓨터를 배우고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과도한 열성을 보이고 있죠. 미국과 국제 자본에 대한 자발적인 노예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고, 그 배후에서 자라는 것이 그런 전지구화 속에서 살아남아 조금이라도 자기 지위를 상승시키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안락전체주의적’태도입니다.

 

오직 세상에 편재한 고통에 대한 경악과 절망에서 시작할 때에만 철학은 고통 받는 인간의 편에서 존재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참된 철학은 경탄이 아니라 경악에서 시작한다.

 

철학은 너의 슬픔 속에서 나의 슬픔을 보고, 끊임없이 이 슬픔과 저 슬픔을 만나게 함으로써 더 보편적인 슬픔의 바다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철학의 보편성이란 그것이 매개하는 슬픔의 보편성에 다른 아닌 것이다. 학문으로서의 철학이란 이처럼 인간의 슬픔을 서로 만나게 하는 정신의 활동을 통해 열리는 보편적 슬픔의 전형적 형상화이다. 그런 까닭에 철학적 정신은 철학자들이 남긴 책을 읽고 이해한다고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오직 타인의 슬픔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통해 한 사람의 정신 속에서 슬픔이 보편적인 형식을 얻을 때, 그런 정신이야말로 철학적인 것이다.

 

고통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모든 고통이 영혼을 정화시켜주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많은 사람들에게서 고통은 영혼을 부패시킨다. 고생이 인간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오직 자기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과 매개될 때, 그때 고통은 우리를 넓고 깊게 한다. 한 사람의 정신이 자기의 아픔 속에서 타인의 아픔을 발견하고 타인의 슬픔 속에서 자기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때에만, 고통은 인간의 정신을 자기의 비좁은 골방에서 해방시켜 보편적 존재의 큰 바다로 나아가게 한다.

 

나 스스로 좋은 독서가는 아니기에 타인에게 책을 권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매우 드문 일이겠지만, 내 삶의 파장을 던져주는 책들은 타인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것도 자기만족인지는 모르겠다.

 

때문에 추천한다. 두 지식인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전율과 격한 슬픔, 그리고 희망과 의지를 당신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기 위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누군가 존경하고 싶은 이들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감히 내 인생의 최고의 책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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